소식

‘가만히 있으라’에 맞서, 지금 자기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대안과 혁신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힘이 되길 바라며 ‘뭐라도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뭐라도 하는 청년들(1)
강릉을 들썩이는 청년 ‘세 손가락’

수도권에 살지 않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무엇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서울로 가는 게 성공한 삶이라는 오래된 공식 때문이다. 강릉에서 만난 ‘세 손가락’ 운영진들도 선생님과 부모님께 ‘무조건 대관령을 넘고’, ‘2호선을 타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입시에서 취업으로 이어지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열차를 타고 숨 가쁘게 달려가던 이들은 동네에서 멈췄다.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리는 강릉에는 영상미디어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카메라를 만지던 이들은 “너희들 영화제 기록을 해볼래?”라는 샘들의 제안에 다큐를 찍고, 이듬해 영상 동아리 ‘겨울협의회’를 만들었으며, 영상만 제작하기에는 하고 싶은 게 많던 청소년들이 붙어 2013년 강릉 청소년 문화축제 ‘세 손가락 페스티벌’을 열었다. 페스티벌을 하면서 이들의 삶은 변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희망제작소가 생기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세 손가락을 만났다.

그 제작비, 니가 쏴!

희망제작소(이하 ‘희망’) : 세 손가락은 무슨 뜻이에요?

세 손가락(이하 ‘손가락’) : 처음엔 세 사람이 이 모임을 시작해서 세 손가락이라고 지었는데, 멤버들이 저마다 의미를 붙였어요. ‘세상을 바꾸는 손가락이 되자’라든지, ‘나·너·사회라는 세 가지로 확장되는 활동을 하자’는 뜻도 있고요.

희망 : 모임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어요?

손가락 : 저(유민아)와 두 친구인데, 두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 다녀요. 저는 대학을 안 갔고요. 저희는 2010년에 영상을 찍는 ‘겨울협의회’라는 모임에서 만났어요.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 영상 배우러 다닐 때 거기 샘들이 당시 고등학생인 저희들에게 정동진 독립영화제 기록팀을 제안했고요, 그 후에 센터에서 영상 수업을 듣던 무리들이 더해져서 영화 동아리 겨울협의회가 만들어졌어요.

희망 : 영상 동아리가 어떻게 페스티벌을 하게 됐나요?

손가락 : 친구가 강릉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씨즈’에서 공모사업이 나왔어요. 친구와 제가 ‘우리나라 영화를 세계에 퍼트리자’라는 프로젝트로 공모에 신청했어요. 해외여행을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였는데, 지원해 주신 분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건지 영화를 틀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 “하고 싶은 걸 해보세요”라고 해서 강릉에서 페스티벌을 하기로 했죠.

처음에 강릉의 여러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강릉 분위기 알지 않느냐, 차라리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해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한 친구는 “여기 사람이 모이면 내가 영화 제작비를 쏘겠다”고 장난처럼 말했어요. 막상 함께 할 사람을 모으니까 50명이 온 거예요. 그걸 보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희망 : 페스티벌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세요.

손가락 : 저희 운영팀이 매년 페스티벌에 참여할 청소년들을 모집해요. 50명에서 70명 정도 참여자들이 모여서 자기들이 페스티벌에서 하고 싶은 걸 말하면, 팀을 꾸려서 준비하죠.

2013년 얘길 해드릴게요. 참여자 모집 포스터를 찍는데 돈이 없어서 흑백으로 인쇄해서 색칠해 고등학교마다 돌리기 시작했어요. 학교에 돌리니까 학생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설명회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처음 만난 50명 아이들과 각자 어떤 파트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고 축제 때 할 것을 준비했지요.

페스티벌 홍보는 단오제에 가서도 했고, 강릉에서 라디오 방송하시는 분이 오셔서 알려주시기도 했어요. 개막식엔 200~300명 정도가 왔어요. 강릉에서 음악하시는 분들과 같이 공연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오픈행사를 했어요. 야외극은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어요. 고등학생들이 학교생활 하며 겪는 꿈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가족을 주제로 한 연극을 구정면이란 동네에서 했어요. 마을 방송을 해주셔서 주민들이랑 강릉에 있는 친구들이 보러왔는데, 야외극이라서 집집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공연을 했어요. “이동하세요!” 라고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무대를 따라 이동했어요.

희망: 사진을 보니 사람이 많네요! 일반 주민들이 오셔서 보신 거죠?

손가락 : 네,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애들이 와서 하니까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라는 이름으로 영화제도 했어요. 강릉에 있는 작은 공연장 ‘단’에서 했어요. 지인을 통해서 영화하는 분의 영화를 받아서 틀고, 감독과의 대화도 했고요. 영화제팀이 사람들 초청하고 인터뷰도 했고요. 전시회는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있는 서부시장 지하에서 했고요. 지하에 너저분하게 방치된 것들 다 청소하고, 유리로 전시 부스 만들어서 미술팀이 전시를 했어요. 목을 매달고 있는 오브제도 있고요, ‘말에 대해 말 장난한다’는 내용을 동물 말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기괴한 작품도 있어서 할머니들이 많이 놀라셨다고 하더라고요. 영화팀은 영화를 제작했고요, 잡지 만들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어서 잡지도 제작했어요. 원하는 것 있으면 뭐든지 하자고 했어요. 올해는 원래 기획할 때 예정에 없었지만 댄스팀이나 요리팀도 하기로 했어요. 작년에 저희가 페스티벌 준비하는 과정을 쭉 찍어서 DMZ다큐멘터리에 출품했어요.


“애들이 낸 경우가 없는데, 신기하네”

희망 : 와, 대단하네요. 그런데 페스티벌을 열려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요.

손가락 : 많이 드는데요, 2013년에는 텀블벅으로 모으고 씨즈 지원금을 받았어요. 작년과 올해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모사업에 돼서 지원을 받았어요.

희망 : 진흥원에 낼 때는 누구 이름으로 내셨어요?

손가락 : 세 손가락 이름으로 냈어요. 진흥원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애들이 낸 경우가 없는데 신기하다”고 하면서 뽑아주셨대요. 돈 없으면 구제 옷가게 들어가서 옷 하루만 빌릴 수 있냐고, 하루만 입고 빨아서 드리겠다고 빌려서 연극할 때 썼어요. 흔쾌히 빌려주셨어요. 그런 식으로 예산을 최대한 아끼면서 했어요. 어리니까 먹히는 거죠.

희망 : 이런 활동을 하는 데 지역에서 도움이 된 자원이 있었을까요?

손가락 : 제일 중요한 건 이런 활동을 좋아하시는 샘들이 지역에 많다는 거죠. 미디어센터 선생님들도 계시고, 시네마테크랑 정동진 독립영화제에 계신 분들도 저희에게 도움을 주세요. 지지난해 텀블벅 할 때 가장 많이 후원하신 분은 저희가 고등학생 때 다큐를 찍었는데요. 그때 도움 주신 분이었어요. 필요한 카메라나 장비도 도움 주시고요. 예술인촌에서 출판 프로젝트에 멘토로 활동해주신 선생님도 계시고요. 음악학원 선생님들이 저희에게 홍보송을 만들어주시고, 저희는 그분들 뮤직비디오를 찍어 드렸어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희가 고등학생 때 구정면에서 골프장 반대하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었어요. 그때 뵈었던 감독님이나 주민분들이랑 지금까지 잘 지내고요. 저희에게 계속 도움을 주세요. 야외극을 할 때 마을 안내방송으로 쩌렁쩌렁 홍보를 해주셨어요.

희망 : 학교 선생님들 반응은 어때요?

손가락 : 저희가 포스터를 붙이러 학교에 가면 반갑게 맞아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뭐라 하는 분들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진로상담부 선생님들은 좋은 학생을 추천해 주시고, 어떤 학교에서는 전교생에게 포스터를 복사해서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고요. 교내에서 설명회를 직접 개최해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셨고요.

희망 : 연극 공연을 하는 사진 보니까 어른들이 많이 오셨던데요. 페스티벌을 하면서 지역 어른분들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까요?

손가락 : 활동하는 학생들의 친구들은 많이 오지만 부모님들은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애들이 부모님께 활동을 안 알리기도 해요. 어디 가서 놀다 오냐고 말씀하시니까, 회의하고 온다고만 이야기해요.
“이런 것 해볼래?”

희망 : 이제는 운영팀 대부분 성인이 되었는데, 예전과 뭐가 달라졌나요?

손가락 : 전하고 확실히 차이나는 것이 2013년에는 함께하는 청소년들이 저희를 형이나 누나라고 불렸는데, 그 다음 해부터 저희를 선생님이라고 해요. “선생님, 수업 있어요?” 라는 식이죠.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몇 년 지나면 고등학생들이랑 다 같이 노래방에서 노는 것이 애들한테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버릴 것 같아요.

희망 : 운영하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고 계속 가는 거예요?

손가락 : 저희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강릉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대학을 서울로 가려고 해서 스무 살이 되면 지역을 나가게 돼요.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아서 여기에 있는 거죠. 그래서 애들이 더 못 들어오는 것도 있죠.

희망: 운영팀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 범위가 있어요?

손가락 :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20대요. 아직 꿈을 찾을 시기니까요.

희망 : 세 손가락의 활동 목적은 꿈을 찾는 것인가요?

손가락 : 아이들한테는 꿈을 찾기 위해 활동한다고 하고요, 운영자들끼리 얘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목표고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하고 표현도 못하잖아요. 그런 것을 바꾸려고 세 손가락을 한다, 저희끼리는 그렇게 정했어요.

희망 : 본인들의 삶도 그것을 통해 변화가 있었나요? 꿈을 찾았나요?

손가락 : 겨울협의회 할 때 샘들이 저희에게 “이런 것 해볼래?” 이렇게 계속 물어주셨거든요. 저희도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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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을 넘어라’를 넘어

희망 : 여러분 개인에 대한 질문을 할게요. 세 손가락 활동을 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방준극(21세) :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세 손가락에 들어왔어요. 원래는 아무 대학이나 가서 공무원이나 해야지 했는데, 들어와서 카메라를 만지면서 생각한 게, 공무원으로 살다가 죽으면 너무 아까울 것 같은 거예요. (웃음) 여기서 활동하면서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영화를 기획하고 찍으면서 10년 뒤에는 진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것이 목표예요. 저 같은 친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애들이 들어와서 ‘나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뭘 하고 싶다’를 느끼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세 손가락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예요.

희망: 지금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방준극 : 요즘은 미디어센터에서 보조 강사 하면서 세 손가락 활동을 하고 있어요. 굶어 죽지는 않더라고요. 재밌게 살고 있어요.

심유리(25세) : 작년에 다큐 ‘감자동 마이크’라고 영상을 찍었어요. 영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대학도 제가 원하는 과를 다니지 못했거든요. 고등학교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꿈을 접고 우울하게 지내다가 센터에서 영상 수업 듣다가 여기 있던 친구를 만났고, 같이 해보자고 해서 참여했어요. 저도 무대를 만들고 싶었고, 남들이 해보지 않은 뭔가를 해보는 좋을 것 같아서 했고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을 했어요. 집에서 걱정을 많이 하시지만, 제 나름의 판단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페스티벌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희망: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지역을 떠나지 않는 게 어려운 일이군요.

심유리 : 그렇죠. 지역 특성상 떠나는 걸로 얘기가 되니까요. 샘들도 ‘무조건 대관령을 넘어라’ 고 이야기해요. ‘2호선을 타라’ 뭐 이런 얘기요.

김수민(19세) : 저는 비슷한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편한 것 같아요. 의견이 비슷하진 않지만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는 치고 박고 싸워도 그 안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는 것 같고요. 의견이 대립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예전에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고 싸웠는데, 갈수록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처능력이 늘어난다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김준기(22세) : 저는 집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전혀 안 해주는 편이라 스무살 되자마자 알바를 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다른 사람들만큼 여기에 전념할 수 없으니까 화가 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알바 하다가 와서 버스 시간 때문에 또 일찍 나가야 하니까 뒤쳐지는 기분이 크기도 했고요.

제가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직업을 써본 적이 없어요. 스무살이 되었는데도 직업적인 꿈이 없는 거죠. 사실 하고 싶은 일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작품 만드는 거였어요. 직업적 꿈만 생각하다보니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대학도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못 갔거든요. 여기에 오는 친구들은 일단 여기에서 해보고 자기랑 안 맞으면 빨리 포기를 하거나 맞으면 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청소년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제 목표예요. 또 바뀐 건 말솜씨가 늘었어요. (웃음)

희망 : 세 손가락 분들은 모두 말을 정말 조리 있게 잘 하세요!

김준기 : 한 사람만 잘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잘할 수 있게 해보자고 해요. 누가 자신 없다고 하면 같이 잘해보자고 힘을 북돋기도 하고, 강요하기도 해요.

인생을 한 번 ‘흔들어 주는 것’

희망 : 세 손가락이 주로 하는 활동이 문화예술 분야인데, 문화예술에 적성이 맞지 않는 친구는 여기에서 무엇을 얻어갈 거라 생각하세요?

손가락 : 여기 있는 방준극 친구도 문화예술에 관심이 없었고요, 준극을 데리고 온 친구도 레슬링 좋아하던 친구였어요. 많은 친구들하고 한 팀이 돼서 활동할 때 말하는 방법부터가 많이 바뀌고, 자신감 얻어가는 것도 충분히 효과가 크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때 존중받을 기회가 많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기획자건 참여자건 존중받으면서 배워서 나간다고 생각해요.

희망 : 그런데도 페스티벌 진행하려고 왔던 친구들이 끝나고 다시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서 수험 준비하고 대학 가서 강릉 떠나는 것 보면 마음 아프지 않아요?

손가락 : 많이 아파요. 그래도 대학 가는 게 나쁜 게 아니고요, 대학에 하고 싶은 걸 하러 가면 되게 기쁘고 좋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그냥 대학에 가는 친구들 보면 더욱 마음이 아파요.

저희가 친구들의 일상을 다 바꿀 수는 없잖아요. 이런 경험을 했을 때 이 경험으로 나중에 살면서 한번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아요. 한 번 흔들어주는 거죠.

피하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희망 : 이 활동들을 더 잘 키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고요, 이걸 전업처럼 이어가고 싶을 텐데 계획이 있나요?

손가락 : 안 그래도 저희가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었더니, 공모사업에 지원할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올해 지원해줬는데 행사하고 내년에 사라져버리면 우리가 어떤 투자 의미가 있겠냐고요. 저희가 며칠 동안 회의를 했어요. 아직 답은 잘 모르겠어요. 저흰 회사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알바 말고는 제대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어서 사회에 돈이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개념도 없어요.

수익사업으로 생각해 본 건, 학교에서 들었는데 자유학기제가 생겼으니 협업하는 것이 어떠냐고요. 저희가 처음에는 학교랑 일하는 걸 꺼렸는데, 잘 되면 저희 색깔을 유지하면서 학생들도 더 많이 올 거고 학교와도 관계가 좋아질 거고요. 또 하나는 완벽한 수익구조는 아니지만 CMS를 신청하려고 해요. 단체를 운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희망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손가락 :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어요. “너희가 강릉에서 이런 활동하는 이유는 서울과 달리 경쟁자가 없어서 아니냐”, “학업을 회피하고 취업난에서도 도망치는 거 아니냐”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때는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라도 꼭 하고 싶어요. “우리는 취업난을 피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활동이 일자리가 되기를 바라고, 경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는 아예 경쟁할 사람조차 없기 때문에 우리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_ 우성희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unny02@makehope.org
                   정효정 정책그룹 연구원 / july@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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