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 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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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년 전까지 집에서 아가르바티스(인센스 스틱의 일종)를 만들곤 했는데, 이 일로는 하루에 15루피(한화 약 450원) 정도밖에 벌 수가 없었어요. 나의 남편은 쿨리(하층 노동자)였고, 우리의 월수입으로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 지역에 살고 있는 샨타 마아는 인도의 전형적인 빈곤층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은 일상이었고,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세상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이러한 현실에 그저 낙담할 뿐이었다. 그러나 변화된 삶은 순식간에 그녀의 발 앞에 찾아왔다.

2년 전 ‘마야 오가닉’에 들어가게 되면서 새로운 삶이 그녀 앞에 펼쳐졌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기술도 없었지만 회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훈련시켰다. 다양한 교육 과정을 통해 나무세공과 제품 조립을 하는 숙련 노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한 달에 2,500루피(한화 약 75,000원) 정도를 벌게 됐으며, 그 돈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녀는 이제 자신과 가족의 삶을 바꿔 놓은 공정무역의 혜택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야 오가닉’에서 얻은 경제적 혜택보다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제가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게 됐어요.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내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에요.”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페어 플레이(Fair Play)는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로 그 규모가 팽창하고 있는 무역 시장에서도 이 구호는 울려 퍼지고 있다. 생산-무역-가공-유통으로 이어지는 생산과 소비의 구조에서 생산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페어 플레이, 즉 공정무역(Fair Trade)을 외치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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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은 가속화하고 있는 세계화 속에서 생산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생활 운동이다.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무역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리란 믿음에 기반한다. 이에 따라 생산자들의 자립 환경을 구축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게 공정무역 시스템의 기본이다.

지난 세기만 해도 아시아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하는 국가는 일본 외에는 없었다. 네팔,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의 상당수 국가가 공정무역 생산자로 주목을 받았을 뿐 경제적 부의 일부를 공정무역 제품에 쏟을 수 있는 국가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서서히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규모도 커지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대표 이미영)는 한국의 대표적 공정무역 기업이다. 지난 2007년 국내에 공정무역에 대한 이념과 제품을 소개할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여성환경연대, 여성민우회, 원불교, 주민생협 등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NGO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시민 주식회사다.

공정무역하면 커피와 같은 농산물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의류나 패션 소품, 도자기 등 수공예품을 주로 판다. 네팔, 인도, 방글라데시, 라오스 등 4개국과 거래하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수공예품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역을 통해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생산 과정에서 크게 발생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다. 수공예품은 무엇보다 생산자들에게 가장 많은 수익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수공예품은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계 없이 손으로만 하는 작업의 특성상 다양한 작업이 더해져야 하나의 제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만큼 생산자 집단의 자립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미영 대표는 마술풍선처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수공예품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수공예품의 매력은 굉장히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데 있어요. 옷을 하나 만들더라도 배틀, 염색, 봉제, 자수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될 수 있으면 완제품 형태로 수입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시민들과 함께 하는 공정무역 실험


경제강국 일본은 뒤늦게 공정무역이 시작됐다. 서구 사회보다 30여 년 늦은 9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공정무역이 도입된 것. 그러나 지역 시민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덕분에 일본에서 공정무역은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1989년에 설립된 ATJ(Alter Trade Japan)가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난 2004년에 매출 20억 엔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사업 초기 일본의 공정무역 단체로부터 받은 도움이 큰 힘이 됐다. 네팔과 수공예품 교역을 하는 ‘네팔리 바자로(Nepali Bazaro)’는 자신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생산자 조직을 소개해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단지 한국에도 공정무역이 뿌리내렸으면 좋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공정한 무역’이라는 대의를 향한 연대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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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초기에 일본 시민단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줬죠. 이 단체에서 저를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들이 거래하는 네팔의 생산자 집단을 소개시켜줬어요. 그 분들이 생산자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품질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다 보여준 거에요.”

나라 밖에서의 연대 움직임만큼 나라 안에서도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 동안 공정무역 운동을 벌여 온 시민단체는 물론 이름 모를 많은 시민들이 회사 설립에 큰 힘이 됐다. 이러한 힘이 모여 소액주주 기반의 공정무역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1만4천주로 시작된 ‘시민주식회사’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최근까지 총 2만주 이상의 주식을 모집했다. 총 공모금액은 2억 원을 넘어섰다. 모두 시민들의 작은 뜻이 모여 만들어 낸 기적이다. 실제 유럽에서도 주주 공모 형태의 공정무역 기업은 찾기가 쉽지 않다. 회사의 활동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장원에서 머리 하다가 온 학생도 있었어요. 잡지를 보다가 우리 기사를 봤나 봐요. 이거다 싶어서 온 거죠. 방학 동안 저희 매장에서 열심히 일했죠.”

그래도 아직은 사업 초기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제품 공급의 안정성 확보다. 대부분 테러와 내전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많아 생산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전기 공급이 매우 불안정해 반나절 이상 정전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공정무역은 시장을 거부하지 않는다


공정무역의 기본은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이 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래서 새로운 거래를 하기에 앞서 생산자 집단이 실제 공정무역의 기본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철저히 심사한다. 거래 조건이 좋으면 노동자들의 처우와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시장경제의 차가운 이면을 공정무역에서는 찾을 수 없다.

“공정무역 거래를 하기에 앞서 꼭 현지 답사를 진행합니다. 생산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전에는 거래하지 않아요. 현장에 두 번 이상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리스크가 있을 수 있거든요. 우선 관련된 임금 규정 정책을 파악해 이익이 제대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고, 작업장의 환경 문제 등도 체크합니다.”

공정무역에 대한 전세계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공정무역의 이름만 내거는 곳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을 통해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생산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돼야 한다. 그것이 공정무역의 존재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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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정무역이 불공정한 규칙으로 얼룩진 세상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근본주의자 시각으로 봤을 때, 공정무역은 분명 한계가 있어요. 저 역시 세상의 모든 문제를 공정무역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것 중 90%가 무역을 통합니다. 무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이러한 현실에서 공정무역이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고 봐요. 시장을 거부하지는 않으면서,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게 대안이죠.”

이 대표의 말처럼 공정무역은 시장경제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는 실용적인 운동이다. 자본주의를 숨죽이며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해법을 찾는다. 그리고 그 경쟁상대는 바로 시장 그 자체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공정무역은 지속될 수 없다.


공정무역은 자선이 아니다


공정무역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땡볕에서 일하는 커피 노동자’나, ‘하루 종일 축구공을 꿰매는 소년’의 모습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때문일까? 공정무역이란 코드는 사람들에게 다국적 기업의 횡포로 착취당하는 제3세계 노동자의 아픔이나 고통과 연결된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것은 그들은 돕는 길, 바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자선하는 마음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는 공정무역 제품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기부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상품 자체에 만족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공정무역이 불쌍한 제3세계 노동자를 돕는 운동으로 그쳐서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란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들은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살 뿐이고,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없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제품이 좋아야 소비자들의 재구매가 이어지고, 공정무역 운동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공정무역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이미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초기에는 제품에 대한 품질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고 합니다. 공정무역이 시작되면서 활동가들이 불공정한 무역체제의 극복 그 자체에만 집중했어요.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한 거죠. 그런데 놓친 게 하나 있었어요. 바로 품질이었죠. 품질이 굉장히 안 좋았답니다. ‘공정무역 제품은 저품질’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고 하네요.”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역시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불쌍한 사람 돕는 셈 치고 사줄까?’와 같은 인식이 한국에 뿌리 내리는 것을 경계한다. 공정무역 제품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새겨지길 기대한다. 그것이 결국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윈윈(win win)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직 시작은 좋다. 유명 디자이너와 패션쇼를 열기도 하고, 패션 잡지에서도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작은 액수이긴 하지만 작년에 남는 장사를 하기도 했다. 설립 2년밖에 안 된 작은 회사의 실적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올해부터는 매출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내친 김에 더 큰 일도 벌이겠다는 눈치다.

“아직 제 머리 속에만 있는 생각이지만, 주주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배당할 수 있는 회사로 키우고 싶어요. 물론 이익의 대부분은 공정무역에 재투자해야겠죠. 그래도 은행 이자 정도는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주들이 좋은 뜻으로 회사에 투자했는데, 어느 날 배당금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게 제 소박한 꿈이에요.”


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현재 IR 대행사 아이피알파트너즈에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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