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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416 기억저장소

▲사진제공:416 기억저장소


꽃이 되어 돌아올 그들을 기억하며
– 김선자(연세대학교 교수)

하늘과 땅이 온통 부옇습니다. 송도캠퍼스는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저녁 무렵이 되면 안개가 잦은데, 며칠 전 저녁엔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운전을 하며 인천대교를 지나는데, 안개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개등을 켜고 천천히 주행했지만, 안개가 사정없이 밀려왔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세월호가 떠나던 그 날 저녁도, 그렇게 안개가 자욱했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다시 햇살이 눈부십니다. 그때도 그랬습니다. 온통 슬픔에 빠진 사람들 위로 햇빛은 그렇게 찬란하게 쏟아졌고, 꽃들은 화사하게 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진 자리에 피어난 꽃들과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무리 뜨거워도, 그 눈물은 떠나버린 사람들의 얼어버린 뺨을 녹일 수 없었습니다. 모두의 가슴에 그렇게 응어리진 슬픔을 남긴 채,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들이 떠난 지 일 년, 꽃들이 다시 환하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며, 떠난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합니다. 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중국의 ‘소수민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워낙 오지여서 의료 혜택을 받기가 힘들었지요. 그래서 아기들이 태어나면 일찍 떠나가곤 했어요.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아기의 탄생을 가장 큰 경사로 여겼고, 외할머니는 고운 꽃무늬를 가득 수놓은 포대기를 만들어 손자에게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기가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었지요.

사람들은 꽃을 사람의 영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신이 하늘의 꽃밭에 붉은 색과 하얀 색의 꽃을 기르는데, 그 꽃을 인간 세상에 보내주면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여겼지요. 제주도 신화에 등장하는 삼승할망 역시 다섯 가지 빛깔의 꽃을 길러 인간 세상에 전해줍니다. 아기가 잠을 자다 말고 방긋 웃는 것은 천상에 있는 영혼의 꽃밭에서 뛰어놀기 때문이고, 우는 것은 영혼의 꽃밭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여신이 붉은 꽃과 하얀 꽃을 함께 심어놓으면 그 아이들은 커서 짝이 되고,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다시 천상의 꽃밭으로 올라가 꽃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봄이 되어 팔랑거리며 날아오는 나비 한 마리를 사랑하는 이의 영혼이라고 여겼지요. 나비가 집으로 들어오면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또 다른 민족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따뜻한 날씨에 많은 꽃들이 피어있으며, 익숙한 모든 이들이 있는 그곳에서 영혼은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고 여겼지요.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영혼을 떠나보냈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면 영혼이 머뭇거리면서 조상들의 땅으로 차마 떠나지 못한다고 여겼지요. 남아있는 사람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영혼은 머나먼 길을 편안하게 떠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우리가 사랑했던 그들이 떠난 4월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세월호’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렵다는 분들이 많지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꽃으로 변해, 나비로 변해 이 찬란한 봄에 돌아올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영혼이 떠나도 그들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니까요.

찬란한 햇빛 속에 곱게 피어난 꽃 한 송이가 유독 눈에 들어오거든, 가벼운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가 유난히 눈에 띄거든, 떠나간 그들의 영혼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눈으로 그들을 봐주세요.

또한 참으로 힘든 일이겠지만, 그 꽃과 나비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을 보낸 사람들의 눈물 속에 미소가 깃들게 되기를, 그리고 그 미소가 영혼을 편안하게 떠나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찬란한 봄날에.

김선자 님(연세대 교수)은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다 고대 문학작품 속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오랜 공부와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화학자가 되셨습니다. 소수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공부하며 현대 사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해법을 찾고 계십니다.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신화와 삶을 통해 공존의 지혜를 전하는 <오래된 지혜>, <김선자의 이야기 중국신화>,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 등의 책을 쓰셨고 <세계신화여행>, <중국신화전설>,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 등의 책을 함께 쓰거나 번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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