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하 ‘희망’)이 귀촌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는 두 청년을 만났습니다. 김민주 씨(34세, 이하 ‘민주’)는 지난 1년 반 동안 충남 홍성에서 청년들의 농촌살이 플랫폼을 만드는 시도를 했습니다. 김승연 씨(36세, 이하 ‘승연’)는 5년 전 경북 문경에 내려가 일년여 간 녹색생활이란 신념을 현실에 옮겨보려 노력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민주 씨는 농촌에서의 삶을 막 매듭짓고 새로운 삶의 장을 시작하려 하고 있고, 승연 씨는 농사펀드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커리어를 관리하는 것이 인생은 아니니까

민주 : 저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내려갔어요. 거창하게 농사를 지으려는 것도 없었고, 청년 관련 농장 플랫폼을 해야겠다는 것도 없었어요. 다만 우프할 때 공동으로 농장하는 것을 보고 농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하게 있었어요.

홍성에 2013년 6월에 내려가서 2014년 말까지 살았습니다. 홍성에 내려가기 전에 1년 동안은 희망제작소에서 일했어요. 홍성을 오가며 농사워크숍을 받았어요. 그 전에는 일본계열 은행에서 5년 정도 일을 했고요.

외국인 친구가 저에게 외국 가기 전에 한국 여행을 해보라고 우프를 추천했어요. 우프는 World Wide Opportunity on Organic Farms의 약자인데 유기농장에 가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도와주는 농촌형 문화교류 프로그램이에요. 우프에서 처음 해보는 농사일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함께 몸을 써서 일하고 땀을 흘리는 경험을 처음 해봤고, 내손으로 음식을 직접 하는 과정도 새로웠고요.

희망제작소에서 좋은 동료도 만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일이 너무 바쁘니까 제가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 됐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내가 게을러서 그런가 생각하면서 저 자신을 채찍질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고 들어왔는데 왜 이것밖에 못하는가. 자기검열을 하면서 몸의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평가했어요. 그런데 그때 생각했던 게 ‘그래, 커리어를 관리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니까. 희망제작소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말자’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희망제작소를 그만두고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을 더 많이 만났어요. 홍성에 많이 놀러오고 차 마시고 건강도 물어봐주시고 응원도 해주시고 고민도 나누고요. 참 감사했어요.

승연 : 농촌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예술하는 분들이 시골에 내려가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어서인 것 같아요. 저도 농촌에서 상상력을 많이 자극 받아요.

저는 자전거만 좋아했어요. 삶에 대한 별 인식도 없었고요. 서울예대를 졸업했는데요. 뭘 해도 이상하게 생각을 안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어요. 저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쫄바지를 입고 다녔어요. 여긴 아무렇게나 다녀도 되는구나 하고 제 마음대로 다녔어요. 그랬는데 그린디자이너 윤호섭 교수님을 만나고서 ‘이런 삶으로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어요. 교수님을 쫓아다니다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오랜만에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난 거죠.

환경단체에 일해볼까? 고민하다가 녹색연합에 들어갔어요. 서울시를 상대로 대기오염 관련 소송을 제기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태안 기름유출사건이 터졌어요. 태안에 있다가, 일본 우프에 가게 됐어요. 짜릿했어요. 거기는 동경대 경영학과를 나온 청년들이 농장을 홍동처럼 예쁘게 해놨어요. 남자 셋 여자 한 명이 같이 사는데 저녁에 합주를 하고 완전 드라마 같았어요. 드라마를 경험하고 나서 농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죠. 제가 일하던 부서 옆에 ‘작은것이 아름답다’, ‘녹색사회연구소’가 있었거든요. 양옆 부서에서 농촌문화에 대한 얘기를 어깨너머로 들으면서 ‘아 이게 대안적인 삶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프를 다녀와서 뿅 간 거죠. 이렇게 농촌이 좋다는 이야기를 선배한테 열심히 했는데, 어느날 그 선배가 갑자기 문경으로 내려갔어요. 그래서 저도 내려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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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씨(좌) 김민주 씨(우)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다

희망 : 내려가서 어떠셨나요?

승연 : 2010년쯤이었어요. 월세 보증금 100만 원을 가지고 갔어요. 그런데 돈 쓸 일이 없었어요. 옆집은 전기세 470원 나오고 산에서 채취해서 먹을 게 많고요. 거긴 선배 귀농자 그룹이 새로 온 귀농자들에게 쌀을 1년 치 줬어요. 저는 받지 않았지만, 일단 쌀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요. 도시에서는 일이 없으면 불안했는데, 여기서는 일이 들어오면 하고 안 들어오면 하지 않고요. 보일러도 화목보일러라서 나무 때고요. 고추장, 된장, 간장만 있으면 끝나더라고요.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렸어요. 마을 어르신을 만났는데 그분이 약간 권위적 스타일이셨어요. 친해지고 나니 담배를 사오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제가 삐져서 ‘아니 여기 대안적으로 산다고 해서 왔는데…’라고 했죠. 그런 이야기가 서열을 건드리는 문화였던 거죠. 저는 생각도 못하고 술자리에서 던졌더니, 그 후에 안 좋은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밑에 후배들은 저를 지지하기도 했어요. 결국 눈치가 보여서 읍내로 나오게 되었어요.

읍내로 나와서 펑펑 울었어요. 뭔가 서러웠어요. 동력을 다 잃고 서울로 가야하나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 귀농할 때는 대안적 삶을 살아보자 상상하고 완성하러 간 거잖아요. 콩 재배해서 낫토 만들고 자전거 열심히 타며 운동도 해야지 이런 꿈으로 간 것인데, 읍내에서도 쉽지 않았죠. 동력을 다 잃고 서울로 가야 하나. 저는 오히려 농촌 가서 지친 거죠.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농업의 농자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도시농업이 꿈틀꿈틀 하더라고요. ‘도시농업이 있어? 파절이? 홍대?’ 궁금하잖아요. 홍대 다리텃밭이 오프닝 파티 한다길래 갔는데 150명이 온 거예요. 20명 정도 올 줄 알았거든요. 저도 모르게 운동적 기질이 또 꿈틀거린 거죠. 도시농업을 하겠다고요.

민주 : 저는 운동이나 사상 다 떠나서 제 몸이 자연을 필요로 해서 가게 되었어요. 홍성에 이사를 가서 매일 아침마다 모여서 일머리 세우고 일을 도왔어요. 저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이 일하는 것보다 노동량이 많지 않았고, 일하다가 몸이 안 좋으면 집에서 쉬는 생활을 했어요. 8월부터는 다음 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과 같이 일을 하고, 주거에 대한 고민이 많으니 주거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농장을 해보면 어떻겠느냐.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회의를 하면서 줄다리기도 하고 서로 설득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가졌죠. 가을 겨울을 보내고 겨울에 협동조합 법인 설립을 마쳤어요.

생활하는 것은 그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관심 있어 하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친구의 친구들이 드나들면서 오고 가는 걸 보는 것들이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같이 일했던 풀무학교를 나온 어린 친구들은 나이가 어리지만 갖고 있는 좋은 성품 때문에 많이 위로를 받았어요. 21살인데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모습이었어요.

자연과 단절된 삶을 살았으니까 농업을 글로만 배웠고 절기와 무관한 삶을 살았거든요. 경칩에 땅을 파니까 개구리가 올라오는 거예요.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알고 자기 자신을 자연의 일부라고 알았는데, 저는 그런 것들과 단절된 삶을 살다보니 자연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더라고요. 나에 대한 이해가 돼야 동시에 남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잖아요. 농사짓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를 마주보는 과정을 겪었어요. 일단 시간이 풍요롭잖아요. 농촌에서의 생활이 여유는 있지만 한가하지는 않더라고요. 손으로 해야 하고 품이 드니까요. 그런데 어떤 문제를 마주볼 때 나를 다른 일에 정신 팔리게 할 게 없으니까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오롯이 마주보게 되는 환경이었어요. 음식도 내 손으로 많이 해먹으면서 자연과 다시 연결성을 회복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시간이었어요.

도시에서 다시 만난 농업

희망 : 다시 도시로 올라와서는 어땠나요?

승연 : 농촌 청년과 도시 청년의 만남이라는 ‘반농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위키서울대회에 참여했어요. 농촌에서 서러웠던 지점, 도시인이라고 차별받는 것이 서러워서 그 경계를 무너뜨리려고요. ‘반농반X’ 책을 보고 힌트를 얻어서 농촌과 도시의 삶이 절반씩인 삶을 살아보자고요.

홍성에서 대안적 사고를 하는 친구들과 한 팀이 됐어요. 저는 예전에 너무 대안적으로 달려가다가 깨졌잖아요. 저는 현실적인 것들도 반영하고 싶은데 그 친구들은 대안적인 것을 설계하고 달려가는 중이어서 제가 이야기하는 현실적인 것이 방해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현실적인 살림살이 계산을 하면서 더불어 가고 싶었는데, 서로의 입장을 다 못 맞추겠더라고요. 그러다가 팀이 해체되고 이걸 하던 친구들이 다들 홍성으로 가버렸어요. 민주 씨도 그때 내려가셨죠.

민주 : 우리가 홍성을 내려갔을 때 승연 씨가 어떤 마음이 들었을 지 알 것 같아요. 쓸쓸했을 것 같아요.

승연 : 네. 굉장히 의지가 되는 친구들이었거든요. 근데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민주 : 잡을 수 없는 걸 알면서 보내주는 것도 사랑인 것 같고요. 그걸 알면서도 가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같은 선상에 있다하더라도 여행에 떠나지 않은 자와 다녀온 자, 떠나지 않은 상상만 하는 자는 다른 것 같아요. 저도 2년 전에 이곳에 있었지만 지금의 저와 그때 저는 분명 달라졌거든요.

승연 : 그리고 나서 쌈지농부 천재박 씨와 농촌기획자 박종범 씨를 만나게 됐어요. 나이도 같은데 느낌이 통했어요. 이런 코드가 맞는 사람 만나니까 뭔가 하고 싶더라고요. ‘농도’라는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그러다가 종범 씨가 ‘농사펀드’라는 걸 하는데 우연히 같이 하게 됐어요. 부여 조관희 농부님 농사펀드 프로젝트를 했는데 5일 만에 펀딩이 마감되더라고요. 다들 깜짝 놀랐죠. 되니까 다른 꿈을 꾸게 되더라고요. 이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황매실로 두 번째 농사펀드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제 조금 지쳤죠. 왜냐하면 엄청 달려왔거든요. 사무실이 방이라서 집에도 가지 않고 계속 달려왔어요. 지쳐가는 중에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동화 같은 자연을 만나니까 예전 문경생활이나 일본에서 느꼈던 설레임이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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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에서 김민주 씨(사진:김원영)

영리와 비영리, 도시와 농촌 같이 할 수는 없을까

민주 : 홍성에서 내년 사업을 구상하면서 생긴 갈등과 고민이 있었지만, 좋은 점들이 많았어요. 사람들과 갈등이 있다고 해서 자연이 주는 가치는 퇴색되는 것은 아니고 농사의 가치가 퇴색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농의 가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농적 가치가 농촌에만 있는가?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공동체적 삶, 유대감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가진 삶, 그런 걸 추구하는 게 농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고, 그것이 농촌엔 있고 도시에는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경계를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게 저에게는 반성의 지점이었어요.

제 나름의 생각인데 영리에서 비영리로 갈 때, 비영리에서 농촌으로 갈 때 영역이 달라지면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대안적인, 도시를 떠나 사는 곳은 또 다를 것이다 생각했는데 물론 어떤 차이점, 특수성은 있는데 보편성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다 사람이 사는 곳이고 크던 작던 욕망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 그게 남들과 다 조화를 이룰 때가 있고 이루지 못해 요동칠 때가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더 반드시 농촌이어야 할 이유나 반드시 비영리이어야 할 이유 이런 것들은 경계가 없어졌어요.

승연 : 저도 경계를 허물게 된 것 같아요. 농촌에서 대안적인 것 여기서만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도 보고 싶고 모여서 왁자지껄 하는 것도 하고 싶더라고요. 도시적으로 사는 것도 괜찮으니까 이렇게 만든 하나의 방식인데 너무 미워할 것은 아니겠다 싶더라고요.

도시농업에 돌아와도 포인트가 보이는 거예요. 파절이가 옥상에 노을질 때 우리끼리 오손도손 있을 때요. 흙 위에서 느끼는 감성은 농촌에서 느낀 거지요. 제가 원래 이메일을 길게 안 쓰는데 시골에서 어쩌다 이메일을 받으면 집중해서 엄청 길게 쓰게 되더라고요. 오롯이 집중하게 되는 거죠.

민주 : 저도 손편지 진짜 많이 썼어요.

승연 : 그런 지점이 저한테 온 거죠. 멍 때려도 되는 그 순간을 즐겨요. 생각도 깊이하고 살 수 있는데, 사춘기 때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자전거에 집중해버렸어요. 이렇게 도시는 해소할 수 있는 거리들이 너무 많아요. 자연을 마주치지 않더라도, 다른 해소할 거리와 동떨어진 순간이 있어야 생각을 하죠. 이게 농적 가치라고 생각이 들어요.

‘農의 가치’라는 건 도시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승연 : 도시적 생활과 농촌적인 생활이 같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을 느껴요. 제가 홍대에서 귀농자 물건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농부님들이 너무 자기 물건을 자기 생각으로만 하니까 잘 안 팔리더라고요. 너무 자기 생각에 빠지거나, 한땀한땀 만든 거에 의미를 두시고 포장은 도시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올라오는 차비가 더 나올 텐데도 굳이 다음 달에 또 오신대요. 다시 보니까 이분들도 도시놀이를 하고 싶은 거예요. 이분들이 도시에 올 당위성이 만들어지니 신나서 오더라고요. 농촌에서 힐링하고 마실 다니는 것도 재미있지만, 도시에서처럼 차를 마시고 맛있는 것 먹고 새로운 것 보고 느끼고 하는 자극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편 가르기로 봤는데 제가 이미 깨고 왔기에 다르게 봤고 농촌적인 생활에 도시적인 생활이 적당히 섞였을 때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요즘 저는 농사펀드 일을 하면서 도시적 삶에 찌드는 거죠. 처음에는 몰랐어요. 조화롭게 되어야 하는데, 일로 가니까 농촌에 가도 쉬는 것보다 하나라도 더 일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거예요.

민주 :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농촌에도 농부님들이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잖아요. 농촌도 그래요. 과로하는 농부님도 계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끼니는 라면으로 해결하면서 일하는 분이 있어요.

도시와 농촌,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희망 : 두 분 인생에서 절대 농촌을 더 갈 수 없다 가정하면 어떠세요? 또는 영영 도시와 농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민주 :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단절되고 분리되어 있는 것보다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바랐기 때문에 농촌이라는 곳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하고 풍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승연 : 교류를 하는 것을 지향해요. 왔다갔다하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도시에서 도시텃밭으로 농촌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농촌에서 도시문화를 만들 수도 있겠죠. 농촌에서 저희 귀농자들은 포장마차 생각이 간절했거든요.

민주 : 저희는 떡볶이집이요.

승연 : 서로 끌어당기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놓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서울이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그렇지 균형 발전이 되어 있다면 적당히 그 경계에 살면 되는데, 도시도 너무 도시가 아니고 적당한 그런 곳이 아닐까요.

도시와 농촌을 잇는 다양한 직업이 생겨야 한다

희망 : 그런 곳이 일본에는 제법 있죠?

민주 : 네. 일본은 우리보다 일찍 지방자치가 시작됐고, 정책적으로도 일본이 알고 있는 거죠. 도쿄중심으로 될 경우에 불균형이 될 것을 알고 우리보다 선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사람을 분산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많이 했어요. 제도적으로, 행정적으로, 문화적으로 만들어왔더라고요.

일본에 턴즈(Turns)라는 매거진이 있어요. 각 지방정부의 귀농귀촌 정책을 소개하고 매물도 소개되어 있어요. 젊은 사람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젊은 층의 귀농귀촌 일하는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인터뷰도 실려 있어요.

또 제가 농사에 흥미를 옛날부터 가졌구나 싶은 것은, 제가 20살부터 일본방송 재미있게 본 것이 있는데 지금의 삼시세끼 같은 거예요. 일본 아이돌이 고정으로 출연하는 방송인데 이 멤버들이 시골에 가서 몇 년을 농사를 짓는 거예요. 일본에 이런 방송이 있다는 것 단발성이 아니었고요. 이런 고민을 일찌감치 해온 나라인데 단순히 행정, 정책적인 것 외에 문화, 라이프스타일에서 접근이 많았어요.

희망 : 젊은 귀농귀촌인이 일본에 가서 교류할 수 있는 연수프로그램이 필요하네요. 턴즈 같은 매거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민주 : 저의 설익은 고민 중 하나인데, 농업이나 농사와 관련된 직종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떻게 보면 농사펀드 같은 것들이 직업군을 만들어 낸 거라고 보거든요. 매거진도 그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유지가 되려면 업데이트가 되는 콘텐츠가 있어야 하지요. 일본은 청년들을 마을로 보내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오래전에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해요.

이런 역할을 할 청년을 잘 키워야 할 것 같아요. 40대 정도 귀농귀촌한 분들이 사회활동을 많이 하시잖아요. 이분 자녀들은 아직 어려요.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활동을 할 때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하고, 어떠한 지원을 해줘야 하는지가 아직 실행에 들어간 것 같지 않고 제가 얼핏 알기로는 풀무학교 전공부 고민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홍동에서 마을은행 준비 중이거든요. 스터디모임 때 뭘 했으면 좋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창업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씨앗자금을 대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죠. 저희도 마을 내부에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삼선재단,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았어요. 외부와의 네트워킹의 장점도 있지만,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마을 사람들과 논의를 하는 것이 부족했어요. 마을 사람들하고 같이 논의하고 외부와도 논의를 하면서 자금과 지원방식을 고민하면 좋지 않을까라?라는 생각을 했어요.

글_ 우성희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unny02@makehope.org
    정효정 정책그룹 연구원 / july@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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