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15년 전 영국에 사회창안시스템(Global Ideas Bank 등)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아이디어만 쌓여있었지, 사실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네트워킹, 파트너십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벌과 나무’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 정부, 기업 등 힘과 돈을 가진 주체들은 나무들이고, 우리 같은 사회혁신가 그룹은 벌에 비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나무사이를 날아다니며 어떻게 연결시키고 꽃을 피워낼 것인가 고민한다.“

 – 제프 멀건 (전 영파운데이션 상임이사)

지난 시대, 우리는 나무를 심었다. 한 사회문제가 출현해 우리를 흔들어대면 단단한 뿌리를 가진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맞섰고, 새로운 사회문제가 출현하면 또 다른 나무를 심어 이에 대응했다. 그렇게 모인 나무들은 하나의 숲(섹터,sector)을 이루었고, 마침내 숲이 모여 거대한 현대 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각광받고 있는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 담론은 오늘날 격변하는 새시대를 ‘꿀벌의 시대’라 재정의한다. 요컨대, 이제 더 이상 한 가지 해법으로 명료하게 규명하고, 또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경계를 쉴새없이 넘나들며 소통하고 매개하고 촉진하는 ‘꿀벌’ 과 같은 중간자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무성히 우거진 나무와 숲속 생태계에서는 수많은 돌발변수와 복잡한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섭, 융합, 하이브리드, 복잡계, 여럿이 함께.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일상처럼 접하게 되는 이같은 사회혁신 변주곡들은 꿀벌의 시대가 더 이상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실제 매년 ‘사회혁신가대회(Social innovation exchange)’를 주관하고 있는 영 파운데이션이 꼽은 세계 10대 사회혁신 사례에는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가 리눅스, 위키피디아와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각국에 소셜이노베이션 파크가 속속 들어서고 있고, 일본 역시 삿포로가 소셜이노베이션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라는 혁신적인 뉴스 생태계의 출현이 골목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네 이웃소식을 전하는 수많은 아줌마, 아저씨, 학생기자들을 양성하며 매스미디어의 폐해를 극복해냈던 것처럼, 지구시민사회는 지금 꿀벌들이 노닐 수 있는 ‘최적의 생태계’ 를 조성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태계가 먼저다

특히 사회혁신과 동의어나 다름없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을 육성하고 양성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혁신적인 한 사람을 발굴하고 키우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한 사람을 여러 사람으로, 그리고 다시 여러 사람을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으로 끊임없이 진화발전 시키는 일은 오죽할까.

심지어 이런 작업을 각자 오랜시간 고도로 발달시켜온 2섹터(시장)와 3섹터(시민사회)가 ‘화학적’으로 결합중인 경계면 위에서 진행하는 것은 승산없는 게임이나 다를 바 없다. 돌발변수와 다양한 요구자원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비교적 ‘사회적기업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 채리티(Charity,자선)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은 전통적으로 시민사회의 기반이 튼실한 편이다. 다양한 공익재단이나 비영리단체, 인큐베이팅기관 등 중간지원조직이 촘촘하게 그물망을 형성해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다.

”사용자

얼마 전에는 카메론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가 은행들의 휴면예금 등 약 4억 파운드를 출현해 사회적투자 은행(Big Society Bank)을 설립, 시민사회를 활성화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내놓았다.

이는 2000년 반대파인 노동당 정부시절 범정부차원에서 설립한 ‘사회적투자 태스크포스(Social Investment TF)’ 계획의 최종결정판이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경제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민간 중간지원조직과 함께 무수한 프로젝트 펀드를 합자하고, 신설하고, 운용한 결과물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재료로 밑그림(종합계획안)을 그려낼 수 가 있었다.

또한 영국의 대표적 민간 사회혁신기관인 영파운데이션이 실험하고 있는 ‘론치패드(Launch Pad, 발사대)’ 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 육성(Incubation)모델도 주목할 만 하다.

론치패드는 SEIR(Social Enterprise In Residence) 라고 이름붙인 분야별ㆍ지역별 중간지원조직들과 사전에 협약을 맺고 신생 사회적기업들을 함께 발굴, 육성한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넘어서서 조직발달 단계별로 투자와 기부 비율을 차등화해 지급하는 펀딩 프로그램까지 함께 접목하고 있다. 그야말로 ‘또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조성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자
물론 이러한 영국사회의 노력에 대해 온전한 성패를 결론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영국정부나 중간지원조직들의 목표가 단순히 ‘꿀벌 수 늘리기‘ 에만 집중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의 목표는 생태계조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꿀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꿀벌에 대해 과욕을 부리기보다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꿀벌의 자질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꿀벌, 즉 사회혁신가나 사회적기업가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자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소통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매일같이 만나고 소통하고 설득하면서 사업을 일으킨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이렇게 말해보자. 조찬모임에서 외국계 기업재단 담당자를 만나 펀딩을 설득하고, 점심에 이웃 어르신들을 만나 막걸리 한잔 걸치며 공동체 대소사를 이야기하다가, 저녁에는 국회에서 열리는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학자들과 발제하고, 정치인들에게 로비한 뒤에야, 비로소 집에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잠드는 일과를 연중무휴로 소화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조금은 생생한 비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바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충분히 공감했다면 진정성을 갖고 끈기있게 설득해야 한다. 저기 빈 곳을 메우기 위해서는 당신의 여유자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간 전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기업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해 온 아쇼카(Ashoka) 재단이 도달한 결론이기도 하다. 사회적기업은 섹터간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엮어내면서 자원을 동원해야만 하는 현실적 필요에 늘 부딪치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모델을 전파하고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이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요리사이자 사회혁신가인 제이미 올리버의 강연.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 현장에서만 수백만 달러를 모금했고, 누리집(
http://www.jamieoliver.com)까지 개설할 수 있었다. (Language 버튼 클릭하면 한글 자막 제공) 


사회적기업을 지칭하는 데 쓰이는 흔한 수사 가운데 하나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이다. 사실 이는 ‘취약계층에게 시혜 대신 자활, 자립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노동부가 사회적 일자리사업을 펼치기 시작할 때부터 회자되던 말이어서 ‘사회를 혁신하는 주체’ 인  오늘날 사회적기업들을 설명하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런데 사회적기업과 지원조직의 관계를 놓고 본다면, 같은 이유로 이 말만큼 지원조직의 본령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없다. 지원조직이 단순히 시혜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며 사회 내에 다종다양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때, 사회적기업 역시 진정성을 가지고 쉴새없이 사회 속을 유영하고 소통하며 비로소 거대한 사회혁신의 물결을 불러올 것이다.

글_소기업발전소 이재흥 연구원 (weirdo@makehope.org)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 참고자료

●『Social innovation』, Oxford skoll center, 2007


●『Growing Social ventures』, Young foundation & NESTA, 2011


● 『Social Investment TF, final report』,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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