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지역재단은 지역주민의 기부로 기금을 조성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변화와 발전에 쓰이도록 배분하는 곳입니다. 지역재단은 복지 외에도 지역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지원하며, 기금을 개인에게 직접 배분하기보다 필요한 단체나 사업에 배분함으로써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재단 연속세미나 후기 참조)


한국에서는 2006년 천안풀뿌리희망재단이 설립된 이후 부천희망재단, 성남이로운재단, 안산희망재단, 인천남동이행복한재단 등이 설립되었습니다.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지역의 공익활동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지역재단을 소개합니다.


돈을 만드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
– 성남이로운재단

지난 글에서는 안산희망재단을 소개했습니다. 안산희망재단이 세월호 참사 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통해 지역재단의 필요성을 확인했습니다. (안산희망재단 소개 기사 안산을 치유하는 보이지 않는 손)

꼭 자본이 많아야만 지역재단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남이로운재단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장건 이사장은 “돈과 재능이 없으면, 돈과 재능이 있는 이들이 잘 쓰일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는 곳이 지역재단”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번 글은 성남이로운재단의 설립과정에 대한 장건 이사장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재단이 어떤 철학으로 만들어지는지 소개합니다.

인도에는 소유라는 단어가 없다

재단 설립을 한 건 아이들 때문이었어요. 아이들의 성장이 부모의 능력과 너무 직결돼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거든요. 성남 본시가지와 신시가지인 분당의 아이들이 경험하는 게 너무 달라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자랄 수 있는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저는 사회적 약자들의 자활을 돕는 기관인 사단법인 ‘우리’라는 곳에서 활동해왔는데, 그걸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자립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왜냐하면 그들의 자립을 위해 하는 일들은 청소, 간병, 요양사 같은 단순노동이 대부분인데, 그 수입으로 아이들 교육을 시키기란 쉽지 않아요. 결국 부모의 가난을 그대로 물려받는 경우를 보며 아이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어요. 돈을 만들어서 그들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지역재단이란 걸 알게 됐지요.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님이 ‘지역재단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주시면서 읽어보라고 권하셨어요.

재단을 만드는 데 혼자 할 수 없잖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름다운재단도 찾아가고, 먼저 지역재단을 시작했던 김해생명나눔재단, 부천희망재단, 천안풀뿌리희망재단도 찾아갔어요. 그분들을 만나면서 밑그림을 그리고, 성남이로운재단 설립 제안서를 만들어서 지역에 있는 분들을 만났어요. 그렇게 발기인이 126명 모였습니다. 우선 발로 뛰었어요. 네 차례 제안자 모임, 준비 모임, 발기인 대회 두 차례를 한 후에 2012년 4월29일 창립행사를 했어요.

이렇게 사람을 모으면서 1년가량 준비했는데, 사단법인은 사람이 중심이지만 재단법인은 돈이 중심이잖아요. 돈을 모으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지역에서 노인병원을 운영하는 젊은 의사인 박성민 이사장이라는 분이 있어요. 본인은 좋은 의료서비스를 하기 위해 최고의 노인병원을 만들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분한테 지역재단 설립을 제안했고, 초기 재정 펀딩에 도움을 받았지요. 박 이사장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았지요.

▲ 성남이로운재단 장건 이사장

▲ 성남이로운재단 장건 이사장

인도에는 소유라고 하는 단어가 없대요. 물질은 곁에 둘 뿐이지 누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돈이 없으면 돈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음악을 잘 하지 못해도 음악을 하는 사람을 옆에 두면 된다는 거지요. 제가 지역재단을 준비할 때 기본 원칙이 그것이었어요. ‘내가 가진 게 없지만, 물질이나 재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필요할 때 부르면 된다.’ 그 중에 한두 명이라도 응하면 되잖아요? 하다 보니 그게 되더라고요. 음악이 필요할 때 음악에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고요. 물론 저희는 가난한 음악가에게 공짜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요. 나름대로 충분한 개런티를 받고 있는 분들께 “이럴 때 재능기부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하죠. 저희 재단 로고도 지역의 대학 교수님이 디자인해 주셨고, CM송도 지역에서 음악을 하는 재주 있는 젊은 친구가 만들어 주었어요.

처음에는 본인들도 ‘기부와 나눔’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겠지만, 계속 요구하면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당신이 계속 하기 힘드니까, 당신 주변에서 함께 할 열 명 씩만 모아주신다면 천 명이 모인다.”라고 제안했어요. 126명으로 시작했으니까 후원해 주시는 기부천사를 1004명까지 만들어야겠다고 추진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진 않지만,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Making Money is Making Change

저는 지역재단을 잘 몰랐어요. 공부하다보니 돈이라는 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 중에 하나라는 걸 알았어요. ‘Making Money is Making Change’ 돈을 만드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거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왜 남의 돈을 모아서 자선하느냐?”고요. 저는 “그게 아니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 친구는 유럽에서 공부했는데, “유럽에는 자선단체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유럽에는 세금으로 사회안정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공평한 사회로 진입하여 청소년들이 빈곤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다는 거죠. 근데 자본주의가 아주 나쁘게 발전한 나라에서는 빈익빈부익부가 심하니까 미국식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에서나 지역재단 같은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자네가 유럽에서 공부할 때는 세금으로 복지하는 게 옳다고 배웠겠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라가지 않느냐. 현실이 이러하니 대안을 찾아야지.” 라고 얘기했죠.

걸림돌을 하나씩 걷어내고

우리나라에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데는 사회적 공신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협동조합 만드는 데 사실 왜 법이 필요합니까? 필요한 것을 가지고 뜻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면 되는데 그 조직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법을 통해서 신뢰 조건을 획득하도록 하는 거지요.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나서 법적 지위를 얻으려고 경기도에 가니까 기본적으로 재단법인은 2억에서 3억 이상의 초기 자본금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재단 설립에 참여한 법률가들에게 “어느 법에 ‘재단법인 하려면 자본금 이만큼 필요하다’라고 되어 있는지. 검토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조사해 보니까 없대요. 법에는 그냥 설립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단지 해당 부처나 지자체에서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고 있는 거예요. 사단법인이면 5천만 원 이상, 재단법인이면 2억~3억 원 이상이라고요. 제가 아무리 모아도 1억 원밖에 못 모았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저희 지역재단에 참여한 법조인들이 담당 공무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서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걸 얘기했어요. 물론 지자체가 가이드라인을 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었어요. 돈을 조금 모아서 다른 목적으로 운영하는 재단들이 난립하면 안 되니까 어느 정도 자본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놨다는 거예요. 그 얘기는, 조직에 대한 신뢰성이 담보가 되면 금액은 큰 문제가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재단이 신뢰할 만한 곳임을 여러 모양으로 설득해서 허가를 얻었어요. 5천만 원으로 재단을 만들었지요. 모아놓은 1억 원을 기본자산으로 다 묶어버리면 초기 운영비가 없으니까 기본자산 5천만 원으로 하고 재단법인을 설립했어요. 물론 경기도에서 실사가 나왔어요. 재단 사무실로 찾아와 실제 활동들을 확인하고 저희가 재단법인을 설립했습니다. 5천만 원으로 재단법인 설립은 아주 드문 경우일 거예요.

기부와 모금한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잖아요. 재단 안에는 이사회가 있고 사무국이 있지만 그 사이에 위원회가 세 개가 있습니다. 모금위원회, 배분위원회, 기부컨설팅위원회가 있어요. 멤버 중에 법률이나 세무 등 다양한 재능 있는 분들이 계셔서 기부자들에 대한 자문을 해 주세요. 예를 들어 유산 기부를 하려는데 세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 세무법률 컨설팅을 해 주고요. 또 저희가 기금을 배분한 단체 실무자나 배부자들을 초청해서 세무회계나 법률 교육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이 돈은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기부자들이 기부한 거니까 투명하게 써 달라”고 얘기하지요. 그리고 나눔지원신청서 이외에 따로 사업 결과보고서를 받지 않으니, 그만큼 책임 있게 써 달라고 당부합니다. 저희는 배분하고 나면 확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증빙서류도 “필요 없다.”고 했어요. 감독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희가 수혜를 받은 기관에 나눔지원신청서는 정확하게 써 달라고 했어요.

배분은, 개인을 지원하는 것보다 비영리기구나 비영리단체들을 지원해서 그 단체를 통해서 실제 필요한 일 또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했어요. 가장 많은 부문이 아동, 청소년을 위한 단체에 지원합니다. 지정기부가 들어올 경우에는 개인에게도 지원해요.

▲ 성남이로운재단은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 성남이로운재단은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지역재단 운동은 지산지소 운동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마음 가는 곳에 돈이 간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보았어요. 어떤 사람이 수입의 대부분을 어디에 쓰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대요. 요즘 젊은 사람 마음이 주로 차로 간대요. 그래서 좋은 차를 탄대요. 교황 프란체스코가 젊은 사제와 수녀들에게 일갈했대요. “고급차 타지 마라.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이 가라.” 여기서 마음을 우리가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중요하게 봤어요.

저희 이사회는 젊습니다. 40대 후반 전문직이 많아요. 그 친구들이 돈을 이런 일에 쓰려고 하는 데에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많은 기업인들을 만났거든요. 그분들은 이 일에 대해 공감하죠. 기업의 사회공헌이 요즘 기업의 새로운 홍보 전략이니까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근데 우리가 가면 그분들 반응은 “참 좋은 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다른 곳에 지원하고 있습니다.”라고 회피하기가 다반사예요.

▲ 2014 성남 사회공헌 타운홀 미팅

▲ 2014 성남 사회공헌 타운홀 미팅

기업인들을 만나면 여러분이 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돈을 벌면, 여기에서 써 달라고 요청합니다. 지역재단 운동은 지역에서 생산해서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 즉 로컬푸드와 같은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지역 안에 있는 기업이 번 돈을 지역 안에서 쓰면 좋겠어요. 꼭 이로운재단이 아니어도 좋으니 지역의 다양한 곳에 쓰자고 해요. 성남 판교지역에 IT회사가 많아요. 젊은 CEO들을 많이 만났어요. IT기업 대표들 대부분이 젊은 분들이라, 머리카락이 흰 저를 만나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웃음) 지난 연말엔 이로운재단 주관으로 지역에 있는 기업, NGO, 공무원들과 맞선보는 자리인 ‘CSR 타운홀미팅’을 상공회의소를 빌려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기업들이 기왕이면 지역에 있는 풀뿌리 단체들을 지원할 수 있게 저희가 중매쟁이(촉매제) 역할을 한 거죠. 지역 안에서 생산된 부가 지역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기부와 나눔’ 생태계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글_ 우성희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unny02@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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