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해발 4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진안군은 과거에는 산간벽지로 불리던 곳이다. 그만큼 생활 여건이 불리했지만, 오늘날은 아름다운 풍광과 ‘마을만들기’ 사례를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고장이 되었다. “마을에서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착안해 그분들의 삶과 경험, 생활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하면서 시작된 진안군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지난 10년을 넘어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며 나아가고 있다.

진안군 마을만들기 사업의 성과는 행정과의 원활한 협조와 기본조례 제정, 마을 기반 강화, 다양한 민간전문단체 설립과 운영 경험 축적, 주민들의 자긍심 제고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성과가 만들어지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마을은 귀농 8년 차인 부부와 주민들이 삶을 한데로 엮어가며, 소박하지만 행복한 마을만들기를 하고 있는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라는 마을이다.

”사용자


목사부부, 학선리에 살어리랏다

무주, 진안, 장수가 만나는 곳 학선리. 목사부부로 불리는 남편 이재철 씨, 아내 박후임(목사)씨 부부는 2005년 지인의 권유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부부 역시 처음에는 이제 막 농촌에 터를 잡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는 익숙하지 않은 농촌생활과 문화적 차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부부는 귀농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10년 혹은 20년 후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장기적으로 마을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겨 마을만들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농촌에 자본이 덜 투입되어서 살기 어렵고, 10년 혹은 20년 후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 줄 알았다. 그래서 친환경 생산자모임을 만들어 농작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일에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농촌에 사는 대부분의 부모 마음이 그렇듯이 학선리 주민들 역시 자식들이 도시에 나가 잘 배워서 출세하기를 바라셨다. 주민들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해서 농촌에 살고 있다는 한(恨)을 가지고 있지만, 부부가 보기에는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자연의 섭리에 맞추어 사는 그분들의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돈의 관점이 아니라 생명의 관점, 삶의 관점에서 마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주민들의 삶에 대한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마을만들기의 방향을 ‘교육’과 ‘문화’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것이 ‘행복한 노인학교’와 ‘학선리 마을박물관’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사용자

마을은 보물로 가득 차 있다

행복한 노인학교는 2008년 1월에 처음 문을 열어서 2011년 8월에 34명이 졸업했다.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 건물을 활용해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농한기에 1주일에 한 번씩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글반, 컴퓨터반, 도예반, 서각반, 요가반, 이야기반, 미술반, 짚신 공예반 등을 동아리 형태로 운영했다. 강사는 지역의 교회와 귀농귀촌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재능기부를 통해서 확보했다. 박후임 씨가 담당했던 동아리는 이야기반, 한글반이었고, 이재철 씨는 나머지 동아리를 담당하여 이끌어 나갔다.

부부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보물로 가득 차 있는 주민들의 삶을 하나씩 엮어 나가며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느꼈다고 한다. 즉 주민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공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야기반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나누면서 울고 웃었던 삶의 이야기들을 모아 노트 18권 분량의 자서전을 만들었다. 부부는 이 자서전을 바탕으로 학선리 주민들의 삶을 담은 책이나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하고 있다.

한글반에 참여한 주민들은 방학도 없이 열심히 한글을 배우셨다고 한다. 농번기에도 방학? 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렇게 배운 한글 실력으로 지역신문에 짧은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박후임 씨는 한글반을 운영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분으로? 자기 이름만큼은 꼭 써보고 싶다며 한글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를 소개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던 할머니가 어느 날 기쁨에 찬 모습으로 오시더니 “내 이름이 도장에 새겨져 있어!”라며 너무나도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웃음을 짓는다.

도장에 새겨진 이름 석 자를 읽는 순간 할머니는 고단했던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은 것처럼 신이 나셨을 터이고, 부부는 학선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학선리는 이렇게 부부와 주민들이 서로 ‘가슴 언어’를 나누면서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용자


오래된 길, 미래를 열다

“삶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졌다.” 부부는 행복한 노인학교에 대한 성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더불어 구체적인 성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선리 마을박물관’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주민들이 삶의 자존감을 지속해서 간직할 수 있는 무언가의 매개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민들에게 마을박물관을 제안했다. 마을박물관의 주제는 ‘오래된 길, 미래를 열다’로 정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녀 보니 방치된 옛날 물건들이 많았다고 한다. 진안군의 ‘지역사회기여사업’을 통해 350만 원을 지원받아 주민들이 기증한 물건과 사진을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복사했다.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에 소박한 박물관이 만들어지던 날, 주민들은 아이처럼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 서로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물건과 사진을 기증해서 지금처럼 박물관이 풍성해졌다고 한다.

현재 학선리 마을박물관은 마을만들기 사례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방문이 많아졌지만,? 애초에는 외부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을박물관에는 시집갈 때 눈물을 훔치며 친정어머니로부터 받은 세간, 기억이 가물가물한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와 옛날 농기구, 이 세상에는 없지만 보고 싶은 가족과 함께 찍은 오래된 가족사진 등 주민들에게 익숙하고, 그분들의 사연이 담겨 있는 물건들이나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마을박물관은 주민들에게 더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감사함과 그리움, 그리고 애환이 묻어 있는 오래된 길을 돌아보며, 마을의 미래를 자존감 있게 열어가고자 하는 그들만의 통로 같은 곳이라고 할까?


주민과의 동행

부부가 처음 귀농을 했던 2005년 당시, 마을의 실 거주자는 29가구에 불과했지만, 정착 8년 차인 현재는 37가구로 증가했다. 귀농귀촌인 세대도 5가구에서 16가구로 증가했다. 청장년층과 아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을의 활기도 되살아났다고 한다. 마을 청년회가 결성되는가 하면 주민들이 매년 여름에 마을만의 특색 있는 축제를 열어 마을 속에서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2010년 마을축제는 “엄니~ 손자랑 마을박물관 가게요!”라는 주제였다. 마을박물관에 출향인을 초청해서 주민들과 동행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2011년에는 ‘학선리 마을 전! 전! 전!’이라는 주제로 마을축제를 열었다. 첫 번째 전은 행복한 노인학교의 졸업식과 ‘졸업작품전’, 두 번째 전은 ‘마을 벼룩시장전’, 세 번째 전은 ‘먹거리전’이었다. 2012년에는 진안군 마을축제 행사 중의 하나로 학선리에서 ‘마을, 그때 그 사람’이라는 주제로 마을축제를 열었다.

학선리에는 마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세련미를 자랑하는 건물도 없을뿐더러 요란한 마을치장도 없다. 다만 주민들이 서로의 삶을 엮어 가면서 도시민들과도 기꺼이 동행할 수 있는 마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마을은 이미 사람들과 동행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곰삭은 사이가 되는 행복한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나가며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 부설 연구소장인 구자인 박사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시작은 나 자신이 먼저 바뀌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마을이 잘 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자식과 손자들에게 존경받는 내가 되어야 그들도 이 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은 희망을 찾을 수 있으며, 살기 좋은 마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선리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서로 아옹다옹하며 살다가 서로의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침투의 계기를 통해 마을을 변화시킨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변화에는 이재철, 박후임 부부의 겸손한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왕 변화를 시작한 학선리가 앞으로 지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마을시스템 구축을 통해 경제적 자립과 자치를 완성하는 마을로 더욱 진화하고 다른 지역의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희망의 근거들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확산되어야 한다.?

글_ 이창한 (뿌리센터 연구위원 happyhanmin@makehope.org)

* 이 글은 희망제작소가 2013년 5월에 진행했던 <제3기 커뮤니티비즈니스 귀농·귀촌 아카데미>의 일환인 진안군 현장탐방 프로그램에서 이재철, 박후임 부부로부터 소개받은 학선리 마을에 대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아젠다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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