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이번 답사길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분주히 마을회관 정리를 하고, 간단하게 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뒤 버스에 올랐습니다. 순천시 관계자분들과 면장님, 이장님께서 마을 밖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시더군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쨌든 헤어짐입니다. 아쉬운 마음일랑 모두 장산마을 논두렁에 남겨 둔 채 버스는 순천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의 목적지는 두 곳이었답니다. ‘매실명인’으로 유명한 홍쌍리 여사의 광양 청매실 농원과 전남 곡성에 위치한 친환경 발아미 전문기업 미실란입니다. 청매실농원과 미실란은 희망제작소와 아주 인연이 깊은 곳인데요, 홍쌍리 여사와 미실란의 이동현 대표 두 분 모두 희망제작소의 호프메이커스클럽(HMC)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 것이지요.

지난 4월 창립한 호프메이커스클럽은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만나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이를 창조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결성된 모임입니다.  매월 개최되는 정기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약 200여분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소통과 공유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지요. 지난 8월 말에는 처음으로 회원분들이 희망제작소를 방문하셔서, 제작소 식구들이 분주히 손님맞이 준비도 하고, 회원분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희망제작소 식구들은 남도삼백리길 답사를 위해 순천으로 발걸음을 옮긴 김에 전남에 위치한 두 회원분의 본거지(?)를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홍쌍리 여사와 이동현 대표는 지역에서 농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분들입니다. 두 곳 모두 풍광 좋은 섬진강변에 위치하고 있고요. 청매실 농원과 미실란.  평창동에서 소식으로만 접하던 우리 농업의 전진기지들인데요, 과연 어떠한 곳일지 모두들 기대 반, 셀렘 반의 호기심을 안고 달려갔답니다.

”사용자순천을 벗어나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요? 첫번째 목적지인 광양 청매실 농원에 도착했습니다. 언덕을 따라 전시판매장으로 향하는데, 넓게 펼쳐진 장독대 밭(?)이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반질반질 윤이나는 수많은 장독대가 태양 아래 늘어서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식객’ 같은 영화에서 보던 바로 그 풍경이었죠. 장독대 너머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요.

농원 안쪽에 위치한 전시판매장에 들어서자 황톳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홍쌍리 여사가 일행을 맞아주셨습니다. 전시장에는 매실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매실 원액은 기본이고요, 된장, 고추장, 심지어는 캔디와 젤리까지 있더군요. 다들 한동안 전시장에 진열된 상품들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용자시원한 매실차로 목을 축이며, 모두들 홍쌍리 여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농원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시며 농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죠.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농원을 가꾸기까지 겪으셔야 했던 고생이야 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여사님에게 농원의 매실 나무들은 자식과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매실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자부심 이상의 무언가가 묻어나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제작소 식구들 중 누군가 “바쁘실텐데 이렇게 방문을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홍쌍리 여사는 덕분에 쉬는 거라고 웃으십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매실 농사를 지어오셨으니 이제 좀 쉬엄쉬엄 하실 법도 한데, 여전히 매일 농원에 나가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매실 나무들을 돌보실 때면 그렇게 즐겁고 힘이 날 수가 없다고 하시네요.

”사용자홍쌍리 여사의 안내를 받아 농원 구석구석을 둘러보았습니다. 곳곳에 싯구를 적어놓은 조형물들이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실나무의 꽃들이 만개하는 봄에 농원을 찾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봄꽃, 섬진강, 남도… 왠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들입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농원을 돌아다니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는데요…그래도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과 시원하게 펼쳐진 섬진강 풍경으로 더위를 달래며 무사히 투어를 마쳤습니다.
 
전시판매장으로 돌아와서는 정말 맛있는 매실 아이스크림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농원에 오기전 부터 매실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먹어보니 기대 이상이었답니다. 음…청량하다고 해야할까요… 적당히 달면서도 새콤한 맛이 일품이더군요. 혹 청매실 농원을 방문하시게 되면 꼭 맛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정체불명의 재료들을 섞어 만든 배0킨0빈0 같은 아이스크림과는 비교할 수 없답니다~

”사용자여사님이 싸주신 매실 된장과 고추장을 모두 하나씩 손에 들고 기분좋게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된장병을 만지작거리며 든 생각은  매실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응용제품 생산은 물론이고, 섬진강변에 위치한 농원 역시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저 농촌의 흔한 풍경이라고만 여겨졌던 논과 밭, 과수원 등이 모두 소중한 공간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음 목적지인 미실란으로 향했습니다. 전남 곡성에 위치한 작지만 강한 기업, 최상급 품질의 친환경 발아미를 생산하는 농업기업 미실란입니다. 미실란은 특이하게도 폐교 건물을 사무실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내린 뒤 건물로 들어가니 흡사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더군요.  먼저 푸근한 인상의 이동현 대표가  미실란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의 발표를 진행해주셨습니다.

이동현 대표는 일본 큐슈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안정된 연구자의 길을 버리고, 전라남도의 작은 도시인 곡성으로 내려와 맨손으로 지금의 미실란을 일군 ‘농부’입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미실란이 자랑하는 발아미 제품의 우수한 품질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발아미 제품들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사용자물론 그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  도전뿐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학교 건물이지만, 이 조그만 건물 안에 각종 연구 시설과  저온 저장고 등을  갖추고 직원들이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건물 입구를 나와 왼편으로 조금 걸어가니 푸른 벼가 익어가고 있는 들판이 넓게 펼쳐졌습니다.  이동현 대표가 벼 품종을 연구하기 위해 맑은 섬진강 물로 300여종의 벼를 시험 재배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이동현 대표는 아무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이곳에만 나오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면서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사용자교실(?)로 돌아오자 맛있는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둥~ 제작소 식구들이 이번 답사길에서 맛본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면서 한 목소리로 극찬한 메뉴!  바로 미실란이 자랑하는 발아현미로 지은 연잎밥과 발아현미로 면을 뽑은 냉면! 쫄깃쫄깃하면서도 찰기있는 맛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콩나물 반찬에 김치 한 접시를 앞에 둔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느낌이더군요.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이동현 대표의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오는, 정말 고마운 밥상이었습니다.

”사용자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서울로 올라가야 할 시간입니다. 이동현 대표를 비롯한 미실란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금 버스에 올랐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섬진강의 물결을 뒤로한 채 버스는 북으로 북으로 향합니다. 버스 안에서 제작소 식구들은 이번 답사길을 통해 느낀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공감한 것은 평창동 사무실에서, 그것도 책상 앞에 앉아서만 소식을 접하고 얼굴을 마주하던 동료 연구원과 HMC 회원들을 직접 땀 흘려 일하는 현장에서 접하니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제작소 역시 이런 저런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곳이다 보니 때론 사무적으로, 때론 형식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베어나왔습니다.

”사용자지난 3년 간 희망제작소는  “지역에 희망이 있다”, “현장에 희망이 있다”는 구호 아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요, 이번 답사길을 통해 일상의 업무에 파묻혀 우리 스스로 처음의 다짐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된 것 같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밤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겨우 3일 동안 떠나있었던 것 뿐인데, 차창 밖의 거리는 무척 낯설더군요.
밝은 네온사인 불빛,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귀를 때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그리고, 기름냄새가 벤 무거운 공기.        

평창동에 도착해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조금 노곤해진 상태여서 그런지 출발 할 때 보다 가방이 몇 배는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남도 삼백리길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이 곳에서, 저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다시 길 앞에 선 기분이었습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서울의 밤으로,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글_ 희망제작소 콘텐츠팀 (ktlu@makehope.org)
사진_ 희망제작소 정성원 연구위원 (sansotong@makehope.org)

이번 답사 기간 내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선 밤 늦은 시간까지 일정을 함께 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노관규 시장님을 비롯한 순천시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작소 식구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장산마을 주민분들과 이장님, 별량면 면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홍쌍리 여사님과 광양 청매실 농원 직원분들, 이동현 대표님을 비롯한 미실란 직원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희망제작소 식구들 모두 지역을 위해, 그리고 농업을 위해 더욱 분주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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