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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뉴욕의 건축물 중에 ‘래디오시티 뮤직홀’이 있다. 미증유의 대공황이 미국을 덮고 있던 시기에 록펠러센터의 일부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20세기 전반 유행하던 화려한 ‘아르데코(Art Deco)’건축 양식의 극치를 이룬다. 클라이슬러 빌딩이 아르데코의 외양을 대표한다고 하면 래디오시티 뮤직홀은 아르데코 실내 디자인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건축 당시 ‘불황 중에 이렇게 사치스런 건물을 짓느냐’는 비판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던 모양이다. 건물이 완공됐을 때 로비에 서 있던 존 록펠러에게 어느 기자가 다가서서 질문했다. “사람들이 모두 우울해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화려한 건물을 지었습니까?”이에 대한 록펠러의 대답은 간단했다. “맞습니다. 모두 우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 들어와 있는 동안만이라도 기분 좋으라고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대공황하면 떠오르는 것이 뉴딜 정책이고, 뉴딜하면 생각나는 것이 대규모 정부투자로 거대한 강을 막아 TVA나 후버댐 등을 건설했던 토목공사다. 그러나 대공황 중에 생겨난 것이 댐만은 아니다. ‘마천루’라 불리는 뉴욕 맨해튼의 빌딩 숲도 대공황기에 오늘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황과 이민으로 넘쳐나던 실업자가 동원되어 오늘의 맨해튼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머릿속에 깊이 입력된 프로그램


예를 들면 20세기 초고층의 상징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1930년에 착공되어 3500명의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1년여 만에 고속으로 완공됐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짓기는 했지만 불황기에 한 동안 입주자가 없어 엠프티(empty)스테이트 빌딩이란 별칭을 얻은 적까지 있었다고 하니, 모든 시설물은 건조당시와 사후 평가가 꼭 같은 것만은 아니다. 여행객들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고 대개 감탄하지만, 미국의 식자들 중에는 멋대가리 없는 무계획의 빌딩숲이라고 혹평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순환으로 보아야 할까, 역사의 반복으로 보아야 할까. 세계는 지금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졌다. 2년 전 서브파라임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월가와 세계 금융계를 강타하더니 이제 실물경제 위기로 깊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개의 선진국들이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75년 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이 써먹었던 뉴딜정책을 다시 끄집어냈다. 무엇보다 새로 출범하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결국 중국도 별 수 없다. 아직까지는 미국 경기가 살아나야 세계의 모든 공장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한국은 산업국으로 부상한 이후 세계적 불황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이번에 처음으로 혹독하게 겪고 있다. 이 위기에 대응하여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녹색 뉴딜’이다. 75년 전 루즈벨트가 했던 것처럼 대대적인 토목사업을 벌여 실업자를 구제하고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것이다.

녹색 뉴딜 정책의 핵심 줄기는 아무래도 4대강 정비 사업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정부의 머릿속에 깊이 입력된 프로그램은 역시 강을 만지는 일인 모양이다.

”?”

정부는 4대강 정비 사업으로 96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단순 임시직의 일자리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식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게 단순직이든 임시직이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해할만 하다. 경기회복에 토목사업만큼 단기효과가 큰 산업도 드물다.

그러나 한 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은 이왕에 녹색 옷을 입혔으니 정부의 뉴딜 정책이 그 결과도 녹색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래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란 개념을 본격적으로 거론한 것은 유엔환경계획이다.

이 기구는 21세기에 각국이 해야 할 일은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고 기후를 안정시키며 망가진 자연을 회복시키는 데 대담한 투자를 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제안을 제시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이런 방향에 맞춰 그린 뉴딜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그린 뉴딜과 그레이 뉴딜


재원 배분을 놓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선진국 정치지도자들은 녹색을 단지 포장용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환경적 차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자가용 위주의 교통정책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가 현재까지 내놓은 그린 뉴딜정책을 보면 완성된 후 어떤 모양의 국토를 갖게 될 것인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그린’이 될 것인지 ‘그레이’가 될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번의 세계경제 위기 대응을 통해 모든 국가의 체질이 바뀔 것이다. 공공투자의 규모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각국의 세계관과 문명관에 따라 국가의 모습도 ‘녹색체질’과 ‘회색체질’로 나뉘게 될지 모른다.

*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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