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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소기업에서 자동화시스템을 다루는 일을 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은 공무원이다. 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부서는 환경관리과, 하는 일은 생태자료실 운영이다. 그 작지 않은 간극 사이로 별명도 생겼단다.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1월24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그를 만나기 위해 안산시청을 찾았다.

“공장에 다니다 보니 환경오염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볼 수 있었죠.”
맑고 선한 인상의 그가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남과 다름없이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그가 환경문제를 ‘자기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부터. 공장 안팎의 상처받는 자연을 접하며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강렬한 자각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공해추방운동본부’, ‘환경운동연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후, 그의 삶의 변화에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환경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직장도 그만뒀다. 가족들은 ‘할 사람 많은데 왜 하필 당신이냐’며 반대했다. 밤에는 경찰서에서 공공근로를 하고, 낮에는 밀렵감시 등의 활동을 했다.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았느냐’는 걱정에 최씨는 담담히 말을 잇는다.
“원래 돈이 있는 사람이 환경 운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경제 사정은 심각했습니다.”

전셋집 옥상에서 출발한 시청 생태자료실

1994년 조성된 인공호수 시화호는 환경운동에 뛰어든 그에게 숙명처럼 다가왔다. 조성 후 3년도 못되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등 ‘죽음의 호수’로 변한 시화호였다.

그의 반응은 빨랐다. 시화호가 위치한 안산에 전셋집을 얻었고, 매일같이 시화호 주변을 드나들었다. 전셋집 옥상에 생태자료실을 차리고, 부상당한 조류를 치료했다. 최씨의 ‘튀는’ 행동에 욕을 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다행히 시가 먼저 그의 노력을 알아줬다. 1999년 안산시의 일용직 조수보호원으로 채용됐다. 월급은 60만 원.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았던” 시절이다.

열정적인 그의 활동은 점차 공무원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2005년 안산시청 안에 생태자료실을 열게 되었고, 그는 전문계약직 ‘마’급 공무원 신분으로 운영을 맡게 된다. “가나다라마 중 ‘마’ 급”이라며 그가 웃는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곳도 시청 생태자료실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다. 멸종위기 동물과 새들의 사진, 슬라이드 자료 등이 가득 자료실을 메우고 있다. 그가 십 년 넘게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모은 자료들이다. 냉장고 문을 열자 차에 치이고, 총에 맞아 죽은 새들의 시체가 말없이 잠들어 있다.

갑자기 최씨의 전화벨이 울린다.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 말을 잇는다.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마친 그가 “다친 비둘기를 발견했다는 분이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디든 생명이 있는 곳이 그의 현장이다.

”?”공룡알 화석으로 485만 평 지켜낸 사연

“슬라이드 자료만 20만 장 됩니다. 사진은 셀 수도 없고요.”
시화호에 온 뒤부터 그는 호수 주변의 생명체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후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은 후 저녁이면 사진 속의 새들을 일일이 손으로 세곤 했다. 개체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학자들도 지금은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한다.

1997년에는 뜻밖의 수확을 올리기도 했다. 시화호가 걸쳐있는 화성 부근에서 사진을 찍던 중 공룡알 화석을 발견한 것이다. 학계에 알리는 한 편,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의 철새 5개 종이 이 지역에서 서식하는 장면을 찍어 정부에 제출했다.

반향은 컸다. 시화호 주변 485만 평이 천연기념물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것이다. 드넓은 철새의 땅이 개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변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아버지도 “한 우물을 파라”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최씨와 같은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시화호는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90년대 까지만 해도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던” 공간이 지금은 “물 반 고기 반”인 진짜 호수로 돌아왔다.

물론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최씨는 “수자원 공사에서 시화호 주변 280만 평을 개발하는 ‘시화멀티테크노밸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문제점을 짚기 시작한다.
“시화호에서 조력발전을 한답니다. 물이 드나들다 보면 퇴적층이 생기고, 준설하기가 힘들어요.”

“환경운동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바뀔 때 가장 힘들다”

환경운동에 대한 열정이 차다 못해 넘치는 최씨다. 그에게도 일이 정말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단다.
“환경운동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바뀔 때 가장 힘듭니다. 일을 하며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참을 수 있어요.”

그는 수자원공사가 사업을 벌일 때 자문하는 ‘지속가능위원회’ 활동을 6개월 만에 그만 둔 경험이 있다. ‘쓴소리’를 해야 할 환경전문가들이 위원회 활동을 하며 ‘개발’로 입장을 선회하는 것을 본 후이다.
그에게 환경 운동은 절대로 ‘개발의 논리’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돈 안들이고, 자연스럽게 그대로 두는 것만이 환경운동이다. “돈을 들여 사업 하는 것은 오직 인간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시화호에서도 ‘친환경’이라는 명목으로 사업을 벌입니다. 시화호는 개발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죠.”

최씨는 인터뷰 당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모두 ‘상식’에 관한 것이다. 현장을 체험하고 잘 아는 사람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 개발과 자연은 양립할 수 없다는 상식이다.
“전공자도 없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환경부가 해야죠.”

대운하와 새만금이 화제에 오르자 그의 목소리는 조금 더 커진다.
“문화재 훼손, 동식물 보호지역 보존, 수위 조절, 홍수 시 토사 유입… 이거 다 어떻게 풀어가려고 합니까. 새만금도 방조제 막으면 갯벌이 죽을 수밖에 없어요. 너무 한이 맺힙니다.”

그와 함께 시화호 답사에 나섰다. 시화호를 가로지르는 전선 탑, 골재채취로 허물어진 산등성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황량한 풍경들 사이로 최씨가 들려주는 시화호 생명체들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란 건 열정과 해박한 지식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은 혼자의 몸이 아니라 공생해요. 너도 살아야 나도 산다는 겁니다. 그것이 자연이죠.”
‘인간과 자연은 하나’ 식의 그 상투적인 말조차 최씨의 입을 통하면 살아 꿈틀대며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입으로만 말하지 않았다. 몸을 울려 공명하고 있었다.

정리_ 이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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