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밤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했다.
밀린 숙제를 해결하려는 학생처럼 맘가짐이 남달랐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러브콜에도 원순씨의 지역순례에 함께하지 못했었다.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일더미’를 핑계삼으면서…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귀를 막고 눈을 닫고 발걸음을 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지역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토요일이라 이른 아침부터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들이 붐볐다. 멀리 빌딩 숲 사이로 붉은 아침 노을이 일고 있었다. 원순씨는 진작부터 차 안에 랜튼 하나에 의지해 노트북을 열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작년 4월부터 진행되어 온 원순씨의 지역순례에 이제서야 합류했다. 원순씨가 두드리는 키보드의 경쾌한 소음을 배경으로 나는 왜 이 새벽을 뚫고 우리가 서울을 등지고 나서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희망제작소는 그동안 급속도로 침체돼가는 지역과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는 중앙과의 ‘다름’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한 가지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주목했던 그 ‘다름’이라는 것이 발생한 이유는 서울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도, 지역이 아무것도 갖지 못해서도 아니라는 것. 중앙은 가진 것이 많아 그 혜택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지역은 알려지지 않아서 미처 활용하지 못한 많은 가능성과 인프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박원순의 지역순례는 이런 이유로 시작되었다. 지역에 분명 존재하고 있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몸부림들’, 사람들, 꺼리들, 자원들… 우리는 그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함께 한 이번 순례는 최근 인구 14만 규모의 소도시로서 전국체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저력 있는 도시 김천과 자전거로 잘 알려진 상주, 조선시대 민요(民窯)로서 그 역사와 뿌리가 깊은 문경 일대에서 이루어졌다.

1. 김천시립도서관
”?”60대에 접어들면 청년모임에 가입이 된다는 초고령사회 김천시에서 도서관을 곳곳에 만들기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로 만들어진 최신시스템의 김천시립도서관. 앞으로 김천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는 데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2. 상주 자전거박물관

”?”서쪽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지만, 시가지는 평균경사도 5%미만의 평지도시 상주에는 출퇴근 시간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무리들이 도로를 장악한다. 하지만 시내에는 여전히 차량이 많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곳곳에 끊겨 있다. 끝에서 끝까지 차로 15분에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도시 상주. 이곳이 보다 선진적인 환경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점쳐본다.

3. 상주환경농업학교

”?”우리도 간디처럼 개발일변도가 가져온 변화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말로 자연으로 돌아가 조용한 혁명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며 역설하던 오덕훈씨. 농사 외에 별다른 기간산업이 없는 이 곳 상주에서, 친환경농업의 보급과 그 판로의 활성화를 통해 그 옛날 상주목의 영화를 회자할 그 날을 꿈꾼다.

4. 상주 특산물 곶감

”?”상주는 감이 유명하다. 집집마다 마당에는 어김없이 감나무가 심겨져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감을 곶감으로 만드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더 많은 상품화전략이 필요하다.

5. 문경 도자기

”?”도자기 하면 여주나 이천을 떠올린다. 허나 문경도 민요(民窯)로서 도자기 역사가 그만 못지 않다. 생활자기, 서민을 위한 자기를 만들어내느라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최근 문경에서면 도자기 명인이 두 사람이 배출되었다. 문경요와 영남요를 찾아가 문경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가늠해보았다.

박원순의 지역순례는 중앙이 가진 많은 문제와 지역이 가진 많은 가능성을 우리는 치유와 키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공유하기 위한 희망제작소의 가장 기본적인 연구행위이다.

지역과 접속하는 이 소중한 기회를 챙기지 못한 것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같은 이유로 나 역시 지역순례를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함께해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구원들이 악착같이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세상을 보듬고 안아야 세상이 우리를 기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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