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하필이면 날 더운 여름이다. 체면을 벗어던지고 런닝셔츠 바람으로 에어컨도 틀지 않은 작은 방의 좁은 책상에 앉아 3시간째 컴퓨터를 만지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는 보면 볼수록 눈이 침침해 모든 문서들을 프린트해서 읽어본다. 다시 컴퓨터 속에서 틀린 부분을 체크해 보고서를 완성해간다.

지금 다루고 있는 아이디어는 한 번도 신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다. 평생 처음가보는 사이트들을 들어가 보며 이것저것 자료를 모으다보니 얼핏 그럴듯하기도 하다.

‘대체 나는 왜 이 나이를 먹어서 이런 일을 한다고 했을까?’

담당공무원을 만나러 왔다. 민원부서에 가서 한참을 설명하고 있자니, 민원실로 관계부서의 담당자가 온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요즘 공무원 친절해졌다’는 거다. 이렇게 내려와서 직접 설명하러 오다니. 물론 나를 민원인쯤으로 여긴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처음부터 희망제작소와 내가 하는 사업하나하나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요령을 터득했다. 이야기가 진전되는 상황을 봐서 이야기 하면 되는 거다. 오히려 시민단체 쪽에서 왔다고 하면 꺼리는 경우도 있고, 여기 온 이유를 설명하는데 한참이 걸리기도 한다. 공무원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참을 자욱하던 안개가 걷힌 느낌이다.

역시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하는 건, 내가 묻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공무원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조금은 내가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아, 이 맛이구나.’

앞의 두 이야기는 올해 3월부터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의 ‘숨은 보석 찾기’ 사업을 수행한 29명의 ‘아이디어 심마니’들이 2~3달 동안 실제로 겪은 경험을 재구성해 엮은 겁니다.

‘숨은 보석 찾기’ 사업은 사회창안센터에 접수된 아이디어 가운데 그간 연구원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1,000여 개의 아이디어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시니어들이 자신의 눈으로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선정한 후, 이를 조사하고 현실화를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이 모든 작업은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수료한 원우회 회원 중 29명으로 구성된 ‘아이디어 심마니’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3월부터 5월까지 1차적으로 1,000여 개의 대상 아이디어 가운데 꼭 추진해야할 보석 아이디어를 가려냈고, 이후 최근까지 바삐 현장을 뛰어다니며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1일, 그 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결산보고 및 쫑파티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장면 하나, 둘로 설명될 수 없는 고생을 한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차례차례 말하고자 합니다. 꽤 긴 글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긴 하지만,? 심마니님들의 활동상과 노고를 담기에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

심마니 쫑파티!

지난 9월 11일 오후 4시 희망제작소 2층 NPO센터에서 전체 심마니님들이 함께하는 ‘숨은 보석 찾기 결산보고 및 쫑파티’가 열린 자리. 몇 개월간의 노고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상을 받아들고서도 “이런 멋진 상은 처음 받아본다”며 연신 웃음을 띤 15명 남짓의 심마니가 모였습니다.

”사용자

그들이 받은 상으로 그들의 노고를 대신 읊어보려 합니다.

– 심마니와 희망제작소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주신 김영길, 박용기, 송장식님은 ‘고리상’.
– 제안자로, 심마니로 다방면 열심히 활동해주신 김용대님은 ‘일신우일신상’.
– 바쁘고, 아픈 와중에도 병상투혼을 발휘해주신 정현철님은 ‘투혼상’.
– 어려운 아이디어로 힘들어하셨음에도 최고의 보고서를 완성해주신 정운석님은 ‘좌절은없다상’.
– 조사가 힘든 와중에도 마감날을 딱 지켜서 좋은 보고서를 보내주신 안수진님은 ‘포기하지 않는 당신이 챔피언상’.
– 컴퓨터가 익숙치 않아 일일이 손글씨로 모든 보고서를 정성스럽게 써주신 문수일, 임건택님은 ‘한석봉상’.
– 기승전결, 간결하고 깔끔한 보고서를 완성해주신 류익상, 전화수, 진용선, 한석규님은 ‘모범답안상’.
– 혼자서 분과 전체를 맡아 정성스러운 보고서를 보내주신 김승국님은 ‘일당백상’.
– 아이디어를 제안해주신 분과 아이디어 자체에 대한 애정이 넘쳤던 전경배님은 ‘아름다운 마음상’.
– 늘 좋은 말씀과 밝은 미소로 저희를 즐겁게 해주신 최용완님은 ‘아름다운 미소상’.
– 과제를 독촉하는 제 문자와 메일에 언제나 가장 빨리, 즐겁게 답신을 보내주신 함오연님은 ‘N세대상’.
– 김윤택, 박재일, 남호익님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보여주시어 ‘최선에 고마워요’상.
– 형편이 허락지 않아서 임무를 하지 못하신 분들께는 ‘마음만도 고마워요’상.

못다한 심마니 이야기

‘보석’이라는 낯간지러운 이름을 사업명칭에 쓰는 게 어색했지만, 적어도 ‘창고’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숨은 보석 찾기’라는 사업을 시작할 때는 말입니다.

원래 ‘창고대방출’이라는 이름이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었거든요. 작명을 할 때, 정말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값진 보석임을 세상이 알아줬으면 싶었습니다.

‘보석’이 아닌 아이디어도 분명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금처럼 오래가고, 세상에 내놓을 때 제법 값을 받을 수 있는 게 보석이라고 본다면요. 이미 실행이 되었거나, 그다지 실효성이 없거나, 문제제기부터 잘못된 아이디어도 있지요. 하지만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불편을 자신 만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다른 이도, 다른 장소에서도 이와 같은 불편을 겪으리라고 생각해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를 찾아 글을 올리는 순간, 그 사람의 손길, 그 사람의 마음은 분명 보석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보석을 캐는 ‘아이디어 심마니’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디어 심마니는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제 2의 인생은 나보다 조금은 우리를 위해, 사회를 위해 살기 위해 모인 ‘행복설계아카데미’ 수료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료생 중 29명이 모여서 보석을 찾겠다고 나섰습니다.

나의 보석이 아니라 사회에 보석처럼 작용할 좋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요. 그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좁은 컴퓨터 방에서 평생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한 달이 넘게 하고, 아쉬운 소리 한번 안하고 살아도 될 그들이 아이디어를 조사하기 위해,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아쉬운 부탁의 말들을 남기곤 했습니다.

심마니의 평균연령이 60세 남짓입니다. 직접 일을 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지시를 하는 게 익숙했던 이들입니다. 선박회사의 대표였던 사람과 대기업의 이사나 상무였던 사람,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그리는 성공의 모습을 한 사람들임이, 틀림없는 성공의 모습들을 한 그들이 그렇게 석 달을 지냈습니다. 3월부터 있었던 아이디어 심사기간까지 감안하면 반년입니다. 돈도 안 되고, 행세를 할 수도 없는 일들을 6개월간 묵묵히 수행했습니다.

약 900개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별도의 심사를 해 200개를 걸러냈고, 200개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29명의 심마니가 주제별로 나눠 조사보고서와 최종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약 130여개의 아이디어가 그들의 손을 거쳐 조사보고서와 최종보고서로 태어났습니다. 이 가운데 관계부처나 기관에 제안할 ‘정책제안서’가 20개, 국회 호민관클럽에 전달할 ‘입법 아이디어’가 7개, 사회적으로 진행해봄직한 캠페인 기획서가 4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단체에 제안할 ‘공개입양 기획서’가 4개가 나왔습니다.

김용대님은 ‘교차로 신호등 녹색점멸신호 도입’을 두고 직접 서울시에서 열린 전문가포럼에 참여해 아이디어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류익상님은 ‘지방의회 앞에 실시간 전자게시판을 달자’는 아이디어를 통해 의회와 주민간의 소통정책 전반에 대해 점검하면서 서울 구청 여기저기를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조사했습니다. 과거 구의원이셨던 최용완님은 아이디어를 조사하면서, 예전에 알던 공무원들을 일일이 만나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임건택님과 문수일님은 컴퓨터 타자가 어려워, 각종 현황과 법률을 일일이 손으로 써주셨습니다. 오타 하나 없는 완전한 보고서를 쓰기 위해 몇 장의 종이 위에 손 아프게 글씨를 써야만 했을까요? 전경배님은 보육원과 요양원을 함께 만들어서 어린이와 노인들을 좋은 친구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조사하기 위해 보육원과 요양원을 다녔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자, 직접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 많은 분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론 어려움에도 부딪히고, 때론 즐거움도 느껴가며, 숨은 보석의 그림들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숫자로 보이는 결과들. 전체 200개 가운데 정책제안 20개, 입법제안 7개, 캠페인 기획 4개, 공개입양제안 4개가 겨우라고 생각되나요? 15% 정도의 성공률이라니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나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효율성, 떨어집니다. 심마니님들 모두가 인정한 내용이고 사업을 담당한 저 자신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효율성은 적당한 잣대가 아닙니다. 아이디어는 몇 개 제안에, 몇 개 채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라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럼, 다시 물어봅니다. 단 하나라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까? 네, 그럼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될 씨앗들이 있었습니다. 심마니님들은 그 씨앗들을 가려주셨습니다. 씨앗들에 적당한 흙과 물과 비료도 주셨습니다.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보살피는 일은 앞으로 저희의 일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심마니님들이 늘 함께 할 겁니다.

보석을 찾아나선 길, 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보석을 찾아나선 길, 심마니님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보석을 찾아나선 길, 보석이 될 성싶은 좋은 떡잎을 찾았습니다.
이제 그 떡잎을 잘 키워보렵니다. 29명 심마니님들의 힘을 받아서.

글_이경희(사회창안센터 연구원 olivia19@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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