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세계화(globalization) 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뒤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화로 국가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국가’가 아닌 ‘지방’이 정치, 경제, 문화의 실천적인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희망제작소는 고양시와 함께 12회에 걸쳐 주목할만한 해외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려합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세계화’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떠들썩하게 ‘세계화’를 외치기 시작했던 때는 1990년대 김영삼정부 때부터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이것을 그저 “우리나라를 세계적 기준에 비추어 꿀릴 게 없는 선진국으로 만들자”는 뜻으로 소박하게 이해했지만, 사실 이 흐름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일련의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핵심은 저소득계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삭감하는 대신 여러 가지 규제를 풀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었고, 이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이다.

그러나 정작 활성화된 분야는 생산적 투자와 전혀 관계가 없는 금융투기 분야였고,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된 금융위기는 바로 이러한 투기적 금융자본이 초래한 위기였다. 이런 ‘세계화’는 나라간, 계층간, 지역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양극화를 불러일으켰는데, 알다시피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세계화’도 있다. 그것은 지구를 하나의 마을로 보는 관점,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이웃으로 느낄 줄 아는 ‘세계화’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 곳곳의 이웃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한다. 쓰나미와 지진으로 동남아시아와 아이티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고,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이 설사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남미와 아랍, 아프리카의 난민들이 뗏목이나 컨테이너로 미국이나 호주에 밀입국을 시도하다 허망하게 죽는 것을 보고, 환경파괴로 밀려나는 원주민들을 본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것도 보고,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것도 본다. 그 고통에 함께 가슴아파할 줄 알고, 그 파괴에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화’된 시민정신이다.

”사용자
‘세계’와 ‘지역’은 어떻게 만나는가

그런데 ‘세계’는 너무 큰 공동체이다. 그래서 나와는 무관한 것,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 책임질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세계를 바꾸고 싶어도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북극의 빙하가 녹거나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무력해지고 만다.

그런가 하면 너무 작은 공동체도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예컨대 가족이나 작은 마을을 생각해 보자. 가족이나 마을 단위로는 일자리라든가 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 작은 단위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책임감을 느끼며 구체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단위, 그것이 바로 지역공동체이다. 지역은 ‘얼굴을 아는 관계’가 가능하고, 의식을 공유하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며, 나날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생활세계이며, 공통의 관심사를 둘러싸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동체이며, 내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단위이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말은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세계시민이 만들어가는 지역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전지구적 가치, 이를테면 자연과의 공존, 이웃과의 협동,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역단위에서 실천해가는 것을 말한다.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이런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흐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낙후된 지역을 살릴 때 그들은 ‘개발’이 아니라 ‘관계’를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낡고 가난한 동네를 재생시킬 때, 마구잡이로 헐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인간관계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 서로 협력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더 높고 더 큰 건물을 짓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환경과 생태를 고려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마음을 쓴다. 대기업을 유치하는 데만 골몰하지 않고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여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경제생태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일자리를 만든다.

선거 때만 주권자 대접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치와 행정에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발굴한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은퇴한 시니어들도 지역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 행정이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기업, 시민사회와 협력하는 로컬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을 혁신해 나간다. 다른 지역의 것을 부러워만하거나 모방하지 않고 자기 지역의 자연, 역사, 전통문화, 유적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여 지역을 살리는 원천으로 삼는다. 어린이와 노인, 원주민과 이주민을 연결하여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에서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 드릴 계획이다.)     

혁신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지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책임감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지역,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글_ 유시주 (희망제작소 소장, ysj@makehope.org)

월간 고양소식 3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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