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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3)
일본 생협 요양시설 Day Nippa Center에 반하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한 마룻바닥, 은은한 조명 아래 삼삼오오 안락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말끔한 모습의 고령자들. 그 사이를 세키구치 과장의 상냥한 안내를 받으며 걸으니 마치 대대로 유명한 집안의 다도모임에 초대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곳이 요코하마 시에 위치한 복지 생협 ‘클럽 후쿠시’(Club FUKUSHI)의 요양시설 중 하나인 데이니파센터(Day にっぱ Center-Day Nippa Center)다.

클럽 후쿠시는 고령자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 데이니파센터의 물리적 환경을 원래 살고 있던 주거지와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고령자들이 요양시설에 입주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환경에 홀로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사실 물리적 환경은 어떻게든 조성할 수 있겠지만, 정서적 안정감을 공유하며 유대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세키구치 과장의 답변은 놀라웠다. 데이니파센터에 입주해 있는 고령자들의 85% 이상이 평균 25년째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 클럽 후쿠시의 원년 멤버 조합원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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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후쿠시의 전신(前身) 격인 ‘생활클럽’의 시작은 단순했다. 1965년 초 329명의 조합원에게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 사업의 전부였다. 그러다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빨간 비엔나 소시지 대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소시지를 먹어야 한다는 토론을 시작으로 합성세제 대신 천연비누를, 대기업의 가공식품보다는 마을에서 만든 수제 치즈를 먹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조합원 스스로가 운영하고 관리한다는 ‘자주 운영?자주 관리’ 철학이 결합하며 지역사회에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했던 생활클럽의 조합원들 중 상당수는 당시 45~55세의 전업주부였다. 집안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구로 결성되었던 요코하마 시의 주부 조합원들은 1980년대 버블 경제의 가속화로 자식과 함께 살 수 없는 동네 고령자들이 ‘집도 절도 아닌’ 대도시의 요양원으로 떠밀리듯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은 복지가 장애인 등 어느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생활을 누리기 위한 서비스로 인식했다. 그래서 조합원 자신과 지역사회의 복지 서비스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재가복지(在家福祉)’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9년 요코하마 시 코호쿠 구에 일본 최초 복지 전문 생협 ‘클럽 후쿠시’가 출범했다.

클럽 후쿠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먼저 재가복지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쇼핑이나 요리가 힘든 고령자를 위해 식자재를 공동으로 구입하고 배달해 주는 택배 서비스, 청소나 음식 배달 등의 가사노동 서비스, 거동이 힘든 고령자를 위한 차량 이동 서비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불어 고령자의 자립과 원활한 네트워크를 돕는 데이케어(오전 9시~오후 5시까지 운영)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혼자서 생활을 하기 힘든 초고령자들을 위한 입주 요양시설 운영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현재 요코하마 시와 가와사키 시에 걸쳐 16,000명의 조합원과 4개의 지부, 9개의 데이센터를 운영 중이다.

요코하마 시나 민간기업에서도 고령자의 복지를 위한 입주시설과 다양한 데이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저렴한 국공립 시설은 서비스의 만족도가 낮고 일반 기업의 훌륭한 시설은 이용료가 비싸다. 그에 비해 클럽 후쿠시의 입주 요양시설의 이용료는 한 달에 약 2만 엔(약 2십만 원)으로 자식이나 지인의 도움 없이 고령자 본인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클럽 후쿠시에서 일하는 모든 스텝이 조합원이라 민간시설을 능가하는 질 높은 서비스와 유대감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 3섹터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룬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사례를 보고 있으니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조합을 지탱하는 예산 문제가 가장 궁금했다.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조합원들의 연회비와 각종 서비스 사업에서 들어오는 수익으로 많은 부분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부지 매입이나 차량, 건물 구입 같이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경우 조합원의 네트워크를 백분 활용합니다. 최근 매입한 70평 부지는 조합원이 아주 저렴한 값에 땅을 팔았습니다. 그분은 딱히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25년 간 그분을 포함한 많은 조합원들이 데이센터로 활동하러 가시거나 입주하시는 고령자 조합원들을 지켜봤고 또 본인 부모님의 입주를 신청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 자신의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막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클럽 후쿠시는 최근 육아 서비스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사회에서 고립되어 혼자 육아와 싸우고 있는 젊은 엄마들을 위해 직접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아픈 아이들을 위한 1대 1 방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클럽 후쿠시가 노인을 위한 곳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자연스럽게 조합원으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실제로 2층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일과를 마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5시에 1층 어린이집에서 손주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015년은 클럽 후쿠시 출범 25주년이다. 원년 멤버 조합원인 하세가와 아키코 씨(75세)는 데이니파센터의 식사 도우미로 자원봉사를 하는 동시에 25주년 기념행사 위원회에서 기획을 맡고 있다. 원년 멤버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차분한 한마디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9개의 데이센터 모두 조합원들이 힘을 합쳐 설립했습니다. 데이니파센터는 부지 선정만 3년이 걸렸어요. 부동산 정보 검색부터 인테리어까지 조합원들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아주 열심히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손으로 우리 집을 만드니까요. 그들도 압니다. 지금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지만 머지 않아 곧 이용자가 된다는 걸요.”

글_ 최호진 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hjjw75@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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