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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5)
독일 E-민주주의, 클릭을 허하라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주민참여행정과 지방자치제도에 대하여 ‘우수하고, 선도적이며,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스마르크와 프로이센 공화국을 기억하는 이들이 알고 있는 대로, 독일은 무려 18세기까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공화국들의 자치 역사가 문화로 남아 있는 국가이다. 약 200여 년에 걸쳐 발전된 독일 지방자치의 역사는 1990년대 초 지방자치법 개혁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의 인식에 반해 독일의 지방자치제도는 평범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시민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으며, 시민이 결정하거나 합의한 사항에 대한 권위도 제한적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그렇지만, 한국과 비교해도 아주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독일의 지방자치제도가 한국과 비교해 선진적으로 보이는 것은 기본적인 헌법정신과 사회적·문화적 자산, 그리고 그에 맞는 제도의 운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헌법을 살펴보면 독일은 지방정부들의 연합된 형태(제20조1항)임과 연방정부는 각 주의 고른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선언적 조항처럼, 국가의 실체를 지방정부들의 연합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별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한, 국가적으로 행해져야 할 역할과 권한은 지방정부에게 있음’이 규정(제30조)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 3권분립이 규정되어 있고 입법부, 사법부의 권한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이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사례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이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권한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주민참여 확대를 위한 독일의 정책방향

독일의 주민참여제도는 정보공개, 의견청취, 주민협의, 주민결정 등 일반적 주민참여 단계에 걸쳐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각 지방자치정부에서 운영 중인 주민참여제도는 주민 의견 청취와 주민협의 사이의 비교적 온건한 수위로 사업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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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참여의 다섯 단계

이런 제도들은 기본적으로 전통적 방식(대면, 지면)을 통해 소통하고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존 제도 운영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데 있어 유럽 국가들 중 보수적인 독일에서 선도적으로 디지털 방식의 가능성에 대해 폭 넓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독일 연방정부 교육·연구부의 조사에 따르면 17%의 시민들이 이미 온라인으로 민원을 신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한국의 경우 시청이나 구청 등 행정기관에 훨씬 광범위한 민원이 접수되고 있으나, 단순비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실 독일 E-민주주의의 기술적인 부분은 이미 한국의 포털 사이트 등에서 오래 전 구현되어 운영되고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거주지에 계획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성실하게 업데이트하고, 주민이 클릭해서 신청하고, 담당 공무원이 취합해 정해진 절차에 의해 관련 회의를 소집하고, 피드백을 다양한 경로로 지역과 주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나름의 제도운영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분야이다. 현재는 대부분 시청에서 계획 중인 도시개발사업에 주민이 참여하는 형태이지만, 주민들이 일정 수(15만 명이 거주하는 하이델베르크 시는 1천 명의 서명을 규정하고 있음) 이상 한 목소리로 의견을 내면 시장이 직접 참여해 논의하고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최근 이루어진 한 조사에 의하면, 독일의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제안수렴, 평가 등에 있어 거의 모든 지방단체들이 참여의 주요 통로로 디지털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특징적인 모습이다. 60개 지방자치단체가 인터넷을 운영의 핵심적, 필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33개 지방자치단체도 보조적 수단으로 인터넷을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단 2개의 지방자치단체만이 공식적 업무에 인터넷 활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참여예산제도에서는 광범위하게 인터넷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만 있으면 참여가 가능하다. 주민들은 다른 주민이나 지방정부의 사업계획들을 쉽게 살펴볼 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쉽게 첨부할 수 있으며, 이 사업안들은 실시간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쾰른 시에서는 온라인 시스템에 대한 집중적 홍보를 통해 참여예산 1기에 11,000명, 2기에 14,000명이라는 참여예산제도 참가자를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E-민주주의 찬성 vs 반대

그러나 아직 E-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요 비판으로는 복수평가와 익명의 로비 그룹의 영향, 온라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시민들의 대표성에 대한 문제제기 등이 있다. 여기에 문화적으로 익명성에 대한 신뢰의 문제, 전문성에 대한 검증불가, 독해력에 따른 토론 수준 편차, 보안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반대로 옹호자들은 오프라인으로만 진행할 때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참여율, 정보의 실시간 소통·집계·데이터화, 토론일정을 잡기 편하고 장시간 회의가 가능한 시간적, 지리적 유리함으로 참여의 확대를 위해 필수적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독일의 정책은 참여의 확대를 위한 의지를 보여 주는 쪽으로 움직였다.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여러 타겟그룹이 참여가능한 채널을 개발하고, 온라인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한 검증과 반영의 절차 보완 등을 여전히 연구과제로 남겨두고, 훨씬 높은 숫자의 주민참여를 가능하게 한 E-참여, E-민주주의에 대해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평균적인 독일인의 견해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2015년 한독도시교류포럼의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애버트재단 슈베어젠스키 한국 사무소 소장은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에 감탄하며 이를 활용하여 주민 의견 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독일은 E-민주주의에 대한 가능성과 활용성을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인프라가 발전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핑계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계획이나 정책에도 항상 문제점은 있다. 이를 얼마나 보완하고, 어떤 의지와 방향을 갖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그 성공 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이 결정될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는 더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참여로 만들어진 정책은 생색내기가 아닌 정책적 의지가 있을 때 시민들에게 진정성을 인정받고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글_ 이남표 정책그룹 위촉연구원 / smon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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