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와 함께 하는 아이디어 시민들의 모임인 ‘사회창안클럽’에서 활동하시는 김형권 선생님의 감동적인 삶이 세계일보 지면에 실렸습니다.

선생님의 나누고 참여하는 삶이 널리 전파되길 기원합니다. <사회창안센터 주>

매일 수입 1% 기부… “난 행복한 시니어”
[세계일보 2007-04-07 09:33]

대기업 간부였던 ‘늦깎이’ 택시기사 김형권(60·사진)씨는 자칭 ‘행복한 시니어’다. 2004년 말 아름다운재단의 나누기운동에 동참하고부터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즐겁다. 이제는 하루 일을 마치고 적든 많든 수입의 1%를 모금함에 넣을 때가 가장 기다려진다고 한다.
그의 택시를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반 택시와는 달리 차내 비치된 모금함과 함께 곳곳에 부착된 ‘1% 나눔운동’ 스티커가 승객의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김씨 또한 지난해 발족한 ‘나눔의 택시’ 홍보위원으로, 구수한 그의 입담도 한몫 거든다.

“사람들은 기부하면 연말에 큰 돈을 내놓는 것만 생각해요. 하지만 마음만 있으면 작은 돈이나마 언제든지 기부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요. 그러면 적지 않은 승객들이 거스름돈을 모금함에 넣고 내려요.”

한때 잘 나가던 그가 택시기사가 된 사연도 남다르다. 1970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2년 뒤 제일기획이 창립되면서 자리를 옮겨 광고와 인연을 맺은 그는 고속승진을 거듭해 32세에 제작부장이 될 정도로 능력을 발휘했다. 1979년에는 퇴직해 광고업체 ‘금광’을 직접 차려 10년 넘게 운영했지만 연이은 부도로 버티지 못하고 92년에는 사업을 정리했다.

“사업이 어려울 때마다 ‘다 때려치우고 칼국수 장사라도 할까’ 하고 내뱉은 말이 씨가 된 것 같아요. 20년 넘게 해온 광고 일 아니면 못살 줄 았았는데 막상 부딪히니 길은 있더라고요.”

식당을 연 그는 아내의 음식솜씨 덕분에 5년 만에 빚을 다 갚고 생활에 여유를 찾게 됐다. 나이 50줄에 접어든 어느날 “내 인생을 이렇게 끝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잘되던 식당도 넘기고 외국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불어닥친 IMF 한파에 벌어 놓은 돈을 다 날리고 빚만 지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지인의 소개로 아내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돈 벌러 떠나야 했다. 국내에 남은 그는 무얼 할까 고민한 끝에 할 줄 아는 것이 운전뿐이어서 2000년 3월부터 택시기사로 나서게 됐다.

3년간 일본에서 돈을 벌어와 빚을 청산한 아내 또한 처남이 운영하는 식당을 도와주고 있어 사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택시 수입이 갈수록 줄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김씨는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3월 창립된 희망제작소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등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신권지폐의 시각장애인용 점자가 구권보다 축소되고 구별이 어렵다는 점을 제기하는가 하면 소방, 경찰의 날처럼 환경미화원의 날을 만들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학창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한 그는 틈틈이 써온 글을 인터넷에 올려 네티즌의 호평을 받았다. 주위의 권유로 이 글들을 ‘파랑새’라는 에세이집으로 엮어 2000부를 내놓았는데 다 팔려 2쇄에 들어갔을 정도다. 책의 인세와 수익금 또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두 기부하고 있다.

김씨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하고 작은 나눔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답고 밝게 할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전성룡 기자 sych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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