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우린 널 사랑했지만,
사랑하는지조차 몰랐고, 여전히 잘 몰라. 사실 . . 우린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부제 : “죄송하지만, 숭례문 어르신께서 자.살. 하신 거 같습니다.”

의문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도 불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상식과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데 기대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이제 우린,
우리가 기대고 있는 상식의 근원이 어디서 왔는지 더 넓게,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늘 그렇듯이 언론은 실속 없이 시끄럽기만 합니다.

‘숭례문은 국보 1호의 지위를 유지한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댑니다.
국보 1호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질문
왜 이런 문제는 항상 ‘반.복.’ 되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에게 문화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문화 유산이 현재의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지금은 마치 빨리 복원 되기만 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원했다. 그래서 끝났다” 라고 완결되는 구조가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외의 문제들은 모두 폐기처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2008년 2월 28일 오후 2시-5시까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숭례문 화재 사건 긴급 토론회”가 있어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배움의 기회와 더불어 자료까지 내준 참여연대와 문화우리에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아래는 긴급 토론회의 일부분을 참석자가 정리한 부분이며, 전문은 파일로 첨부합니다**].
양윤식 님

“3년만에 200억원을 들여 복원하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불 탄 숭례문 주위에는 어느새 가림막이 둘러쳐졌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잔해를 파헤치고, 불탄 자재를 덤프 트럭에 실어 쓰레기 처리장에 버렸다.

과연 무엇이 불탔는지, 그리고 무엇을 되살릴 것인지, 짚어보자.

그 건축물이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 이유란 무엇인가.
예전과 똑같이 복원하지 않고 탄 흔적과 깨진 기와 조각까지도 보존함으로써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 역설적이지만 숭례문 만큼 문화재의 역할을 각인시킨 존재는 없다. 현재 복원 문제가 너무 급급하게 공사와 관리로 처리되고 있는 게 문제다.

복원이 ‘결과’로써 주어지면 안된다. 끊임없는 진지한 성찰로 ‘과정’으로써 주어져야 한다. 당국자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로 가서도 안된다. 이번에야 말로 민간 부문의 조언과 협력 구축이 필요할 때다. 온 국민의 마음이 쏠려 있는 이 때에, 이 공유된 영역을 실현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숭례문은 더 이상 상처만이 아닌, 더 건강한 좋은 계기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다각적인 소통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역사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송도영 님

우리가 숭례문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잃은 걸까?
아니다.
숭례문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잃었다.

우리의 세포에 문화재에 대한 불감증이 각인돼 있다.

우리는 문화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관심도 없다. 한국 사회의 가체 체계가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소홀해왔던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상처를 입었고, 부끄럽다고 했다. 자존심이 불타고, 역사가 불타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국가가 우리의 상식과 믿음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국가만의 책임일까.

우리에게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 문화재의 법적 지위, 예산 확산에 대한 요구가 필요했다. 법적으로도 여론적으로도 그러한 시민적 국가적 요구가 전혀 없었다.

숭례문 하나만을 놓고, ‘빨.리.’ 복구하는 것만 생각하는 기형적 구조로 가고 있다. 숭례문의 전소는 ‘2008년 한국 사회에서 문화재란 무엇인가’를 던진 것 아닐까? 문화재의 가치 그리고 관리 체제 전반에 대한 논의와 관리 시스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제2, 제3의 숭례문은 또 불타 오를 것이다.
조민재 님

숭례문은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분수령으로써의 기념물이다. 그리고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된지 3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수 많은 문화재들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가 지나가면 국보 1호, 2호가 일련 번호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에 서열을 규정짓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그 건물에 대한 예술적 가치가 인정돼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청계천 복원을 1년 만에 해치우는 상황, 그리고 복원을 1~2년만에 빨.리. 해치우면 박수쳐 주는 우리 사회가 문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숭례문 화재 사건은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고, 국민적 함의는 물론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금 지원은 더더군다나 되지 않고 있다.

복원, 50년 후면 안되겠니?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숭례문을 복원하여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론 확산, 국민적 합의 없이 복원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결과물은 또 얼마나 조잡할 것인가.
그리고 정해진 기간과 경비로 복원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왜 50년 후면 안되는가.
얼마나 빨리 ? 보다, 어떤 논의를 통해 복원할 것인가, 어떤 관리 시스템을 담보해낼 것인가 논의돼야 한다.

서울 성곽과 숭례문은 한 몸

숭례문과 서울 성곽은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숭례문 이야기를 하면서 이토록 서울 성곽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성곽을 복원해 나가는 과정에서 숭례문을 어떻게 함께 복원해나갈 것인가가 논의돼야 한다.

숭례문은 살아 움직여야 한다

문화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예술적 치유 공간이면서도 생활 공간이어야 한다. 과거의 문화재와 현재의 사람간의 유대감이 논의돼야 그 문화재는 비로소 진정성을 갖게 될 것이다.
홍성태 님

공간은 시간이 담기는 그릇이다

문화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의식하게 해줍니다.
문화재는 우리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으며, ‘지금은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는 어느 쪽으로’ 갈 것임을 말해줍니다.

서울은 2000년이라는 시간을 지닌 공간입니다.
하지만 서울은 흉측한 ‘루미나리에’와 전경으로 가득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공간적 환경과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문화재는 문화의
상품화로 인해 ‘원래 그대로’가 아닌 ‘볼거리’로 만들어진 이미지 상품으로 전락합니다.

그리하여,
죄송하지만,
숭례문 어르신께서 자.살. 하신 거 같습니다.

우리가 숭례문을 ‘볼거리’ 이상의 무엇으로 보고 있었습니까.
어르신께서 일개 볼거리가 되려고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스스로 가실 때가 됐다, 고 판단하여 자살하셨습니다.

숭례문을 통해 서울 시내의 공간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내에 어떤 시간이 담겨져 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제발, ‘빨리 해치워 버리자’는 포.크.레.인.적인 사고 방식은 그만 둡시다.

[숭례문 화재 사건 긴급 토론회] 숭례문, 한국 사회에 말을 걸다

주최 : 문화우리, 참여사회연구소
일시 : 2008년 2월 28일(목) 오후 2시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

사회
이병천(참여사회연구소 소장)

발표
“숭례문의 문화재적 가치와 문화재 복원의 방향”_양윤식(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
“숭례문 소실과 위험 사회 대한민국”_홍성태(상지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

토론
송도영(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민재(동아시아문화기획 대표)
홍기빈(참여사회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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