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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도심 주택가에 살았다. 우리 동네에는 부부가 운영하는 국수공장이 있었고, 아침이면 냄비를 들고 순두부와 두부를 사러갔던, 삼대(三代)가 운영하는 두부공장도 있었다. 이른 아침 골목 곳곳에서 집 앞을 청소하며, 밤새 안녕을 묻는 이웃 간의 친근한 인사와 등하굣길 골목에서 만나는 어른들께 공손히 인사하기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오전엔 아이들과 엄마들의 소통의 공간으로, 학교가 파할 무렵이면 또래 친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동네 골목길은 지금 생각하니, 훌륭한 소통공간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를 보면서 자꾸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풍경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면, 어김없이 공동주택활성화가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폐쇄성이 높은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이웃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정을 나누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고 수없이 말하여 왔다. 사실, 이제까지 아파트는 입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관리상 편리하며, 자산적 가치가 크다는 이유로 선호되어 왔다. 그러나 폐쇄적인 단지 환경과 개인생활 위주의 삶은 이웃 간에 단절을 가져왔고 공동체적 삶의 이점과 가치를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역기능적인 면도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또한 아파트 내부적 상황들은 우리 사회 갈등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이웃과 지역사회에 무관심하며 관리상의 갈등과 불신으로 입주민 간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각 단체 간 이해관계로 인한 고소, 고발 등은 사회갈등 비용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제 이웃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곳 아파트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 노력들은 여기저기서 꽃을 피워가고 있거나, 싹을 틔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웃과 함께 옥상텃밭을 가꾸고, 방치되어 있는 공간을 주민들이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실로 만들어 공동의 관심사를 듣고 배운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도서기증으로 공유서가를 만들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아파트 단지가 평생주민학교로, 작은 콘서트장으로, 때론 친환경 녹색장터로, 그리고 문화센터로서 다기능화되어 가고 있다. 이웃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고 어울림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에겐 이웃 어른들이 생겼고, 인사성이 밝아졌으며, 이웃 아이들을 알아봐주는 동네 어른들이 많아져 CCTV의 기능이 필요 없는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의 사례 전파와 공유를 통해 아파트 단지 내 이웃들의 교류는 인근 마을과의 교류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이웃 마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간디는 그의 저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미래 세계의 희망은 아무런 강제와 무력이 없고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으며, 공동체 개발운동은 반드시 인도의 조건과 전통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마을 만들기가 지향하고 있는 모든 가치가 이 말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도 하나의 마을이라고 볼 때, 아파트 단지의 주인인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 의지와 참여 속에 단지의 물리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개선하여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시민운동가나 전문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아파트 단지의 상황과 활성화사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주민들의 욕구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쉽지만 자칫 소홀할 수 있는 기본원칙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재능과 기술을 가진 입주민들이 그들의 재능을 공유하면서 한 울타리가 되어 줄 커뮤니티 공간을 모색하여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행복한 아파트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생활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체계화시키면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생적으로 맺어지는 경제적 활동, 일자리 창출로도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견고해진 공동체야말로 구성원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조금 더 아름답고 인간적인 곳으로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_ 이춘희 / 은평구청 커뮤니티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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