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조진원 서울메트로환경 대표의 휴대전화는 300여통의 문자로 불이 났다. 직원들에게 초콜릿을 돌린 직후였다. 대부분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못 받았는데…”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메트로의 자회사 서울메트로환경은 서울지하철의 청소 및 방역 업무를 맡고 있는 기업이다. 2013년부터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해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용역업체에 외주하청 방식으로 맡기던 일이다.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들은 ‘용역 아줌마’로 호명됐다. 그러다가 자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되면서 ‘직원’이 됐다. 교육훈련 기회도 새로 생겼다. 허드렛일이라고만 여겨지던 청소 업무가 고도의 기술로 격상됐다는 느낌을 줬다. 이러던 차에 급기야 회사 대표가 감사하다며 초콜릿을 돌리자 긍정적 반응이 폭발한 것이다.

조 대표가 이 이야기를 공개한 자리는 희망제작소가 연 ‘사다리포럼’이다. 이 포럼에서 희망제작소는 대부분 용역업체에 맡겨진 채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대학 청소노동자 문제를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었다. 노동전문가와 복지전문가와 경제전문가가 한자리에 앉았다. 고용주인 대학들을 초청했고, 노동조합과 대화했고, 청소회사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회적 경제 전문가를 만났다.

대학 청소노동자 문제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면서도 해결 실마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화를 시작했다가도 대학 당국, 학생, 노동조합 등 각 주체들이 서로 파렴치함을 손가락질하며 끝나는 일이 반복된다.

초콜릿 이야기는 문제의 숨겨진 핵심을 드러낸다.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쌓은 신뢰가 너무 부족했다. 신뢰가 없으니 대화와 타협은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을 더 굳게 만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경희대학교 당국자가 포럼에 참석했다. 희망제작소는 경희대에 청소노동자를 고용하는 소셜벤처 설립을 제안했다. 대학 당국자는 이 제안에 대한 의견을 토론하기 위해 다양한 노동조합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이견과 걱정거리도 논의에 올랐지만, 누구도 거칠게 자기 의견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며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노동조합 대표자의 이야기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이분과는 대화를 여러 차례 했는데, 우리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분이시라 신뢰가 갑니다.” 옆자리의 대학 당국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거시적 수준의 사회적 대화 시도는 자주 실패한다. 최근 노사정위원회 뒤 벌어지는 갈등 상황은 상징적이다. 노사 간에도 민관 간에도 여야 간에도 신뢰 수준은 바닥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거시적 대화만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방에서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이 대화로 조정되지 않아 극단으로 치닫고 소송 건수만 는다. 민사소송 건수는 계속 늘어서 일본의 갑절이나 된다고 한다.

한집안, 한 직장, 한동네 안에서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전국적 차원의 소통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난센스다.

어떻게 소통을 회복할까? 포럼에서는 존중과 신뢰에 더해 또 하나의 이유가 더 거론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모범적 모델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인정하는 유연성이다.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포럼에 참석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했다. 공감했다. 어쩌면 우리는 민간 영역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법과 정치에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희대의 소셜벤처 실험이 성공적이면 좋겠다. 청소노동자 고용에 더해 지역과 공간의 혁신도 함께 추진한다니 더욱 그렇다. 민간 영역에서 당사자들끼리 소통하면서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다.

[ 한겨레 / 2015.10.06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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