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지금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서울 성동구 금호동과 행당동 일대 산동네에는 오래된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대학생이던 나와 내 동료들은 그 동네 구석의 작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다. 때로는 같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이모, 삼촌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 일대를 재개발해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쫓겨날 처지가 된 세입자 엄마아빠들은 반대했지만 철거용역업체가 들이닥쳤고 재개발은 진행됐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로 시작되는 노래 ‘땅’을 불렀다.

그 성동구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는 얼마 전부터 청년 혁신가들과 소셜벤처가 모여들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년 만에 50%나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서울의 센트럴파크라는 서울숲도 옆이고 교통도 좋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다 보면 임대료까지 치솟아 원래 여기서 활동하던 청년들은 쫓겨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원래 지역의 가치를 일군 이들이 그 가치 덕에 높아진 지대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게 되는 일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는 함께 일군 지역의 가치를 토지 소유자에게만 몰아주기 때문에 중요한 사회문제다. 서울의 홍대 앞에서도 북촌에서도 이태원 경리단길에서도 원래 지역을 일군 청년과 문화예술가들은 쫓겨나고 말았다.

성동구청은 성수동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 지역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임차인과 임대인이 함께 지역 입주 업종 등을 정할 수 있게 하는 조례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주목할 만한 정책실험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는 토지 소유 동기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보유세를 강화하거나 지대수입에 대한 조세를 강화하는 것도 그 방법이다.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이미 내놓았던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를 내고 땀을 흘린 이들보다 땅을 가진 이들에게 더 큰 보상을 하는 경제에는 성장도 혁신도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이야기다. 물론 이는 근본적 대책이고, 오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좀 더 가까운 정책은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이를 공동체 문제 해결을 위해 잘 활용하는 것이다.

서울 대방동의 ‘동작주말농장’을 보자. 지역 어린이집의 체험활동 무대로, 지역주민들의 공동체활동 장소로, 어린이 생태공원으로 십분 활용된다. 텃밭 한켠에는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의 청년 혁신가들의 활동 공간도 자리잡았다. 회색 아파트로 가득 찬 동네에 푸른 자연과 청년이 흘러들어와 숨통을 틔운 것이다. 서울 은평구의 옛 질병관리본부 자리에는 대형 상업시설 대신 혁신가들의 활동 공간인 서울혁신파크가 문을 열었다. 온갖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와 혁신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둘 다 서울시가 보유한 땅이다. 공유지로부터 혁신이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땅을 더 이상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공공이 보유하고 있는 땅도 팔려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 본사 부지는 지난해 현대자동차에 팔렸다. 바로 옆의 서울의료원 부지도 서울시의회 의결로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혁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흔한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런 곳을 공유지로 남겨 두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면 어땠을까.

‘땅’의 마지막 구절이 입에 맴돈다. “소중하고 귀중한/ 우리 땅은 어디에….”

[ 한겨레 / 2015.7.14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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