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정치와 경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는 일하는 사람들의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진다. 현재 생산가능인구 5명 가량이 노인 1명을 부양 중인데, 2050년이 되면 1.4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할 전망이다.

피라미드형이던 인구 그래프는 점차 원통형으로 바뀌더니 이제 역삼각형으로 변해 간다. 2060년에는 가장 인구가 많은 연령이 80세이고 그 다음이 65세라는 암울한 통계청 인구 추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경제만큼이나 큰 영향을 받는 영역이 정치다. 이미 고령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가 강화되고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는 일은 처음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고령자 정치가 시작되는 시점인 듯하다.

걱정스러운 점은 제론토크라시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론토크라시란 고령자 지배체제, 또는 고령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지배체제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제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재 러시아연방의 전신인 과거 소련에서 브레즈네프 집권 후반기부터 고르바초프 집권 이전까지 시기를 제론토크라시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소련의 국가최고위원회는 70세 이상의 원로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결국 소련은 시대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또 이탈리아를 제론토크라시 체제로 묘사하는 이도 있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은 올해 1월 90세로 퇴임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2011년 사임 당시 75세였다. 세계 3대 노인국 가운데 하나이고, 은행과 대학 등 주요 직무의 평균연령이 60대에 이른다. 결국 이탈리아는 유럽 최대 경제 대국 중 하나에서 재정 위기국으로 전락했다.

세계에서 제론토크라시가 가장 심한 나라가 일본이다. 중앙 정치는 물론이고, 지역사회도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역공동체는 지역 고령자 유지들과 집권 자민당 사이의 끈끈한 연합으로 운영된다. 결국 일본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잃어버린 20년을 거쳐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놓았다. 이제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위험한 국가주의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 됐다.

한국사회에도 제론토크라시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국무회의는 50대도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로 바뀌고 있고, 정당들은 노인층에 구애하는 정책을 궁리하느라 바쁘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데 정치적 힘도 줄어만 가는 청년층에게는 한숨만 쌓여간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공적연금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무원연금은 2016년부터 새로 공무원이 되는 이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깎이지만, 현재 재직중인 50대 이상에게는 거의 손해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국민연금은 미래 세대의 부담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현재 50대 이상이 퇴직 후 받게 되는 연금소득을 지키는 방향으로 여야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제론토크라시는 고령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치가 아니다. 긍정적 의미에서의 ‘어르신 정치’(senior politics)와 구분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경우 노인빈곤 문제는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오히려 소수 기득권을 가진 고령자들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며 격차를 더 키우는 체제다. 미국의 미국은퇴자협회(AARP) 등은 긍정적 의미에서 노인 전체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막강한 은퇴자 그룹의 표심을 움직이며 주요 대권후보들이 은퇴자협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하지만, 결코 은퇴자들 스스로가 권력을 향해 달려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은퇴자들을 대변할 젊은 정치인들을 계속 키워내려 한다.

제론토크라시는 나이 문제만은 아니다. 일종이 ‘막차 문 닫기’ 문제다. 이미 버스에 올라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새로 버스에 올라탈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서 있게 하거나, 또는 아예 버스 문을 닫고 못 타게 만드는 문제다.

최근 한 지인이 털어놓은 경험담이다. 그는 50대에 대학교수로 어렵게 임용됐다. 그런데 그가 임용되는 시기, 학교 재정이 어려워졌다. 그러자 학교 쪽은 그와 그 이후 임용되는 교수들의 보수를 3분의 1 가량 삭감했다. 기존 재직중이던 교수들의 보수는 손을 대지 않았다.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득권만 넘실댔을 뿐이다.

제론토크라시가 ‘막차 문 닫기’ 정치로 기능하는 사회는 야만적이다. 테이블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의 권익을 아예 무시하고 만다. 여기에는 공동체정신도 공정한 경쟁도 없다. 기득권의 담합구조가 있을 뿐이다.

한국의 제론토크라시가 그 지경으로 달려가지 않도록 막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세대 거버넌스를 도입하면 된다. 공직에, 당직에, 공천에 20-30대를 대거 등장시켜라. 눈 딱 감고 국회의원 공천이나 장관 자리 중 20%를 20-30대에게 주는 일을 왜 못하나.

최근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 40대다. 그의 라이벌이던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반드도 40대였다. 스코틀랜드 내셔널 파티도 40대가 대표였고, 대학생 의원도 나왔다.

그런데 현재 영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6.6%다. 한국의 13.1%보다도 높은 고령사회다.

버락 오바마도 존 에프 케네디도 40대에 미국 정치의 정점을 보여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도 20-30대에 혜성같이 등장해 40대에 한국 정치의 절반을 주름잡았다.

미래를 믿고, 바꾸면 바뀐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 뉴스토마토 / 2015.6.1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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