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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3>

갤러리로 탈바꿈한 마산 부림시장

인터넷 쇼핑몰 구축, 현대화 재건축, 상 품 권 발행, 배달서비스 도입, 경영컨설팅, 마케팅 투어 등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온갖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전국의 재래시장 상 인들은 연합조직을 구성해 생존권투쟁에 나서는가 하면 정부, 지자체, 중소기업청이나 상공회의소 등의 기관들이 재래시장 살리 기 에 나섰다. 그러나 재래시장의 부활은 아직 요원하다.

이런 전국의 수백 재래시장과 같이 경남 마 산의 부림시장도 침체의 늪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왔지만 최근 화려한 날개짓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세우고 있 다. 부림시장 바꾸기는 ‘마산 행복시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단체인 ‘프로젝트 쏠’ 5명과 경남 대 미술교육과 학생들로 구성된 거리예술제팀 ‘스트리트 파인 아트’ 등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새 바람이 불고 있는 부림시장의 작은 식당에서 소수의 힘으로 시 장을 탈바꿈시킨 ‘프로젝트 쏠’의 유칭환 대표와 천성진 작가, 강민제 작가를 만났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은 식당 곳곳에 서 보이는 그림들이 더욱 맛과 멋을 더한다. 아직 이른 매화가 연둣빛 바탕에 붉은 향을 더하는 이 작은 식당도 프로젝트 쏠의 솜 씨다.

부림시장을 예술공간으로 탄생시킨 유창환 프로젝트 쏠 책임자가 기억하는 부림시장은 ” 두 덕두덕 얹어주는 횟집이 즐비했고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갤러리 6개가 버젓이 지역의 미술공간을 일구고 있던 곳”이었다 .

그런 부림시장은 바다 매립이 진행되면서 바닷가와 멀어지자 횟집이 먼저 쇠퇴했고, 이어 다 른 상권의 등장으로 연쇄적으로 시장 전체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유창환 대표는 가장 번화했던 곳, 지역의 미술이 싹을 틔웠던 이곳 에서 지역의 실험적 미술과 재래시장의 부활이라는 두 가지 꿈을 이루고 싶었다. 유 대표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우 리들이지만 이 행복시장 프로젝트에서는 기금에 연연하지 않았고 현대미술의 작품성보다는 재래시장 상인과 일반인들 그리고 작 가 의 미술에 의한 소통을 이루기 위해 재래시장 현장에서 함께 생각하고 서로 협력해 실생활 속 미술의 다양성을 강조했다”고 설 명 한다.
”?”각박한 마음에 뿌려진 희망의 씨앗, 절반의 성공

프로젝트 쏠이 무슨 거창한 성공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루고 싶은 꿈은 통계 수 치 속에 가려진 성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열악한 지역의 실정, 멀어 보이는 희망 속에서 시도 자체가 하나의 목표였다. ‘우리 도 할 수 있다’, ‘아직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

“시장은 하나만으로 이뤄지지 않잖아요. 주차공간에서부터 볼거리, 먹을거리, 서비스, 모든 것 들이 총체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니까. 우리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니까 볼거리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

작은 볼거리 하나로 재래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작지만 원대한 그 꿈은 프로젝트에 참 여하는 사람들 35명이 각자 7만 원씩 부담한 예산으로 시작됐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억대의 돈들이 재래시 장 에 들어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 재래시장은 아직도 목마르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에서 희망을 만들던 그들은 또 다른 희망을 보 았다.

“예산이 없어서 자발적으로 돈을 모았으니 작업하는 한 달 동안 밥 먹을 돈이 모자랄 정 도 였어요. 그런데 시장에서 부대끼며 하루하루 지내면서 시장사람들이 나서서 밥을 사주는 거예요. 작은 일이지만 큰 놀라움이었 어 요. 서로 화합하고 웃고 같이 만들어나가면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 쏠의 천 성 진 작가의 말이다.

한 달간 소수가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작한 ‘마산 행복시장 프로젝트’, 일 의 성과는 그들의 생각보다 놀라웠다. 부림시장에 그려진 그림들이 음악공연, 퍼포먼스 공연으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카메라 셔 터 와 인터뷰를 불러왔다.

그렇다고 해서 부림시장에 참여한 거리의 예술가들과 프로젝트 쏠 작가 들 의 주머니가 두둑해졌거나 갑자기 부림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배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사람들 과 프로젝트 쏠 작가 들 은 할 수 있다는 희망, 우리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씩 가슴 속에 채울 수 있었다. 시장의 변화는 이용자가 아닌 그 속 에 서 삶을 영위하는 상인들에게서 일어났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 힘든 상인들이 우리의 모습을 좋 게 봤을 리 만무하잖아요.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요. 그만큼 그들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그 들 이 먼저 나서서 청소를 해주고 간식과 식사를 서로 돌아가며 제공해주는 모습, 이것만으로 하나의 성공이지요 .”

각박한 땅에 꽃 하나 피웠다면 그게 숲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성공이고, 그 자체만으로 아 름다운 일임은 틀림없다.

부림시장을 통해 본 ‘지역에서 미술을 한다는 것’

관심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던 부림시장에 방송국 카메라를 불러오고 사람들의 관심을 유 발 하고, 그 이름이 타 지역에도 알려지게끔 한 공공미술단체인 프로젝트 쏠도 부림시장의 프로젝트를 통해 주머니가 아닌 마음이 풍 성해졌다. 지역에서 미술을 하면서 가끔은 맛보는 한여름 소나기 같은 마음 시원한 그리고 짜릿한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
”?”먹고 살기 힘든 지역에서 예술은 배부른 소리가 되기 십상이고 그런 환 경 속에서 미술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프로젝트 쏠은 어려운 여건과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작업을 공공미술작업과 함께 펼 쳐오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새로운 미술을 지향했지만 실험적 미술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지 역에 서 는 그것들이 실험미술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지역이 낙후되어 있었죠. 한때는 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해보고 싶었어요. 여기 와는 상 황이 완전히 다르니까. 하지만 너무 안타까워서 지역을 떠날 수가 없더라고요. 지역에 남아있는 젊은 작가들과 계속 작업 을 하 고 싶었고 여기까지 왔네요.”

그들이 배불러서 붓을 잡았던 것은 아니다. 쏠의 대표 유창환 작가는 어려운 집안경제를 뒤로 한 채 “굶어죽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냥 그림이 좋았다. 강민제 작가는 “생활은 항상 굶으며 살 아 왔 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아요. 노숙자처럼 학교 현관에서 잠잔 날도 많아요”라고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한다 .

하지만 정호 작가는 굶기 위해 잡은 붓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

“굶어 죽을 각오는 안 했어요. 먹고 살 생각을 해야지요. 굶고도 할 수 있다는 것과 굶어죽을 각오와는 다른 것 같아요. 그림 그려서 먹고 살 생각을 해야 하고 그게 ‘쏠’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죠. 젊은 작가들을 포용하면 서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제도나 기회가 없거든요. 먹고 살 생각을 하며 미술을 해야, 살아가는 미술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부 림시장이 다시 부활하길 바라며 참여한 것 처럼요.”

그림을 통해 그들의 생계가 해결되는 것은 아 니다. 유창환 대표는 가족의 배려와 희생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천시진 작가는 미술과는 별도의 생업을 해결할 창구를 열어 두 고 있다. 이건 다른 지역 예술가들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는 유일하게 독일 카셀의 도쿠멘타에 초청을 받았던 유 대표나 천 작가, 정 작가 등이 어려움을 각오하고 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 는 것은 그냥 그림이 좋고, 지역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희망해서다. 부림시장이 그들의 그림 하나로 새 바람이 불었듯 지역미술 계 도 새롭게 달라지길 희망한다면 너무 먼 나라 얘기가 될까.

숫자로 보는 세상의 편리함에 너무 익 숙 해져버린 우리, 부림시장의 이용객이 몇 명이 늘어나고 지역미술계의 규모가 어떻게 커지고 그러한 것들을 성공으로 이름 짓 는 데 는 너그럽다. 그러나 부림시장 상인들의 작은 변화, 그들의 가슴 속에 핀 꽃 한 송이, 지역에서 공공미술을 하는 작가들의 마음 속 에서 더 환하게 피어오른 열정에는 너무 각박한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부 림시 장 의 몸부림에 환호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여기 매화꽃이 반기는 부림시장의 작은 식당에도.

면담일시 – 2006년 10월 14일 오전 11시
면담장소 – 마산시 부 림 시장 지하 식당

1% 미술법(미술장 식 품제도)을 바꾸자
-공공미술재단을 만들어 전체 환경에 맞는 공공미술을 만들자

미술장식품제도라는 것이 있다. 대형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비의 1%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 다 . 그 예산규모로 한해에 1000억, 경남지역에서만 50억 된다. 그것도 일부 예술가가 독점한다.

그 나마도 브로커들이 생겨난다. 브로커들이 일을 따와 작가에게 맡기고 브로커들이 중간 이익을 챙긴다. 큰 일을 작가들이 하더라 도 실제 이익을 그만큼 못 가지는 것이다.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도 일을 하는 사람은 교수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손을 대려고 빼 빠 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줄을 서는 것이다.

이런 돈 가운데 일부를 공공미술로 전환할 수 있 다 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 돈이 모여 진정성있게 사용되면 너무 좋을 것이다. 미술 하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다. 다만 최소한의 생 계도 안 되니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리 없다. 몇사람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 그나마 남아서 한다. 지역에서라도 제도 적 으로 바꾸어볼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데도 미협 등 관련 이해 단 체들의 찬반논란으로 아직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공미술재단을 만들어 개별 건축주들이 부담하는 그 돈을 이 재단에 넣 어 한 건물의 부속품으로 만들지 않고 그 건축물과 주변 환경에 맞는 조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창동 전 장관 때 공공미술에 관 한 위원회를 만들어 개선안을 만들었던 것 중의 하나이다. 미술품은행제도처럼 좀 더 다양하게 모집해서 한다면 큰 개선이 될 듯하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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