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매년 태풍 및 장마로 인해 재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재난 피해지역에 대한 복구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복구 지연’ ‘부실 공사’ 등으로 인한 2·3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재)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소장 이재은)와 공동으로 재난피해 현장을 조사해 분석한 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해구조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 모델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 사방댐 공사 후 산사태를 대비해 심어놓았다는 묘목
ⓒ 정민규

가관이었다. 지난 주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와 함께 찾아간 강원도 평창군의 한 사방댐. 당초 계획에는 없었지만 우리 일행이 식사를 했던 식당 주인이 보여줄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이었다.

‘사방댐’은 폭우로 불어난 계곡이나 토사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계곡에 설치하는 소규모의 댐을 말한다. 이 때문에 사방댐은 당연히 토사가 흘러내려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방댐 진입로 경사면에는 풀 한 포기도 심어져 있지 않았다. 큰 비가 올 경우 토사가 사방댐 하류로 쓸려내려 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나마 자구책이라고 마련해 놓은 것이 공사가 끝나고 심은 것으로 보이는 50㎝ 가량의 묘목이었다.

이 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강원도산림개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공사 중 훼손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씨를 뿌려놓았다”고 말했다. ‘혹시 작은 나뭇가지들을 말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1년 정도 지나면 묘목이 성장해 나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 흙더미가 집을 덮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사방댐 아래에 사는 할아버지는 또 다시 1년간 빨리 나무가 자라기를 빌어야할 판이다.

수해 터지니 대박 터진다? 페이퍼 회사 ‘우후죽순’

수해 복구에 관련된 비리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초 강원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해복구용 토사채취 현장에 대한 수사를 벌여 비리 혐의자 23명을 적발했다. 전라북도에서도 최근 수해복구 공사 비리와 관련되어 공무원과 건설업자, 산림조합 관계자 등이 줄줄이 엮여 수사를 받았다. 전주지검의 한 간부도 김제시 수해복구공사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돼 대검 차원의 감찰 여부를 검토 중이다.

건설업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수해 직후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못 받아내는 공무원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한 개 업체에만 몰아주면 의혹도 생기고, 여러 업체에 나눠줘야 뒷말도 없고 나중에 지방선거 때도 인심을 잃지 않을 거 아니냐”고 귀띔했다.

실제로 기자가 살펴본 충청도의 한 마을은 무려 25개 업체가 들어와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경남에서는 일개 면이 25개 지구로 나뉘어 수해복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이재은 소장은 “이러한 분할 발주는 시공 후 문제점이 생길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집중호우와 태풍 ‘에위니아’로 2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조 600억원의 재산 피해도 뒤따랐다. 그런데 재해로 이재민과 재산피해만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이재민 발생하듯 늘어난 것이 바로 건설업체다.

수해 피해를 입은 작년 7월 한달 동안 강원도에 신규 등록된 건설업체는 자그마치 500개. 이들 중 상당수가 명의만을 이전한 이른 바 ‘페이퍼 컴퍼니’였다. 그러나 지난해 500개가 넘던 업체 중 현재까지 남은 업체는 불과 180여개.

따뜻한 볕을 찾아 옮겨다니는 철새 마냥 이들 페이퍼 컴퍼니는 공사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린다. 사후 관리나 A/S가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복귀 뒤에는 나 몰라라 ‘먹튀’ 건설사들

▲ 수해 복구 현장에 멈춰서있는 포크레인
ⓒ 정민규

이전부터 터를 잡고 있던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이 ‘철새’들이 여간 탐탁치 않다. 강원도의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이러한 회사들은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보니 부도가 난다거나 하자보수가 힘들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내구성과 친환경성이 뛰어난 새로운 공법으로 특허까지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입찰 단가에서 다른 업체에 밀려 시공을 할 수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페이퍼 컴퍼니로 인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행정자치부가 칼을 빼들고 나섰다. 지난 25일 행자부는 업체들이 주소를 옮긴 상태에서 3개월이 지나야 수주가 가능하도록 예규를 개선해 발표했다. 이 밖에도 지역 제한 입찰을 바꿔 전국 입찰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부실 공사를 예방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건설업체와 수해복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오고 있는 김해연 경남도의원은 “계약의 투명성이 확보되었다고 건설업계가 정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김 의원은 “지역 연고가 없는 기업 입장에서는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결국은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재하도급을 양성화시켜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설계사무소가 영세한 데다 수해 직후에 일이 몰리다보니 수준있는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대충 설계되어 공사가 진행되기 일쑤”라고 밝혔다.

또 “수해복구의 경우 응급 복구가 많은 탓에 제대로 된 감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방파제와 같은 수중공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날림 공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의원은 “재해를 발생시킨 원인 제공업체는 정도에 따라 행정조치하고 입찰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용역과 시공업체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관행으로 불법하도급과 부실공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설계용역과 감리가 잘못되었다면 용역업체를, 시공이 잘못되었으면 시공사를 행정조치하고 각종 입찰에 자격 제한을 두는 등의 불이익을 과감히 추진해야 될 것”이라며 강력한 제재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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