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초점의 세 번째 주제는 다문화인권교육입니다. 이주민 140만 시대. 전국민의 약 3%에 달하지만 소수자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 다문화인권교육의 현주소과 미래를 인권교육을 직접 진행하고 있는 현장의 소리를 통해 알아봅니다. 다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하는지, 생생한 교육 사례를 통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평생학습 초점] 다름을 이해하다 (1) 우리는 왜 다문화인권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나
– 풍경 하나
어느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오늘은 두 시간 동안 다문화인권수업을 할 거예요. ‘다문화’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선생님, 우리 반에 다문화 있어요.”
“맞아요. 쟤, 다문화예요.”
“저기 있어요, 저기요.”
한순간 아이들이 일제히 손가락질하며 한 아이를 가리키고, 그 아이는 갑자기 쏟아진 친구들의 관심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금세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표정이 된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다문화’로 불리는 아이의 엄마는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었다.
– 풍경 둘
“우리 사무실은 도당동에 있어. 한 번 놀러와.”
“거기 위험하지 않아요?”
“왜?”
“엄마가 외국인들 많은 동네라고,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외국인이 많으면 위험해?”
“거기 공장 많잖아요. 공장 다니는 외국인들, 다 막 불법이고, 납치도 하고 그런다고……”
“얼굴 시커먼 사람들 보면 무서워요.”
– 풍경 셋
? 한국인이 외국인 차별하면 차별금지법에 걸려서 처벌받고 외국인이 한국인 차별하면?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자국민과 외국인 차별은 당연한 것인데 이놈의 나라는 다문화에 미쳐서 되려 자국민 역차별하는 몰상식이 판을 친다.
? 우리가 이렇게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은 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가안보를 위해서 이다. 다문화정책 철폐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철폐하라.
? 이놈의 나라는 거꾸로 된 게 너무 많다 . 그놈의 인권이니 인도주의니 세계평화니.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나도 고임금 아니냐? 도대체 뭘 바라냐… 진짜 테러 안 당하는 걸 다행히 생각해라. 내가 너무 솔직했냐? 솔직히 너네 동네주변에 집단 외노자주거단지 들어선다고하면, 이렇게 텍스트로 도덕군자 노릇할 수 있을까?
? 세금 축내는 거 맞잖아. 역차별도 많고. 파렴치 매매혼업자들과 위장결혼으로 입국하여 돈벌이하려는 중국, 동남아 신분세탁 술집 여자들에 의한 국제결혼 피해가 너무 심각합니다. 국제결혼 5년 내 이혼률 85.4%, 3개월 내 가출 60% 이상, 3%도 안 되는 다문화가정이 우리나라 전체 이혼의 12.6%차지, 이혼 8쌍 중 한건. 매매혼업자들이 속이고 감추는 국제결혼 충격실태. 다음블로그 “국제결혼을 꿈꾸는가? 현실은 이렇다” 나라 망치는 저질, 저급 다문화 반대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다룬 신문기사에 달린 댓글들 중 일부 )
이주민 140만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앞의 두 이야기는 교육 현장에서 만난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이고, 세 번째는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온라인에서의 반응들이다. 특별히 이주민, 혹은 외국인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다수 ‘보통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어서 더 위태롭고 씁쓸하다.
우리 아시아인권문화연대가 다문화인권교육을 옹골지게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바로 이런 우리 사회의 위태로운 풍경들 때문이다. 처음에 우리 단체는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한 이주노동자들을 지원, 상담하는 일을 했었다. 고향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와서 밤낮 없이 일해도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폭행과 욕설에 시달리고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때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를 찾아와 하소연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함께 회사에 찾아가 밀린 월급을 받아내고, 때로는 소리 높여 싸우면서 이 끝도 없는 질곡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이주노동자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여러 아시아 나라들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이주한 결혼이주여성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이들 역시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심각하게는 남편의 폭력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여성들부터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차별 때문에 고통받는 여성들까지 이주자가 뿌리내리고 살아가기엔 우리 사회의 토양은 너무나 척박하다.
어디 그뿐인가? 이주민의 자녀들,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 역시 부모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피부색이 조금 달라서, 한국어 발음이 달라서, 아니면 정말 다른 아이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단지 부모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다문화’로 지칭되며 타자화되는 아이들이 마음을 다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주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존재 방식이 다양해질수록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우리 사회는 좌충우돌, 모두가 허둥대고 있었다. 각개격파식의 문제 해결이 아닌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이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이주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낯선 문화와도 즐겁게 소통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우리들 마음속의 차별과 편견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이것이 우리가 다문화인권교육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다.
‘문화’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
“다문화교육은 알겠는데 다문화인권교육은 뭐예요?” 우리가 흔히 받는 질문이다. 사실 다문화교육이나 다문화인권교육의 개념이 명확히 규정된 바는 없다. 일반적으로 다문화교육은 인종, 민족, 사회적 지위, 성별, 종교, 이념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집단의 문화를 동등한 가치로 인식하며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지식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최근 ‘다문화’라는 단어가 이주민과 그 가족을 지칭하는 의미로 고유명사화되면서 여러 가지 혼란을 초래한다. 다양한 문화적 현상 중 인종과 민족에 따른 문화만을 다문화라고 지칭하는 꼴이 되었다. 다문화 가정, 다문화 가족, 다문화 합창단, 다문화 청소년, 다문화 어린이 등등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문화교육도 제한적인 사고틀 안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또는 한국 문화이해 교육(이를테면 한국요리강습, 전통문화 체험 등)을 일컫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유치원 어린이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 체험에 중심을 둔 다문화교육이 진행되기도 한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를 비롯한 몇몇 이주민 지원 단체들이 다문화인권교육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이와 같은 다문화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파키스탄에서 온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알리는 무슬림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13년 동안 줄곧 한국에서 살았고, 물론 한국말도 남들처럼 잘한다. 한국 음식도 잘 먹을 뿐 아니라… 아니, 그냥 한국 사람이다. 다만 아빠를 닮아서 피부가 좀 까무잡잡하고, 아빠가 무슬림이어서 알리도 어릴 때부터 이슬람의 교리를 배워 자연스레 무슬림이 되었다. 그래서 알리는 돼지고기도 먹지 않고, 라마단에는 학교에서도 급식을 먹지 않는다.
친구들은 알리를 ‘다문화’라고 부른다. 급식에 맛있는 돼지불고기나 햄이 나와도 알리가 먹지 않으니 이상한 녀석이라고 놀린다. 알리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 선생님도 자꾸 아이들 앞에서 ‘다문화는 방과 후에 따로 모이라’고 하신다. 알리는 정말 학교에 가기 싫다.
이 짧은 알리의 사연 속에는 우리가 다문화인권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여러 가지 주제가 들어 있다. 이주민, 다문화, 파키스탄의 문화, 이슬람교, 무슬림의 생활 등등. 그런데 알리의 친구들은 알리의 외모, 종교, 가정환경 같은 것을 이유로 놀려대고 알리는 그런 학교가 싫다. 친구들이 놀리는 이유 중 어떤 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다. 만약 친구들이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게 된다면 알리의 식습관을 흔쾌히 받아들여 돼지불고기 대신 다른 반찬을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게 될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물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으로나마 파키스탄의 아름다운 쉬쉬마할(거울궁전)을 보고 전통의상도 입어보고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저 우리보다 못 살고 가난한 나라로만 알고 있었던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좀 더 가깝고 살갑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리에 대한 친구들의 생각이 바뀌진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나에게 낯설고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피부가 좀 검으면 어때, 나에겐 정말 맛있는 햄이 다른 친구에겐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구나, 사실 알리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조금씩 모두 다르잖아.’ 이런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권교육이다.
[##_Gallery|1144716358.jpg||1323645923.jpg||1287523742.jpg||1232711800.jpg||width=400_##] ▲다문화인권교육 모습 (제공:아시아인권문화연대)
우리가 생각하는 다문화인권교육은 다양한 이주민들의 문화를 즐겁게 이해하고 체험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교육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유치원 어린이부터 초?중?고 학생, 대학생, 성인,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교육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소수자인 이주민보다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선주민들의 마음속 차별과 편견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것은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문화인권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_ 최종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지역활동팀장, 다문화인권교육 강사)
* [평생학습 초점] 다름을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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