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시니어의 사회공헌 아이디어를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직접 실행해보는 축제의 장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이 지난 9월 28일 결선대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시니어와 청년이 10주간의 실행기간 동안 나눈 고민과 즐거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 시니어의 속사정

준비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원래 영화 관련 일을 하셨나요? 작품은 어떻게 구하시려고요? 장소는요? 돈이 많으신가 봐요?”
“…”?

마흔네 살, 아직 어린 두 아이의 아빠, 영화와 아무 관련 없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직장인. 2013년 9월 공감영화제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제 프로필입니다. 이런 사람이 2013년 9월 작은 영화제를 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극장에 가면 대형 기획사가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고 자신들의 자본으로 제작하여 자신들의 극장 유통망에서 상영하는 그런 작품 즉 영화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객 수 100만을 돌파했다는 한국영화가의 소식도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해주지 않는 극장가 소식은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마침 희망제작소에서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사회공헌을 해보겠다는 용감한 아이디어를 제출했습니다. 상영작 선정기준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함께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공감영화제’의 제 마음 속? 다른 이름은 ‘내 맘대로 영화제’였죠.

그런데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내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20대 청년 동료들이 생겼거든요. 저도 경험이 없고 이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라서 주변의 전문가들로부터 재능기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청년 동료들이 소외받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인 영화제 준비에 들어가자 더 많은 배려를 받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제 의견에 많이 동의해주면서도 알아서 일을 찾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20대 청년들, 함께 일할 맛이 나더군요! ^^

나흘간의 영화제가 끝나고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의 본선 대회도 모두 끝난 뒤 저와 제 청년 동료들은 이야기했습니다. “우린 상을 세 개나 받았네. 장려상과 인기상을 받았고, 무엇보다 본선에 진출해서 영화제 실행기금을 받아서 공감영화제를 해냈잖아. 이게 가장 큰 상이지. 우리 팀의 목표는 수상이 아니라 공감영화제를 진행하는 거였으니까”


우리 팀은 10주 동안의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했고, 저는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웠습니다.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청년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글_ 윤용찬 (시니어드림페스티벌 참가자)

▲ 주니어의 속사정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시니어 용찬 삼촌(시니어 윤용찬 선생님은 우리 사이의 나이라는 벽을 허물고자 삼촌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셨다.)과 청년DOER 종범 오빠와 나는 어색한 첫 만남을 가졌다.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이라는 공모전에서의 첫 만남이었다.

공모전이라 경쟁 아닌 경쟁을 하게 되었지만 상금보다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다행히도 크고 편안한 목소리로 ‘공감영화제’에 대해 설명하던 용찬 삼촌에게서 어떤 청년보다도 더 밝은 열정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웨이스트 랜드라는 영화를 본 이후로 영화에 대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절박함이 더 커졌다고 하셨다. ‘우리 사고 한 번 쳐보자!’라고 말하던 용찬 삼촌을 보며 나도 슬쩍 가슴이 설렘을 느끼며 한편으론 당당하게 사고 한 번 쳐보자며 씨공감팀의 첫 만남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영화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수록 조금 더 실감이 났다. 과연 공감영화제를 잘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 스케줄부터 장소, 홍보,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준비 등등 ‘어떻게 이 거대한 사고를 칠 생각을 했던 걸까?’ 생각하니 순간순간 용찬 삼촌이 놀라워 보였다. 영화제 준비에 박차를 가할수록 용찬 삼촌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서 나는 지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영화제 일에 뛰어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공감영화제는 분명 씨공감 팀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구룡마을에서 뵈었던 루시아 수녀님이 건넨 ‘정말로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면, 꼭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실로 몸소 체험한 경험이었다. 영화제 홍보, 팜플렛 제작 등 좌충우돌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애정으로 공감영화제는 열릴 수 있었고, 공감영화제 안에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사람과 영화가 감동하는 현장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공감영화제 준비를 시작하는 첫 만남부터 우리의 영화도 시작된 것이다. 시니어 윤용찬 삼촌과 청년Doer 종범이 오빠, 그리고 나까지. 공감영화제를 준비하던 씨공감 팀의 짧은 다큐멘터리가 2013년 여름 한복판에 시작하여 가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한 여름 밤의 씨공감 팀의 다큐멘터리는 끝났지만 시니어와 청년Doer, 그리고 영화제를 함께했던 그 누구든 저마다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를 정신없이 찍어 내려가는 요즘 드문드문 공감영화제를 준비하던 때를 떠올린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고, 또 사람과 영화와 공감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과 함께 지금도 마음에 남아 용기를 주는 것은 ‘너의 길을 가라. 누가 말하게 내버려둬라!’라고 당차게 말하던 용찬 삼촌의 모습이다. 앞으로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해야 할 때,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귓가에 맴도는 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글_ 김원영 (시니어드림페스티벌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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