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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31>

경북 고령군 개실마을을 찾았다. 이 동네는 점필제 김종직이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하고 혼망한 자손들이 내려와서 살게 된 동네이다. 실제 동네이름은 꽃이 핀다고 해서 개화실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아름다울 가자를 써 가곡(嘉谷)으로 불리기도 한다.

집성촌으로서 촌수로 따지면 대체로 20대 안이다. 여기서 김병식 개실마을발전위원장을 비롯해 김병만 부위원장, 김종수 추진위원을 만났다. 그리고 고령군의 허찬수 기획감사실 균형발전담당과 김광호 주민자치과 건축담당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의 글은 이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정리한 것이다.

유교습속이 그대로 살아 있는 개실마을

집성촌으로 살다보니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마을은 일족이 살기 때문에 전체주민이 참여하여 운영한다. 종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대부촌이다. 영남일대에서는 대단한 종가들이다. 당시로서 너무 큰 집을 지어 암행어사에게 적발되어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인 1천 냥을 벌금으로 낸 적도 있다고 할 정도로 큰 한옥, 제대로 된 한옥이 많이 남아 있다.

종손을 앞에 세우고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종손의 말이라면 누구나 듣는다. 습속도 그대로 남아 있어 이것이 마을의 큰 자산이다. 우리 동네는 묵은 세배를 한다. 12월 31일 그믐에는 누구나 집집마다 방문하여 어른에게 인사를 간다. 묵은세배는 12시 전에 방에서 나오면서 하고 새해 세배는 들어가면서 절을 한다. 말하자면 이틀간에 두 번의 세배를 하는 셈이다. 새해 농촌체험프로그램에 지역의 미풍양속을 넣으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갈하게 세수를 한 다음 사당부터 참배하도록 할 것이다.
”?” 군청 리모델링 한옥으로 콘도 활용

한옥마을로 잘 보존되어 왔는데 일부 집이 쓰러져있는 것을 보기가 안타까워 수리하여 콘도로 활용하자고 생각했다. 동네 출향인사를 대상으로 이 사람들이 고향을 와서 자고 가는 콘도를 하자고 생각하여 금년에 10여 채를 수리했다.

여름에는 방충망을 설치하고, 입식부엌으로 개조하고, 그릇을 쟁여 넣으면서 살 수 있는 한옥으로 개조해 나갔다. 앞으로 10년 동안 군에서 수리해주는 대신 동네에서 쓰도록 동네에 사용권을 주고 민박 등으로 생기는 수익은 모아서 동네기금으로 적립해 동네 공동의 사업에 사용하게 된다.

여기에도 미친 건축쟁이가 있다. 군청의 김광호 담당이 주인된 마음으로 한옥리모델링을 감독 감시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부터 시작했다. 이근식 장관이 다녀갔고 아름마을 자금을 받아서 시작했다. 농촌마을가꾸기사업에서 장려상을 받아 3000만 원을 받았다. 현장위주로 감독한다. 현장위주로 행정을 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는다. 녹색농촌마을가꾸기도 하고 있다. 마을을 꾸미면서 운영도 함께 하고 있다.

이거 와카노! – 종손의 일생

이 집성촌의 종손 김병식은 일흔둘의 나이로 금년에 회혼식을 맞는다. 그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이 마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경상도 일대의 전통과 습속에도 밝다. 보학도 잘해 사람 이름만 들어도 벌써 어느 동네 누구의 후손인지를 척척 알아맞힐 정도이다. 그의 말이다.

할아버지 령에 못 이겨서 15살에 장가를 갔다. 15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6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고함지르면서 살아왔다. 집성촌의 종손이 가지는 특권은 고함을 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동네의 판검사 일도 한다. 임금은 ‘무치'(無恥)라고 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다. 종손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싸움을 벌여 문제가 되면 나한테 와서 심판을 받는다.

혼을 모실 필요가 없다고 해서 매혼(埋魂)을 하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학자, 훈충공신 등 특별한 사람의 경우 나라의 충신이므로 영구히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는데 이를 국불천위(國不遷位)라고 한다. 그 외에도 사불천위(士不遷位), 가불천위(家不遷位)가 있다.

종손들의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회원들이 모이면 “우리가 100살까지는 살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들은 지금 객지에서 한참 돈벌어야하기 때문에 바쁘다. 자식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살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복 없는 사람이 종손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평생 가문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새는 자부심도 생긴다. 4대 봉제사 국불천위, 할아버지 7분 할머니 6분, 설, 추석 기제사 등 1년에 총 15번의 제사를 지낸다.

옷을 많이 갈아입을 때는 하루에 9번을 갈아입는다. 손님이 오면 평복으로 입고 있다가도 한복 입고 정장을 하고 맞는다. 점필제가 신원이 되고 나서 솟을대문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파라솔을 쓰고 그 솟을대문을 통과하는 여자가 있으면 큰 소리로 고함을 친다. 어디라고 함부로 여자가 파라솔을 쓰고 이 문을 통과하느냐고. 하회마을의 유성룡 종택의 종손과도 친해 한번은 그 집 마루에 앉아있는데 어떤 여자가 수영복을 입고 양산을 쓰고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대노해서 남의 동네이지만 고함을 쳤다.

길거리에서 아가씨들이 배꼽을 내 놓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와이카노!” 나는 현대인이다. 그렇지만 요즘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 먹는 것 아니면 여자들의 배꼽을 내놓는 것이 TV에 나와 볼 것이 없다. 우리 며느리가 셋인데 다행이 배꼽을 내 놓도록 옷을 입거나 심지어 바지도 입지 못하게 하지만 잘 따른다.

그의 고함소리는 이 마을의 최고 어른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살아있는 ‘호랑이’로 말미암아 이 동네는 더욱 빛난다. 유교가문, 양반가문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종손이 대청마루에 앉아 ‘허 허’ 하면 모두가 꼼짝을 못한다.

종손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며 마을의 여러 구성원들을 도닥거리기도 하고 엄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이끌어가는 역할을 다한다. 열심히 전국을 다니며 농촌관광, 농촌살리기를 배우고 있는 부위원장과 추진위원들이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부드럽게 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며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이 마을의 성공의 비결이다. 개실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김병식 위원장의 말이다.

가장 전통에 충실하련다
”?” 개실마을은 90%이상이 한옥으로 되었다. 금년에 문화관광부에서 고택자원화사업하면서 현재의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민박을 하는 사업으로 한옥 11채를 얻었다. 우리 마을은 옛날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기 등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떡메치기, 엿만들기, 한과 등 민속으로 체험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특히 한옥을 보수하여 7첩반상계를 재현해 볼려고 한다. 4세트의 7첩반상세트를 구했다. 전통혼례복을 2벌 구해서 전통혼례식도 해 볼 것이다.

옛날 방식을 재현하는 것을 고수하려고 한다. 토담으로 한옥을 유지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동네분들이 노인들 뿐이어서 70이 다되어 간다. 40대가 3명이 있지만 소수이다. 엿을 전통 방법으로 만드는데 서울롯데백화점 본점에 납품했다.

엿만들기 체험에서 보면 구경꾼들 가운데 엄마와 아이가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엄마가 처음해 보는 사람이 많다. 우리 동네만은 옛날 양반풍속을 그대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하려 한다. 이것이 관건이다. 종가집에 인사하고 사당에 인사하고 양반이 했던 그대로 하게 한다. 마음수양을 엄격하게 시키려하는 것이다.

마을자원을 모두 활용하라
-어른들의 말씀이 보물,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개실마을의 자원이 많이 있지만 특히 또 다른 인적자원이 있다. 숭실대를 졸업한 도예가가 지도하는 도예체험장을 하려고 한다. 이를 기초로 도예마을축제를 할 계획이다.

우리 동네 사람 가운데 전국소싸움협회장이 있어 싸움소가 몇 마리가 있다. 이 마을에 오는 사람들을 소에 태워 동네를 한바퀴 도는 것도 하나의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5대 효자가 나면 관직을 주는데 우리 동네에 그런 효자가 났다. 그래서 사헌부 지평 벼슬까지 제수받은 것이다. 일종의 국가공인 효자인 셈이다.

과거 우리 조상 가운데 아주 효자가 있어 병든 부모가 한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 당시 동네에 있는 연못에 가서 기다렸더니 잉어가 솟구쳐 올랐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논으로 된 그 연못을 재현하려 한다. 이 논은 잉어배미라고 불린다.

또한 이 동네에는 도적굴이 있다. 역적으로 몰려 간신히 이 동네에 숨어 들어온 조상이 우리 12대조의 꿈에 나타나 그 굴에 가보라고해서 가봤더니 엽전 꾸러미가 엄청 나왔다. 도적들이 두고 간 것이 아닌가 해서 도적굴로 불린다. 그 돈으로 이 마을을 일구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활용하려 한다.

우리가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는 잔소리로 밖에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씀들이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동네 역사라든지, 습속이라든지, 풍속에 관해 말씀한 것이 모두 보물같이 귀한 말씀이었던 것이다. 자식이나 집안의 어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마이동풍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종손들의 모임 영지회, 퇴계후학들의 모임 박약회, 양반들의 모임 삼무회
-전통과 과거를 지키고 이어받는 경상도의 모임들

영지회(永志會)라는 것이 있다. 종손들의 모임이다. 매월 두 번째 화요일에 모임을 한다. 보통 10명 정도 모인다. 일성김씨 김종직의 후손이자 종손인 나를 포함해서 안동김씨의 김계행, 풍산김씨 김각현, 퇴계종손 이금필, 유성룡의 종손 유영아를 포함하여 그 나이 또래인 장철수, 한운당 김경필 종손 등이 회원이다.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은 빼고 나이가 벗되도록 모였다. 이들이 모여 요즘의 시대변화를 걱정한다.

과거 포항공대를 지냈던 김호길 총장은 안동에 살았던 의성김씨의 후손인데 박약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퇴계 후학들의 모임이다. 이태근 고령군수는 삼무회라는 양반들의 모임(종손은 아니기 때문에 종손모임의 자격은 없다)을 만들었는데 삼무란 회칙이 없고, 회장이 없고, 회비가 없다는 것에서 정해졌다. 그래야 양반의 자존심이 안구겨진다.

마을가꾸기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양반가에서 밥해주고 빨래하고 서비스라니!

이전에는 마을가꾸기가 뭔지는 몰랐는데, 군수님이 와서 해 보라고 해서 시작은 하게 되었는데, 그당시 동네를 개방해서 동네의 풍속을 우리나라에 한번 알리자고 권유했던 것이다. 사실 양반마을에서 농촌관광이라는 것이 너무 안 어울린다. 양반의 아녀자들이 외부손님을 받아 밥해주고 빨래하고 서비스를 해 주라니 얼토당토하지 않은 소리였다. 그러나 차츰 수입도 생기고 재미도 붙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전국의 학교와 교육하는 곳은 다 다닌다

2002년부터 전국의 마을을 답사하면서 민승규 박사가 하는 농촌벤처대학에도 가서 졸업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민승규 박사, 강신겸 박사와는 수시로 상의한다. 농업관광대학의 1년짜리 코스도 졸업했고 남해 다랭이 마을, 하회마을 다 다녀 보았다.

경북대학교 최고 경영자과정도 몇사람이 다녔다. 학교라고 하는 곳, 교육하는 곳은 다 다닌다. 다행히 농촌관광대학은 90만원 하는데 모두 군에서 대준다. 70 먹은 할머니들이 농업관광대학을 매년 4명씩 다니고 있다. 농촌관광대학의 입교생 가운데 고령군이 늘 최고로 많다.

여러 기관과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는다. 군수님과 여러 공무원들이 많이 도와준다. 11채의 고가를 수선해주고 자주 들러 이런 저런 애로를 다 듣고 해결해 준다. 특히 삼성 에버랜드에서 많이 지원해 주고 있는데 지난번에는 전문적인 요리가들이 와서 우리가 한과를 만들고 ”?” 남이 한다고 따라하지 않는다
-호객행위 장사꾼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마을에 맞는 것만 한다. 다른 마을이 한다고 해서 따라가지 않는다. 남해 다랭이마을이나 하회마을을 가봤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별 집들이 장사를 하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사꾼이 되는 것은 절대로 반대한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외부인이 여기 들어와서 가게를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을 허용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면 너도 나도 각자 장사하면서 서로 경쟁도 되고 싸움도 벌어질 것이다. 온 동네가 갈라서고 갈등하고 엉망이 될 것이다.

부녀자 풍물패에 얽힌 사연
-아녀자들이 엉덩이 흔들며 풍물을 하다니!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도 환갑을 지낸 사람인데 우리 동네 제일 젊은 사람이다. 우리 마을은 부녀회를 탈퇴 하려면 75살이 넘어야 한다. 이 부녀자들이 고마운 게 여기 나와서 일하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동네에 와서 오는 사람들한테 농담도 하고 한과도 만들고 함께 일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6년 전만 해도 이 동네 여자들은 아예 바깥출입을 못 했다. 조금 전까지 풍물연습을 했다. 풍물을 하고 장구를 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사실 이 부인들은 먹골댁이나 개편댁이니 하는데 모두 영남의 최고 반가에서 시집온 사람들이다.

한 가지 예로 체험관이 2006년 4월 20일 개장을 하였다. 거기서 풍물을 쳐야 하는데, 종손께서 외부 손님들 앞에서 여자들이 엉덩이 흔들면서 풍물 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시더니 내가 없을 때라면 몰라도 안된다고 하면서 종손은 자리를 피하시고 결국 강행을 했다. 우리는 그 사건으로 양반동네 탈피를 했다는 것을 외부 인사들에게 인정받았다.

여기서 에버랜드와 인연을 맺었다. 개장을 하고부터는 우리 마을에 개장 하고 나서 초등학교 4개교와 자매 결연을 맺었다. 자매결연 맺은 학교 학생들이 계속 체험을 하러 온다. 일인당 1만2000원씩 주고 체험을 하고 간다. 그래서 작년에 돈 많이 벌었다. 우리 마을은 매일 애들이 와서 연 날리기, 한과 만들기 체험 등을 하고 있다. 도시 사람이 옛날 것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 중에서도 성산김씨 일가를 많이 찾는다.

갈등과 고비가 없지 않았다
-고객관리카드로 사후관리를 한다

우리 마을은 홈페이지도 잘 만들고 관리한다. 외지에서 개실마을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일가들도 50명 정도가 매일 들어와서 확인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사실 모두 관망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잘 하나 두고 보자는 것이다.

사실 동네 내부에서도 자신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여전한 면도 없지 않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동네 발전과정에서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다. 올해를 잘 넘기면 마을재단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소식지는 홈페이지로 게시하고 있다. 방문객에게는 고객관리카드를 받고 있다. 인적사항을 보고 고객 사후관리를 한다.

면담일시 – 2007년 3월 19일

면담장소 –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기리 개실마을

면담인사 – 김병식(점필제 김종직 종손.개실마을발전위원장)
김병만(개실마을발전위원회 부위원장)
김종수(개실마을반전위원회 추진위원. 농촌지도자 고령군연합회장)
허찬수(고령군 기획감사실 균형발전 담당)
김광호(고령군 주민자치과 건축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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