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일 년, 또 일 년, 시간이 흘러 직장 경력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만큼 새로운 고민도 쌓여간다. ‘이 길이 과연 내 길일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들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내 삶을 고민할 기회조차 없을 것 같은 그런 순간과 마주한 채, 가지 않은 길을 다시 떠올려도 보고, 충동 반 막연한 희망 반으로 잠시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다니게 되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선택에 대한 압박은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이다.

그러다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소개된 <퇴근후Let’s>를 알게 되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새로운 길을 볼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 신청서를 살짝 들이밀게 되었다.

조금 색다른 시작

우리의 첫 만남은 애장품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특별한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수강생 모두의 자기소개를 듣진 못했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어서 이경희 교수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경희 교수님은 학자로서 교수로서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어느 순간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이 즐겁지 않았고, ‘내가 쓴 논문이 과연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강의에서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지 않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계획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멋진 분, 용기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희 교수님은 퇴직 후 현재 생활과 밀착된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주변을 조화롭고 참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경희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해피시니어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모두 다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생기있는 눈빛을 갖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막연하게나마 어느 때가 되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니어분들은 삶이 계속되는 한 그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고민의 본질을 구별하는 안목이 길러지고, 분별력이 생길 것이라고 응원을 해주셨다. 강의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들어보니, ‘고민 없는 인생을 살?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구나’라는 긍정적 체념(^^)이 들기도 했다.

첫날 일정은 예술과 도시가 만난 곳 ‘문래창작촌’ 탐방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을씬년스러운 거리 풍경에 마음이 심드렁했지만, 각종 설치물과 그래피티, 창작 스튜디오, 전시공간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거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영감이 넘치는 예술가들의 서식지가 도시 한 쪽에 지속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고 다양한 문화의 트렌드가 발아될 수 있기를 바라며 문래창작촌을 걸었다.

내 안의 ‘공공성’을 찾아라

서울 청소년 수련관에서 열린 두 번째 시간은 생활인으로서 내가 견지해야 할 공공성의 영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희망제작소 유시주 이사님의 해박하고 유머 넘치는 강의는 강의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만큼 흥미로웠다. 우리가 자랑하는 여러 가지 지표 뒤에는 압축 고성장의 속도에 외면받은 공공의식과 시민성이 숨겨져 있었다. 나 역시 경제위기에서 야기된 유럽 각국의 데모, 월가에서의 시위를 보면서 신 자유주의 한계를 느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왔었다. 아마도, 그 핵심은 다음 간디의 일화로 요약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간디에게 물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모자를 쓰고서 모자를 사러 가지 않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조금 다른 ‘소비’를 할 수 있음을 공감만세 고두환 대표님의 강연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냥 편하게 즐기는 행위로 생각했던 여행이, ‘공공재’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노는 행위의 형태’를 다르게 선택함으로써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신선했다. 고두환 대표님의 강연은 공공여행을 통해, tourist 가 아닌 그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과 진정한 교감을 느끼는 traveler로서의 자세를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발상의 전환 그리고 힐링타임

공유와 공공의 가치에 기반해 운영되는 사업에 대한 강의를 듣고,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공유경제 사업을 시작한 KOZAZA의 조산구 대표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KOZAZA는 여행과 문화의 영역을 공유경제와 접목해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어 새로운 기회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Air B&B로부터 시작된 여행 공유 플랫폼과 자동차 시장이 소유에서 공유로 변해 가는 과정에 깔린 시민사회의 신뢰에 관한 이야기까지 유쾌한 사례들로 에너지 넘치는 강연이 진행되었다. 사회적기업과 영리기업이 접목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이란 KOZAZA의 사례도? 흥미로웠지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틀에 대한 제안까지 해주셔서 평소 coding을 배울 필요성만 느끼고 있다가 이 기회에 정말 배워야겠다(!)란 적극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젠 행동만 남았다! ^^).

이 모든 걸 실행해 나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건강한 마음일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치유하는 과정으로 홍성남 신부님의 강의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안경환 전 국가인권 위원장이 자신이 가르치는 직업을 택했던 것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나는 캠퍼스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또는 대학이 한때 독일 학생들의 용어처럼 ‘자유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서 교수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이라는 개량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시일이 걸리더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세상이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기여했으면 하는 생각이었지요.”

희망제작소의 여러 프로그램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그리고 의식은 갖췄지만, 행동할 용기가 없는 이들의 등을 살짝 밀어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같다.

이제 퇴근후Let’s 5기 여정이 반쯤 지났다. 이 여정이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지만,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든든해질 것 같다.

자유로운 에너지,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신 퇴근후Let’s 선배분들께 감사드리고, 또 같은 길을 가기를 꿈꾸는 퇴근후Let’s 5기 동기분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글_ 이은정 (퇴근후Let’s 5기 수강생)
사진_ 나종민 (바라봄 사진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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