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행복설계아카데미(행설아) 14기 교육생들이 한 달 간의 교육을 마치고 지난 4월 14일 수료식을 가졌습니다..
이번 교육과정을 수료하신 최영식님의 소감문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영식입니다.
행복설계아카데미 교육이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료식입니다.

겨울과 봄이 마지막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벌써 여의도에 봄꽃 축제가 시작된다네요. 런던에서 파리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을 조사한 결과, 1위가 좋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는데, 바로 좋은 분들과 함께라서 이렇게 빠르게 느껴지나 봅니다. 지금의 느낌은 참 잘왔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고 배부르다, 물론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지만 인생 2막의길을 안내할 질 좋은 네비게이션을 하나 새로 챙긴 느낌입니다.




1. 퇴직 후 행설아 문을 노크하기까지

2010년 10월 30일, 직장이 저를 버린게 아니고 제가 직장을 버렸습니다. 내용이야 어떻든 포장은 희망퇴직이었거든요. 일용할 양식을 제공했던 **은행. 떠난 아쉬움보다 넥타이로 상징되는 시간과 일의 구속으로부터 해방감이 더 짜릿했습니다.

온전히 내 시간을 맘대로 디자인하고 재단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저의 버킷리스트는 골프, 등산, 여행 등 취미와 여가활동으로 빼곡히 채워졌습니다. ‘청춘을 바쳐 일했는데 누가 뭐래도 나는 나만을 위해 나머지 2막을 내 맘대로 즐길 권리와 자격이 있어’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그렇게 우쭐데는 아내도 한 몫했습니다.

“나 한 달 후면 프리랜서(퇴직이라는 말 대신) 선언한다” 라고 했을 때
“그래 뭐 열심히 일했으니까 스트레스 받으며 돈 벌 생각마.”
“정말 그래도 돼? 최소 90살까지는 산다는데… 당신 챙겨 놓은 건 많아? 로또 아님 처갓집 유언장이라도 미리 봤어?”

아내가 또 대답했습니다.
“가늘고 길게 살면 되지.”
“그럼 가늘고 아주 기~~~일게 살자.”
“기~~~일게는 아니고 그냥 길게.”

그러나 그것이 100%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주위사람들도  “나는 자유인이다” 라고 쓰면 “너는 백수다”라고 읽었습니다. 내 버킷리스트를 흘깃 본 아내는 “뭐 살림에 도움되는 제빵, 요리 이런 건 없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도 뭔가 부족한데라고 느끼고 있던 참에 곰곰이 따져보니 버킷리스트 포트폴리오가 너무 내 중심으로만 되어있고 가장 중요한 인생 2막의 가치나 미션, 의미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눔, 봉사 같은 사회적 공헌은 혹 놀다가 정 지루해지면 해볼 심산으로 맨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선순위를 정하고 보니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가 막막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인생 2막을 의미있게 함께 비행할 누군가도, 항법장치도 필요하다고 생각던 차에, 퇴직 교육 때 희망제작소 남경아 국장님의 강의를 통해 들었던 행복설계아카데미가 문뜩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희망제작소 회원도 가입하고, 짝꿍명함도 만들고, 행복설계아카데미의 문을 똑똑똑 두드리게 된 것입니다.

2. 행설아에서의 시간들

드디어 설레임, 호기심, 낯섬, 어색함, 뭐 이런 감정이 뒤엉킨채로 희망제작소를 들어서니 김두선 팀장님을 비롯한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연구원 여러분이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동기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엇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왠지 낯익어 보이는 여러분들과의 동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몇몇 단체 후원이나 하고 팔짱끼고 바라보던 NPO, 제3섹터를 가까이에서 살펴 볼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회공헌,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커뮤니티비지니스 등 낯선 단어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눈덮인 겨울산을 럿셀하듯이척박한 제3섹터를 아름답게 색칠해가는 박원순 상임이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는 걸 보고 너무 부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또 행설아 출신분들이 달팽이 건설, 시니어사회공헌사업단 렛츠, 희망도레미, 똑뚜미 등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러나 월드비전, 아름다운가게, 관악재활센터 놀이터 등 막상 현장 탐방을 다녀오고, 여러 사례를 알게된 뒤로는 현장에서 부디치는 애로 사항, 또 저의 준비정도를 가늠해보면서

– PO세계의 스트레스에서 막 해방되었는데 다시 또 스트레스 속으로…?
– ‘저 분들은 미리 준비하고 실천할 동안 난 뭐하고 있었지’ 하는 자괴감
– 준비된 프로 활동가도 롤러코스터 같은 성공과 위기를 넘나드는데….

즐거운 상상은 점점 ‘좋긴 정말 좋은데 내가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 자원봉사나 아님 기부금을 쫌 늘릴까, 준비한 다음 천천히 생각해 보지 뭐’

그러나 그러는 동안 저에게도 변화가 생기고 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본 플래카드에 적힌 ‘집짓기 봉사자 열린사회연대’의 전화번호를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봉사 전에 돈 번다는 이유로 이웃집 불구경하듯 소홀히했던 우리집 집안일부터 봉사하자’라고 마음을 먹고 설거지, 청소, 화초 물주기, 요리,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등도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착한 소비, 집 앞 한살림생협 이용, 공정무역 커피 마시기를 식탁에서 얘기하게 되고, 제가 속해 있는 카페의 봉사활동날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이때, 도시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진 젊은 작가그룹과 옥상 텃밭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행설아 강의 중 일본 동경에서 실행된 긴자 양봉 프로젝트 사례도 접했던 터라 무조건 콜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행설아 뒤풀이 모임의 애칭인 ‘만원 클럽’은 아내가 좋아하는 원플러스원 같은 보너스였습니다. 동기 여러분의 세상살이와 관심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아주 헐값에 챙겨간 셈입니다. 단돈 만원에 속성과정으로…

”사용자
3. 행설아 문밖을 나서며

어제는 문래창작촌 옥상에서 작가(마임, 독립영화, 일러스트, 미술 등)들과 옥상텃밭모임 상견례와 공공미술 하시는 분의 집들이를 겸해 20여 명이 모여 막걸리 파티를 가졌습니다. “시. 미. 나. 창(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라 건배를 외치며 영등포 옥상은 우리가 모두 점령한다는 기세로…

도시 미관도 살리고, 텃밭 농작물은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도 나누고, 앞으로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장기과제로는 태백 철암도서관처럼 농촌 아이들과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가도록 준비해볼 생각입니다. 작가들을 불러 봉사활동을 시키리는 약간의 흑심도…

‘빨리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동기 여러분도 어디에선가 제3섹터의 텃밭을 가꾸리라 믿습니다. 따로 또 같이. 제가 좋아하는 뤼쉰이 ‘고향’에서 말한 것처럼.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영 포틴 동기여러분 사랑합니다. 행설아 14기를 진행해주신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연구원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도시 보도블럭 틈을 비집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노란 꽃을 피워내는 민들레처럼, 동기 여러분도 지금의 열정으로 희망의 홀씨를 날려 아름답게 꽃 피우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로 소감을 마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벽을 넘는다.

글_최영식(행복설계아카데미 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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