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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국가방역체계를 뜯어고친다고 한다.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초기 방역당국의 오판, 정보차단과 은폐, 존재감 없는 정부의 컨트롤타워, 민영병원의 이해를 고려하는 동안 낯선 역병은 퍼져 나갔다. 뒤늦게 전권을 부여받은 즉각대응팀은 전문가가 총괄했다. 정부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재난대응은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정부가 총괄하면서 행정적으로 인력과 자원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시스템마저 무력화시켰다. 우왕좌왕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정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들이 빛나고 있다. 의료인들은 사명감으로 의료 현장을 지키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학교는 또 어떤가.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긴급히 운영위원회가 소집되고 최선의 대책을 논의하는 등 시민들의 참여와 파트너십도 남달랐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대응이다. 다소 편차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메르스와 전면전을 선포하며 지역 내 방역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서울시장의 심야 기자회견이 없었다면 이후 방역당국의 대응기조 변화나 병원정보 공개도 없었을 것이다. 성남시장, 수원시장은 처음부터 신속한 정보공개와 대응으로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어 불안감을 해소하였다. 서울 양천구청장은 메르스 대처방안에 대한 공개는 물론 메르스를 극복하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며 주민들 곁을 지켰다. 이밖에도 의료진에게 희망의 응원 메시지를 전달한 경기도지사, 충남도지사, 부천시장, 아산시장의 대응도 남달랐다. 서울 종로구 등 확진자가 없는 지자체는 구청의 메르스 대처방안과 행동요령, 현재 격리자 현황 등을 주민들에게 알림으로써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했다. 목민관클럽의 대부분 지자체들이 이와 같은 노력을 했다. 지역의 주민들이 구청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정보를 다시 주민공동체가 공유함으로써 안정감을 찾아간 것이다. 필자는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장 62명의 연구모임 ‘목민관클럽’의 사무국장이기에 그러한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가까이서 지켜봤다.

메르스 사태는 중앙정부의 실수와 늑장대응을 일부 지자체가 잘 극복한 사례다. 지자체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해당 지역의 모든 공무원에게 비상이 걸리고 지역에 맞는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손발이 아니고 주민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주민의 삶을 보듬어 주는 곳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민선5기를 지나면서 지자체의 달라진 수준과 높아진 역량을 실감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가 시작했던 동(洞)복지허브화는 현 정부에 채택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광주 광산구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서울 성북구의 생활임금제, 경기교육청의 무상급식은 지자체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그 혜택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더 이상 중앙정부의 손발로 있었던 과거의 지자체가 아니다.

메르스 사태의 해결에서 보듯이 재난안전에서도 지자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 중앙정부는 지자체로 재난대응의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고,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 현장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재난발생 시 어디에서 무엇을 동원해야 하는지, 어떻게 확산을 막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중앙정부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려서 보고받는 것만으로 지역별 재난의 다양한 특성을 헤아려 재난을 수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는 만큼 주민들의 삶은 달라진다. 물론 모든 지자체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곳은 지자체가 역량을 키우도록 중앙정부가 인력과 재원을 지원하면 된다.

올해는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확대는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메르스를 계기로 국가방역체계를 다시 짜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을 위해서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과감하게 지자체로 넘기길 바란다. 주민들에게는 TV 속의 중앙정부보다 주민 곁을 지키며 신속하게 대처했던 지자체가 더 듬직했기 때문이다.

글_ 권기태 정책그룹 연구위원·목민관클럽 사무국장 / kwonkt@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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