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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일제고사도 없다. 과외도 없다. 물론 방과 후 가야할 학원도 없다. 능력별 학급편성도 없다. 모든 학생에게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스포츠나 예술에 취미를 가진 학생을 위한 특별한 학교는 있지만 학문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위한 특별한 수업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특수학교도 없다.”

세상에 이런 학교가 있을까? 있다. 바로 핀란드의 종합학교가 그렇다. 핀란드 어린이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9년짜리 종합학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해당하는 교육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한다.

이렇게 교육하면 성적이 엉망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핀란드는 2006년 실시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1위를 했다. PISA는 OECD국가들이 주관하여 3년마다 15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다.

핀란드 PISA 테스트 책임연구원인 요우니 발리예르비 교수가 얼마 전 희망제작소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밝힌 핀란드 교육의 실상은 듣는 이로 하여금 환상 속의 학교를 보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PISA테스트에서 서구 국가를 제치고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러나 이런 성적은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대입까지 이르는 학원과외로 국민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후 얻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1위


인성과 적성교육이 무시된 과외열풍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창의력이 극도로 말라버린다. 세계 100대 대학에 우리나라 대학이 하나도 끼지 못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핀란드가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이런 교육적 성취도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핀란드는 이웃 선진국인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를 통해 30년에 걸쳐 지금의 9년제 종합학교 교육시스템 개혁을 정착시켰다고 한다. 반면 핀란드의 교육제도에 대해 오히려 주변국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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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핀란드의 교육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을까?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국가 규모가 다르며, 교육 문화가 다르다. 핀란드는 인구 500만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 10배인 5000만 명이다. 우리는 교육열과 경쟁이 고착화한 전통유교문화이고 핀란드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배어있는 북유럽형 복지국가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평등교육이냐 엘리트육성이냐를 놓고 벌이는 이념논쟁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반면, 핀란드에서는 교육이 국민적 합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성과 적성과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이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분열적 결함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핀란드의 사례는 여러모로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 전 인터넷 포털기업 ‘다음’의 제주 이전 프로젝트를 취재했다. 현재 엔지니어와 미디어 인력 등 180명의 고급 두뇌가 제주에 살고 있으며 2022년까지 다음 직원의 절반이 제주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었다.

그런데 거의 30대인 다음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문제다. 제주도에서 과연 그들의 자녀가 제대로 교육을 받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다음 직원들은 어떤 대안적 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제주도가 그 대안적 교육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정착시켰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음 직원 한 사람이 이런 경험담을 말했다. 서울서 제주로 전학한 딸이 하루는 “토요일 밤에 친구를 데려다 함께 자겠다”고 요구했다.
이 직원과 그의 아내는 처음에 혼비백산했다. 학교와 학원 외에 생각해볼 수 없었던 그들은 “딸이 큰일 낼지 모른다” 고 펄펄 뛰다가 자신이 어릴 때를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딸과 친구들은 토요일 밤 집에서 요란스럽게 떠들고 요리를 해먹고 놀았고, 어떤 토요일은 친구의 집에서 잤다.
유심히 관찰했더니 굉장히 수줍음을 타던 딸이 쾌활해지고 또 부모도 서먹해하는 동네사람에게 인사도 잘했다. 그런다고 공부하는 데 지장을 받는 것 같지도 않았다.


교육이 교육의 길을 정하도록


“딸의 행동에서 서울 학생들이 잃어버린 인성을 보았다”고 그 직원은 말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인성, 적성, 창의를 기르는 초중등 교육의 가능성을 살리는 파일러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할 수 있지 않느냐고 절박하게 말했다.

발리예르비 교수의 말을 들으며 제주도가 하든 중앙정부가 나서든 대안적 교육제도를 만들고 이 실험을 잘 활용하여 교육개혁의 전기를 마련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발리예르비 교수가 강연중 던진 한 마디가 새롭다.
“경제가 교육의 길을 정해서는 안 되며 교육이 교육의 길을 정하게 해야 한다.” PISA테스트 1등 국가의 교육자가 한 말이다.

*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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