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시각장애인에게 길 위 ‘볼라드’는 흉기
[한겨레 2007-03-12 19:48]

“희망제작소는 13일 ‘사회창안 와글와글포럼’에서 정보접근권과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충과 그 해결책을 논의하고, 올해 집중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 기사 중 –

이 땅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편과의 투쟁’이다. 시각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거나, 있어도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발달하는 디지털 기술 또한 시각장애인을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 지난 9일 혼자 자취를 하면서 대학에 다니는 시각장애 1급 김아무개(22)씨와 하루 일과를 같이하면서, 이들의 어려움과 바람을 함께 느껴 봤다.

오전 10시 갈색 바지에 보라색 스웨터, 연갈색 점퍼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김씨는 “저, 옷 색깔이 괜찮나요?”라는 질문부터 했다. “어울린다”고 하자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칠판 글씨를 못 보는 그는 장애인 학생의 공부를 돕는 도우미를 신청하려고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에 가는 길이었다. 김씨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오전 11시 지원센터가 있는 대학본관 현관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의 전기톱 소리가 날카롭다. “공사장을 두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이 많아요. 소리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나면 알 수 없으니까요.” 김씨는 과감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 그만 계단 앞에 있는 크레인에 머리를 찧을 뻔했다.

낮 12시20분 센터를 나서는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버튼을 누르자 문자메시지 내용이 기계음으로 흘러나왔다. “어디냐? 밥 먹자.” 음성기능을 구현해주는 휴대전화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비싸다. “요금이 장애인 할인 30%를 받고도 8만원 넘게 나와요.”
”?”현금인출기서 돈 뽑을 때도 비밀번호 알려줘 도움 청해야
“무엇을 해주겠다이야기말고 혼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김씨는 혼자 학교 밖으로 나서는 것을 꺼린다. 도로에 점자블록이 있지만 신문가판대나 경사판 등이 점자블록 위에 놓여 있어 넘어지기 일쑤다. 특히 점자블록 위에 설치된 ‘볼라드’(진입방지 경계석)는 시각장애인들에겐 ‘흉기’나 다름없다. “목욕탕에 가면 다 알아요. 시각장애인들은 볼라드 높이와 비슷한 위치의 정강이에 상처가 있거든요. 볼라드에 고무판이라도 둘러주면 좋겠어요.”

오후 3시 점심을 먹고 은행에 들렀다. 대부분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바뀐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기란 불가능하다.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줘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가 이용하는 ㅅ은행의 경우, 전국에 있는 현금인출기 7000여대 중 점자식 인출기가 50여대뿐이다. 그나마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바뀌면서 점자식은 아예 사라지고 있다. 최근엔 도서관 열람실도 좌석 예약 시스템이 터치스크린으로 바뀌어, 김씨의 고민이 늘었다. ”?”오후 4시 도서관 열람실에 앉자 김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이어폰을 꽂았다. 화면의 글자를 읽어주는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그에게 ‘시각장애인용 홈페이지’는 오히려 불편하다. 스크린리더 프로그램과 소리가 겹쳐서 나거나 프로그램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컴퓨터가 멈추는 일이 잦다.

저녁 7시 도서관에서 일어섰다. 김씨는 “버스 번호를 구별할 수 없고 정류장 안내방송이 안 나오는 때가 많아 버스를 잘 타지 않는다”고 했다. 지하철은 음성안내나 점자블록이 잘 갖춰져 있지만, 일반 열차는 차량번호나 좌석번호 등이 점자로 표시돼 있지 않아 좌석을 찾기 힘들다. 김씨는 “열차 화장실에 남녀 구분 표시가 없어 간혹 민망한 경험을 한다”고 했다.

저녁 7시20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렀다. 주인에게 “우유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대형 할인마트에서의 쇼핑은 꿈도 못 꾼다”며 “유통기한이라도 점자로 표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와 헤어지며 김씨는 힘주어 말했다. “시각장애인도 혼자 살 수 있는데, 사람들은 늘 무엇을 해 주겠다고만 이야기하지 혼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는 않아요.”

희망제작소는 13일 ‘사회창안 와글와글포럼’에서 정보접근권과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충과 그 해결책을 논의하고, 올해 집중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이재명 기자, 정유경 수습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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