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우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요?”
한참 만에 나눈 담당연구원 쌀님과의 짧은 대화.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 수료식까지는 이제 한 나절밖에 안 남았다. 책상에는 여전히 산더미만큼 쌓인 자료들이 ‘어여 날 잡아잡수~’한다. 전시실에는 자르다 만 골판지들이 널부러져 있다. 본드가 덕지덕지 붙은 손으로 서걱서걱 칼질을 하다 말고 괜히 부아가 치밀어 몽땅 냅다 던져버렸다.

“넨장, 그러게 내가 하지 말자니깐. 이럴 줄 알았어. 전시회 전날은 같이 밤 새자고 해놓고는.” 궁시렁궁시렁…. 창 밖을 내다보니 반짝이는 자동차불빛 너머로 벌써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기획회의 하느라 첫 눈도 여기서 바라봤는데… 난 정말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제1기 해피리포터양성 워크숍 첫 날. 사진강좌를 맡은 분이 생각보다 젊어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현란한 용어와 각주, 미주로 무장한 당신의 텍스트를 가리켜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쓴 글이에요. 시간나면 읽어보세요.” 아주 쿨하게 힘을 빼시는 모습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아이들이 다들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귀를 쫑긋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본인의 일상사만 이야기 하다가 마침내 한 마디를 던졌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해요.” 뒤이어 등장한 오마이뉴스 부국장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강연 내 반복했다. “시민사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합니다.”

사진도, 기사도 모두 꽝인 나는 감정이 메마른 놈이었던건가. 오라질 이내 마음을 대체 앞으로 어찌한다.

”?”8월 말. 첫 취재를 나섰다. 다행히 섭외울렁증 같은 것은 없었지만 막상 눈앞에 마포연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또래의 대학생 예닐곱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라디오방송 부스 안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서너 분이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예상대로 규모가 꽤 큰 단체구나. 대표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자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웬걸 상근자가 달랑 세명이란다.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월급은 거의 알바 수준, 재정상태도 간당간당하다. 이분에게도 ‘여기서 왜 이러고 계세요?’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그릇에 사람을 담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때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운동을 해나가야죠.”

”?”두 번째 취재지는 광주자원봉사단. 나름 2년간 뼈를 묻었던 친정 같은 곳이다. 취재도 하고, 오랜만에 정겨운 이들의 얼굴도 보고, 그야말로 1석2조의 일정이었다. 우리의 아지트 전남대 후문의 어느 호프집에 들어섰더니, 어제의 ‘동지들’ 30여 명이 이미 왁자지껄하게 건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해야 한다고 미리 그렇게 얘기했는데, 아주 제대로 글러먹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이 사람 저 사람 악수를 나누는 사이, 명국형이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3년 전, 사무장이었던 형이랑 대자보 붙이고, 회의하고, 밤새 기타치고, 그러다 결국 총회 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에라~ 일단 마시고 보자. 다 죽어가는 홈페이지, 몇 년째 유야무야인 집행부, 반으로 줄어든 활동지 얘기는 동이 틀 무렵에야 한두 마디 나눌 수 있었다. 그나마도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나 정말 왜 이러냐….

”?”9월로 접어든지 한참이 지났지만, 한낮의 날씨는 여전히 푹푹 쪘다. 왕십리 고개고개를 헤집고 다니다 지쳐 잠깐 허리를 펴고 있는데, 저 멀리 학교 벽에 따닥따닥 붙어서 열심히 붓질 하고 있는 ‘늦바람’ 회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숙련된 미장이가 따로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쪼그리고 앉아 아스팔트 열기를 견뎌내느라 하나같이 땀범벅, 물감범벅이었다.

‘토마토’ 라는 이주연 사무국장의 애칭은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정말 딱이다 딱. 그래도 그렇지 사진만 찍고 있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다들 여기서 왜 이러고 계세요….안타까운 마음에 카메라 대신 걸레를 들고 벽화마무리 작업을 도왔다. 며칠 후, 늦바람 보금자리를 찾아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이주연 사무국장에게 실제 이 질문을 던져봤다. “처음에는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 일반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결국은 여기에 눌러 앉았어요. 어떤 것은 한 번 맛 보면, 쉽게 다른 것을 찾는 게 어려울 수도 있어요”

”?”주차장 옆 컨테이너 한 칸. ‘강동사랑시민연대’ 간판만 없다면 영락없이 수위실 혹은 물류창고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 실내에도 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바스라진 벽면 곳곳에는 울긋불긋 때 아닌 단풍이 피어 있었다. “누추하지만 어서 앉으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화열 대표님은 예의 사람좋은 미소가 얼굴 한 가득, 싱글벙글하신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착잡한 마음이 깊어갔다. 부설기관인 꿈나무 아동센터, 꿈나무 청소년 공부방은 독립까지 시켜 빠방하게 운영 중이면서, 강동연대는 이게 뭔가 싶었다. 어렵게 급여수준을 여쭤봤더니, 말씀하시는 금액이 내 한 달 용돈 수준이다. 가장으로서나, 강동연대 대표로서나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면서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다시 한 번 싱글벙글.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위원회’ 수준으로 반상회를 키워나가는 것이 목표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나탈리아 교장선생님이 날아오셨다. 한글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게돼 정부초청으로 왔는데, 내친 김에 한글학교 후원공연까지 치러내고 갔다. “재흥이 많이 먹어요, 네?” “거봐~요. 안 되잖아요~. 노인말 안 들으면 혼나는 거에요. 네? 알겠죠?” 선생님 특유의 러시아식 한국어가 여전히 정겹고 푸근했다.

오랜만에 한글학교 친구들, 고려인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도 떨고 스텝이랍시고 공연 허드렛일도 조금 도왔는데, 10월의 어느 날 러시아의 나탈리아 선생님으로부터 감사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인사가 늦었지요. 이번 일로 고생이 많았어요. 고마워요. 난 사실 걱정도 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마음을 담아 도움을 주는데, 우리가 하는 일들이 더욱 더 보람 있고 더욱 더 의미가 있어야 하고 정성을 다해 더욱 더 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할까봐 고민이 된답니다.

상까지 받고 언론자료도 실렸고 공연을 통해 이제 센터 일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하니 갑자기 우리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 작고 아무 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 걸로 보이며 마음이 편하지 못 하고 잠도 안 오네요. 괜히 큰 소리만 친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주 열심히.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 뻬쩨르에서” 아…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정말.

”?”11월은 기획취재의 달.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요즘 들어 부쩍 불교에 관심이 많아진 터라 정토회 취재를 자원했다. 따스한 오미자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박석동 기획실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제까지의 취재는 정말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이건 그야말로 놀랄 노자다. 모든 자원활동가들이 무급에 자급적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단다. 더러는 아예 가정을 꾸리지 않고 살고 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새벽 발우공양을 시작으로 10시에 잠자리에 들지만, 야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를 사용할 때는 휴지 대신 장착되어 있는 샤워기를 이용해 뒷물을 해야한다!! 어찌하면 그렇게 활동할 수 있으신가요.

부처님의 뜻을 너무 열심히 따르신 나머지,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신 건가요? “욕심과 분노에 의해서가 아니라, 원력(願力)에 의해서 하면 됩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거죠. 활동가들이 수행과 일을 함께 하며 내면을 돌아보기 때문에 다른 운동가들과 달리 쉬이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후덜덜한 정토회는 마지막으로 홍보자료까지 후덜덜. 좋은 벗들, 평화재단, 에코붓다, JTS의 자료 30권 이상이 든 커다란 선물보따리까지 작별선물로 안겨 준다.
”?”기획취재 2탄, 참여연대.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미 인터뷰 한 시간 전, 뉴라이트 아저씨들께서 정문 앞에서 한바탕 시위하다 돌아가신 터라, 극대화된 ‘까칠포스’가 감돌았다. 다들 바쁘다고 하셔서 일부러 ‘압박질문’만 골라왔는데, 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이 한 개, 두 개 이어질 때마다 불꽃이 튀겼다. “그건 수구보수단체들의 전형적인 논리죠.”, “지금 질문은 어떤 의도로 물어보시는거죠?”

“전 그냥 시간이 빠듯하시다길래, 중요한 것만 뽑아온 건데요.ㅜㅜ”

어려운 말은 또 왜 이렇게 많나. GPPAC, 다이만 부대, 이중대표소송, 금융소득 종합과세 확대…녹음기 준비하길 정말 잘 했다. 4시간짜리 테이프는 어느새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내친 김에 근무여건도 꼬치꼬치 물어봤다. 보너스는요? 퇴직금은요? 출산휴가는요? 월차는요? 칼퇴근 하나요? 대부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란 것이 대충 이렇다. “야근은 밥먹듯이 해도 사회변화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잖아요.”, “그냥 사회에 좀 비판적인 생각이 많았어요.”, “원래 국제외교, 통일안보는 관심 없었어요. 선배 손에 이끌려왔는데, 게을러서 아직 안 움직이고 있죠.”

”?”“쌀님, 저 잠깐 씻고만 올게요.”

정말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어, 아침 해를 등지고 집으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한 술 뜨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침대에 털썩 누워 눈을 감았다. 웬수같은 해피리포터들x24, 나탈리아 선생님, 토마토님, 블루펜 선생님, 3일 밤을 내리 새고 계시는 ‘괴력의 쌀님’ 얼굴이 둥둥 떠올랐다.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투덜거리며 집을 나섰다.

‘적절한 혜영씨’를 필두로 하나둘 아이들이 전시실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어제 영상을 만드느라 역시 밤을 샜다는 해인이는 팬더가 돼 나타나서는 숨을 헐떡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전시실에는 다시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해피리포터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졸면서 칼질을 하다 엄지손가락 한 귀퉁이를 베어 먹고는, 바라마지 않던 잔소리쟁이 역할을 맡아 여기저기를 신나게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4시 시작 예정인 전시회 준비는 정확히 3시 55분에 완료됐다. 그저 인간의 능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환희가 화려한 텔미춤을 선보이며 깜짝쇼를 펼쳤고, 곧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박원순 변호사님과 해피시니어 단장님의 축사, 블루펜 유시주 선생님의 총평이 이어졌다. 해인이와 민애가 준비한 영상을 보면서는 모든 이들이 웃고 감탄하며 즐거워했다. 소감을 발표하던 혜영씨는 결국 울먹거리고 말았다. 또 다시 마음이 문제다.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 기어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잠기운 때문인지는 모르지겠지만, 눈을 떠보니 침대 맡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커다란 내 얼굴 위에 아이들이 이것저것 적어준 롤링페이퍼는, 용케 둘둘 말아둔 그대로 가방에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펼쳐보니, 온통 ‘고맙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미안해요’뿐이다.

이 인간들 그래도 양심은 있었구나.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인터넷 뉴스를 살펴보다가, 19회째 인권콘서트를 개최하는 민가협 기사에 눈이 갔다. 습관적으로 홈페이지를 클릭해 연혁, 소개글, 인사말부터 드래그하며 ‘기초조사’를 하고 있다. 난 정말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해피리포터활동을 연장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재흥/해피리포터]

해피시니어 프로젝트는 전문성있는 은퇴자들에게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 에 참여해 사회공익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NPO·NGO에는 은퇴자들의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토대로 기구의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희망제작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학생 시민기자단 ‘해피리포터’들이 은퇴자와 시민들에게 한국사회의 다양한 NPO·NGO 단체를 소개하는 코너가 바로 ‘해피리포트’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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