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참여연대_평화군축센터>

참여연대의 국제분야 업무는 ‘국제연대위원회’와 ‘평화군축센터’가 각각 나누어 맡고 있다. 국제위원회가 ODA(정부개발원조) 감시나 버마민주화운동 지원 등의 국제연대 활동을 주업무로 삼고 있는 반면, 평화군축센터는 외교안보정책을 모니터링하며 참여연대 본연의 역할인 ‘권력감시’에 힘을 쏟고 있다.

평화군축센터는 2002년의 급박했던 한반도 정세를 배경으로 신설된 부서다. 당시 여중생 사망사건과 소파개정운동,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해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외교안보분야에 쏠려있었다. 뿐만 아니라 12월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외교안보정책 검증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듬해에는 이라크전쟁까지 발발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2002년 준비 작업을 거쳐 2003년 평화군축센터를 설립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팀장은 북핵위기와 여중생 사망사건, 미국의 이라크 침공, 김선일씨 피살사건, 대추리 투쟁, 아프간 피랍사태 등 굵직한 외교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지난 6년을 극심한 긴장의 연속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집회와 언론인터뷰에서 늘 봐왔던 단호한 모습과 달리, 그는 긴장을 떨쳐내고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말 참여연대를 찾아, 우리 사회 ‘최후의 성역’인 외교, 안보, 통일문제를 최일선에서 감시하고 있는 평화군축센터의 생생한 활동상을 잠시 엿보았다.

한국사회의 성역, 외교안보

– 센터설립의 계기는 무엇인가?
“센터가 세계의 핵무장에 관심을 갖기도 전인 2002년에 북핵문제가 터졌다. 참여연대도 신속하게 대응해야할 필요성을 느꼈고 여기저기서 입장표명을 요구받았다. 그 활동이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북핵위기 당시 클린턴 정부가 북폭계획을 수립하는 등 국제정세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갔다. 다행히 사태가 6자회담의 틀에 편입되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기간 최대한 의견의 차이를 좁히면서 지속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2003년에는 평화여정,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와, 학계, 국회가 모여 ‘한반도 평화국민협의회’를 발족시켰다. 방미단을 꾸려 미국에 의견서를 직접 전달하는 등 북핵문제가 6자회담에 안착될 때까지 지속적인 활동을 벌였다.”

–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 참여연대는 연대기구를 만드는 것에 굉장히 조심스럽다. 사안별로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를 유지하다 끈끈한 조직력이 필요할 때만 연대기구를 구성해 활동한다. 연대기구는 만들어지면 계속 자가발전을 하며 확장되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조직관리와 유지에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든다. 여중생사망사건 범대위가 대표적이다. 사안의 성격과 시기에 맞춰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연대활동은 북한인권 문제, 제주해군기지 문제, 무력갈등 예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쉽(GPPAC), 평화활동가 워크샵 등이 있다.”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2003년 파병문제가 생기면서 발족되었다. 당시에는 정책사업, 모니터링, 국회대응, 입장발표 등을 모두 참여연대가 맡았다. 이라크보고서만 이제까지 4번에 걸쳐서 발간했다. 하지만 파병이 장기화되면서 긴장감도 떨어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파병인원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다함께’와 민중통일단체 등인데, 단체별로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다. 특히 이들은 파병문제를 한미동맹과 관련해서 풀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아프간 인질사태 때, 민중통일단체와 ‘다함께’ 등은 탈레반에 대한 비난성명 발표와 강력한 석방요구 전달을 반대했다. 미국의 불법점령이 우선이므로 먼저 미국에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상황실을 ‘다함께’가 맡고 있다. 물론 큰 갈등상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모든 회의는 참여연대 회의실을 빌려 이루어지고 있다.”

_ 많은 이들이 명분 없는 전쟁을 비난하는데도 파병연장을 찬성하는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의 대선후보 지지 논리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 우리 사회가 도덕성, 윤리보다는 이익담론에 많이 경도되어 있는 것 같다. 오랜 남북 적대관계와 한미동맹에 의존해 온 상황, IMF 경제위기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무언가 이라크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파병을 통해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것도 우리에게 실익이 돌아오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이는 한국정부가 끊임없이 보여준 제스추어 때문이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이 어렵다는 식의 이야기를 대내외적으로 공공연하게 한다. 대의명분이나 구체적인 자료는 내세우지 않으면서 말이다. 크게 잘못하고 있는 일이다.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사람들은 자이툰부대만 알고 있는데, 쿠웨이트에 파견된 ‘다이만부대’라고 있다. 이라크에 파병되지 않았다고 해서 파병동의안에 명시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파병인원 등의 제약도 덜하다. 하지만 주요업무는 쿠웨이트를 경유해 이라크로 가는 미군과 한국군의 수송업무를 맡고 있다. 명백한 불법파견인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이전 문제 때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이 달랑 한 건이었다. 그러한 무성의함이 결국 대추리 사태를 불러왔다. 아프간 인질사태 때도 정부와 국민이 선교단체의 부주의만 성토했다. 하지만 아프간 주변정세와 관련해서 아직 단 한 건의 입장과 분석도 내놓고 있지 않는 정부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군은 아프간 평화재건하러 갔다고 담화문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파병안의 제목 자체가 ‘평화재건’이 아니라 ‘동맹국의 대테러전쟁 지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주임무는 아프간을 돕는 게 아니라, 미군기지 안에서 활주로를 닦고 병사들을 치료하는 것뿐인 거다. 흔히들 정치와 법조계를 성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진짜 성역은 통일, 외교, 안보 분야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지대화

– 평택미군기지 이전협상이 거의 마무리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택에 우리 측이 이전을 요구한 용산기지만 들어선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는 미국 측이 이전을 요구한 미2사단이 함께 이전되고, 훨씬 넓은 부지를 차지하게 된다. 2사단의 이전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가 이전을 요구한 용산기지가 들어서기 때문에 이전비용을 다 물 수밖에 없다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기지 안에는 2사단과 용산기지가 공유하게 될 시설도 많은데 자연히 이것도 한국부담이다. 이런 정보들은 미국자료를 뒤져보면 다 나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인하고 발뺌하다가 문제가 드러나면 ‘한미동맹을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논리만 내세운다.”

– 분산되어 있는 기지들을 한 곳으로 모으면 오히려 나은 것 아닌가?
“기지 이전은 우리나라가 첫 번째 사례다. 기지재배치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가 우선 논의되어야 한다. 일본의 사례와 자주 비교하는데, 우리는 기지이전에 이미 합의해놓고 목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과정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2003년 기지이전 협상시작 당시에 미국은 공식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내세웠는데도, 한국정부는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그리고는 2006년 ‘전략적 유연성 합의’ 결과를 내놓았다. 평택은 흔히 말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항구를 끼고 있으며, 바로 옆에 오산공군기지가 있다. 군산, 제주와 함께 ‘서해안 벨트’를 형성해 중국을 포위하는데 쓰려는 미국의 이익에 딱 맞는 곳이다. 게다가 이전비용까지 한국이 대준다고 나서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주한미군은 이제 한반도 평화유지가 아니라, 미국의 중국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군대가 된다.

해외에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는 곳은 일본, 독일 정도가 있다. 모두 미국이 전쟁 후 점령해 주둔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와 단순비교가 어렵다. 일본은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발판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대를 보유하려고 벼르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들 나라의 방위분담금 총액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훨씬 많다는 주장을 편다. GDP(국민총소득)대비 방위분담금 비율을 따져보면 우리나라의 부담비율이 가장 큰데도 말이다.”
”?”- 요즘 젊은 세대는 북한에 대해 이질감을 많이 느낄 뿐 아니라, 통일에 대한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일단 북한에게 반가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 이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차이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당연한 현상이라고 이해된다. ‘군사왕조’라고까지 표현되는 북한의 체제를 실제로 접한 남북교류 당사자들도 굉장히 낯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은 과연 우리와 공존가능한 체제인가’ 라는 의문을 한 번 쯤 품어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맥락을 조금 들여다보면 그 사회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이중잣대 같은 것을 생각할 때 북한이 느끼는 공포감, 고립감이 상당할 것이라고 본다. 북한도 미국이 이스라엘과 이란을 각각 어떻게 대하는지를 볼 것 아닌가.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이 한 번 벌어질 때마다 북한은 늘 비상전시체제로 돌아선다.

북한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운명공동체다. 분단 상황에서 그냥 살아가면 어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분단 때문에 생긴 적대관계는 두 나라에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언제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아직은 통일방법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할 시기이다. 통일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 일본, 중국 등 주변강대국 감시활동은?
“전면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과는 동북아 비핵지대화 이야기는 꾸준히 해왔다. 비핵화는 단순히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비핵지대화는 핵물질의 반입, 이동, 배치까지를 금지한다는 진일보한 개념이다. 북한의 핵을 폐기한다고 해도 미국이 핵우산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반발이 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진 플루토늄이 몇십 킬로그램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지난 해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양은 43톤을 넘어섰다.
북핵폐기를 넘어 한반도 비핵지대화로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연대회의 같은 곳에 가면 꼭 의견을 나눈다. 미국과 일본의 핵우산을 함께 한다는 것은 위기상황에서 ‘핵을 사용하겠다’는 아주 무서운 이야기다. 핵우산을 폐기해야만 한다.”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 평화운동

– 다루는 사안들이 전문적이고 복잡한데, 자료는 어떻게 확보하나?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오던 사이트들이 있다. 한미동맹재편과 관련해서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 특히 군사문제, 동맹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정부의 자료는 전무하다. 주로 미국 국방부, 의회, 회계감사국 자료 등을 일일이 뒤진다. 현재 1년이 안 된 간사 두 명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이태호 정책실장이 함께 있었는데, 평택문제 등이 있어서 밤샘을 거의 밥 먹듯이 했다. 올해는 삼성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국회에서 파병문제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이다.”

–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나?
“2월에 ‘평화와 눈맞추다’, 3월부터 ‘시민안보를 말하다’는 시민토론의 자리, 영화 함께보기, 20대 대학생을 위한 ‘평화학교’ 등 10여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토론회 등에서는 생각보다 논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평화학교는 굉장히 반응이 좋아 올해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참여연대가 권력감시기관이다 보니 정책모니터링 위주로 활동을 하는데, 다른 운동과 달리 평화운동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노력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 부분을 아직 잘 잡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평화단체들이 규모가 작고, 평화운동이 긴 호흡을 요구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권력감시와 대중운동을 함께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방안을 고민해 내년에 시도해 보겠다.”

– 평화운동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운동가에게 신념은 필요하지만, 그런 것이 너무 강하면 좌절하기 쉬운 것 같다. 평화운동은 결과만 따지고 보면 모두 실패한 운동이다. 우리가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들이다. 그것이 과실로 이어지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세월이 걸린다.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성실함, 인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조급한 마음으로 무엇을 해내야겠다고 임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 하다. 평화운동은 특히나 수년간 활동을 해야 어느 정도 혜안이 생기는 분야이다. 장기적으로 봐야한다.

2002년과 2003년을 지나면서 너무나 눈에 보이는 불의와 성역을 마주하게 되면서 분노를 많이 느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힘이 된 것 같다. 흔히 평화운동가들이 평화롭지 않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참여연대에 있는 한 평화롭기는 힘들 것 같다. 김선일씨 피살, 파병문제, 평택문제처럼 급박한 사안들이 많아 항상 긴장을 안고 살아간다. 활동가 스스로 끊임없이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글/ 이재흥, 이효정 _ 해피리포터, 사진제공/ 참여연대]

참여연대_평화구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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