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새벽녘, 이름도 희한한 태풍, 곤파스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거리로 나서니 키 큰 가로수가 길게 누워있다.
눈이 의심스러울 만치 얕은 뿌리를 드러낸 채….
 
바람이 멎고 여전히 비가 뿌린다. 습도가 높아 내 몸에서도 사람들 얼굴에서도 땀이 흐른다.
대학로, 소극장 간판을 읽으며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을 찾아갔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널찍한 공간에 가득한 책, 책 내음이 묻어나온다.
 
”사용자김완복 선생님(65, 행설아 6기 수료)이 서가에서 책 정리를 하시다가 환한 얼굴로 맞아주신다.
 
“아름다운 헌책방 혜화점은 여섯 번째 서가입니다. 서울에 다섯 곳, 지방에는 광주에 있어요. 여기는 원래 한정식 식당이었어요. 인테리어도 그대로 이용하고 책장만 새로 짜넣었지요. 헌 책방 역할을 넘어서 책 특화매장으로 자리 잡으려고 하고요.”
 
기증자와 가게가 윈윈
 
초롱초롱한 눈빛의 박희진 매니저(32)에게 책 특화매장이 무엇인지 물었다.
 
“여기는 테마를 지닌 책방입니다. 고서 코너, 80년대 이전 코너, 출판사 추천 코너 등을 갖추었어요. 또 몇몇 출판사에선 인터넷으로 책을 한 권 팔면, 한 권을 기증을 해줍니다. 저희가 계속 혜택만 입기보다 출판사에도 득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출판사를 대표하는 책을 보내주면 팸플릿을 만들어 홍보하고 한 달간 전시한 후 판매하는 식으로 윈윈 프로그램을 계속 연구하고 있지요.”
 
혜화점은 지난 6월 16일에 개장했다. 김완복 선생님은 5월 말경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서가를 정리하고 고서에 대해 설명한다.
 
“그동안 주로 병원에서 일하다가 가게 일은 처음 합니다.  같이 일하는 젊은 친구들한테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고, 나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이익이 발생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참했어요. 물론, 아름다운가게 운동과 철학에 공유했기에 선뜻 나섰지요.”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지 궁금해하자, 김 선생님은 하는 일도 거의 없다며 연신 손사래를 치고, 박희진씨가 거든다.
 
“기증 받은 책을 나르고 가격을 책정해야거든요. 고서목록과 서지 작업도 해야 하고요. 콜렉터들이 수시로 찾으니 적정가격을 서둘러 정해야하는데, 함께 토론하고 의논하죠. 저희가 일머리가 생기기 전이라 일처리 방식도 조언 받고요. 옛날 책 소개도 해주시고, 책 이야기, 동네 이야기 등 저희에겐 큰 힘이 됩니다.”
 
”사용자김 선생님은 이제 3개월 접어든 가게 생활에서 어떻게 자리를 찾을 것인가가 고민이었다고 덧붙인다.
 
“사람들이 여기서 저렴하게 구입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쓰니까 더 좋고요. 여기서 일하면서 한 책의 초판 발행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거든요. 또 근래 구하기 힘든 6, 70년대 연구서나 도록도 많이 찾아요. 자칫하면 사라질 헌 책들이 누군가에 의해 빛을 보는 거죠.”
 
책 한 권에 기부자의 마음과 삶이 깃들어 있다며, 기부자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는 김완복 선생님. 해맑게 빛나는 얼굴에 삶의 철학이 언뜻 내비친다. 사실 김완복 선생님은 서가보다는 호스피스 일을 오래 하셨다. 호스피스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낯선 시절부터….
 
“누구나 죽음을 맞습니다.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에요. 호스피스는 이 생에서 저 생으로 가는 여행의 마지막 동반자입니다.  저 역시 임종을 앞둔 분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김 선생님은 2005년 5월 퇴직(한국자산관리공사 이사, KP&G 고문)하면서 곧장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다. 지금껏 크리스천으로 굴곡 없이 살았으니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교육 후, 용인 샘물 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 활동을 시작하였다.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 유언장과 편지를 작성하게 하고 삶을 정리하도록 돕는 일이다. 어느 날 밤엔 네 분이나 소천하셨다고 한다.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며 손을 잡고 ….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환자와 가족들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이랴. 한 두 번 만나서 마음이 전달되지 않기에 옆에서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고 마음을 나누어야 환자와 가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이다.
   
”사용자   
뒤보다 입에서 나오는 게…  
 
호스피스 역할은 피 상담자와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귀띔한다. 눈높이를 맞추어 말상대하고 손발을 마사지하면서 가족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건만, 현실적으로 남자 호스피스가 많이 부족하다.
 
비위가 약한 나는 냄새가 역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성경에 뒤에서 나오는 것보다 입에서 나오는 게 더 더럽다고 했어요.  냄새가 심해서 피하고 싶은 환자에게 먼저 갑니다. 정면 돌파랄까요. 사회에서 일할 때와 마찬가지에요. 실제로 익숙해지면 기쁘게 일할 수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1박 2일로 일하다가 허리가 아파 호스피스 활동을 잠시 접고 현재는 아산병원 상담원, 중계요양원 봉사원으로 활동한다. 1년 동안 허리 강화운동으로 몸이 살아났으니 다시 호스피스 활동하러 용인으로 달려갈 참이다.
 
자원활동 외에 무슨 취미를 갖고 계실까.
 
“요즘 드럼을 배워요. 1년 동안 배웠어요. 악보 없이 즉흥 연주를 하고 싶은데… 아직 멀었지만요,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하하.”
 
샘물병원 한 구석에 아무도 치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는 드럼을 보자 퍼뜩 떠올랐단다. ‘드럼을 배워 이곳에서 연주하자’고.
 
10월부터 다시 호스피스 활동을 재개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사람, 강력한 태풍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을 사람, 그 얼굴에 맑은 기운이 흐른다.
 
글ㆍ사진_ 정인숙 (해피리포터ㆍ행복설계카데미 5기)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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