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시사IN 기자들이 희망제작소가 제안한 천개의 직업 중 일부를 직접 체험하고 작성한 기사를 시사IN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동시에 연재합니다. 본 연재기사는 격주로 10회에 걸쳐 소개됩니다.  

체험, 1000개의 직업 (3) 재활용 디자인   

‘정치인 한명숙’이 100명은 족히 되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는 아까부터 눈이 마주쳤다. 한 낙선자는 속도 모르고 미소를 날린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빌라 지하. 철지난 6·2 지방선거 현수막 수백 장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지난 흔적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 체험을 위해 2월8일 재활용품으로 새 물건을 만드는 ‘터치포굿’을 찾았다. 첫 업무로 창고 정리를 맡았다. 사무실 건너편 30만원짜리 월세 창고에는 터치포굿의 밑천인 현수막을 비롯해, 지하철 광고판과 폐타이어 등 각종 재활용품이 보관되어 있다. 책상 정리도 분기별로 하는 기자에게는 막막한 과제였다. 현수막으로 만든 토시와 몸뻬(일바지), 마스크가 주어졌다. 먼지 대비용이었다.

”사용자   
현수막을 직접 수거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사업 초기에는 일일이 찾아 나섰다. 요즘은 협력처에서 배달을 해준다. 곰팡이가 슨 것은 잘라서 버리고 세탁할 것을 접어 분류했다. 5~6m 길이의 현수막이 뭉텅이로 뒤섞였다. 원래는 불구덩이로 직행해 폐기 처분되었을 운명. 한 장씩 빼내는 데도 힘이 들었다. 밥을 많이 먹어두라던 박미현 대표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때와 곰팡이가 구분이 안 가 속도는 더뎠다.

서너 시간 작업 끝에 세탁할 현수막을 분류했다. 날이 따뜻할 때는 사무실 옆 화장실에서 직접 빨고 너는 작업까지 했지만 겨울은 예외다. 업체에 맡겨 친환경 세제로 세탁한다. “겨울에 오셔서 다행이네요.” 직원 이준희씨(30)가 말했다. 여름에 창고는 30℃ 이상의 한증막이라고 한다.

터치포굿의 대표 상품은 현수막 가방이다. 버려진 현수막과 광고판으로 숄더·크로스백을 비롯해 파우치, 명함지갑 등을 제작한다. 직원 10명 중 제작 담당은 1명. 사무실 3.31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 재봉틀 두 개가 놓여 있다. 디자이너 하명희씨(30)가 기자에게 가방 디자인 미션을 주었다. 필요한 가방을 제작해보는 일이다. 누구라도 제품 디자인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다. 

무조건 커야 한다. 넷북도 넣고 책 한 권은 기본, 취재수첩과 볼펜이 들어가야 하니까 수납공간도 많았으면 좋겠다. 앞뒤 양옆 포켓이 필요하겠다. 늘어나는 주문에 그림 속 가방이 크고 투박해져갔다. 하씨가 한숨을 쉬었다. “현수막은 일반 천이랑 달라서, 그린 대로 제품을 생산하려면 비용이 너무 들어요.” 현수막이나 지하철 광고판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데서 나온 판단착오였다. 길이와 나비가 일정한 일반 천과 달리 광고는 크기가 제각각이다. 일일이 맞는 걸 찾아 쓰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사용자   
<시사IN> 편집국 이면지도 재활용하기로

결국 하씨의 샘플 작업을 지켜보는 걸로 대신했다. 개업식 때 자주 볼 수 있는 바람공기 인형으로 가방을 제작 중이었다. 현수막은 염료가 묻어나 천의 안감만 사용하지만, 바람공기 인형은 겉면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가방 끈으로는 남은 실을 엮어 만든 천을 사용했다. 금세 채소 그림이 새겨졌던 바람공기 인형이 가방으로 변신했다. 반전의 재미가 있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제품 회의가 있었다. 출시를 앞둔 신상품의 가격, 판매 방식, 홍보 방안, 디자인 수정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번 상품은 A4용지 이면지를 활용해 만든 메모지다. A4 한 장으로 6~8개 메모지가 나올 수 있어 재활용 정도가 높다. 회사에서 쓰이는 이면지라 개인 정보나 보안과도 관련이 있어 분류가 문제였다. 전공(?)을 살려 언론사를 활용할 수 있는 홍보 방안을 냈다. 이면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기에 <시사IN> 편집국의 이면지를 사수해보겠다고 덜컥 약속해버렸다.

배달도 내 몫이다. 일반 상품은 택배로 부치지만 개별적으로 의뢰가 들어온 상품은 직접 배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업무용 차가 없었다. 현수막 바구니에 담아 버스를 타고 날랐다. 목적지는 서울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 지방선거에 쓰였던 현수막으로 당사에서 쓸 재활용통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던 것. 장세명 진보신당 대외협력실 국장은 선거철에 쓰고 버려지는 현수막이 엄청나 이를 어떻게 재활용할지 고심하다 의뢰했다고 말한다. 만족해하는 ‘고객’의 표정에 배달한 보람을 느꼈다. 

돌아오자마자 500개 파우치의 포장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스펀지를 넣고 띠지를 두르는 단순 작업이다. 물량이 많을 때는 전 직원이 달려든다. 작업 중에도 교육팀에서 새로 개발하는 어린이 환경 교육 프로그램의 작명 회의가 이어졌다.

현수막 정리부터 제작·포장·배달까지 1박2일 동안 알찬 체험을 마치고 나니, 품이 많이 드는 제조업이 왜 사양 산업인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재활용품과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는 건 업무와 비용 면에서 비효율의 극치다. 하지만 그게 터치포굿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단순한 재활용(리사이클)에서 나아가 가치 있는 쓸모를 창조하는 ‘업사이클’을 지향한다. 느리지만,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직업으로 꼽히는 이유였다.

이 직업은
재활용 디자인에 대한 국내외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아름다운 가게의 ‘에코파티메아리’, 커피 자루 등으로 옷을 만드는 ‘오르그닷’ 등 국내 업체를 비롯해 트럭에 주로 쓰는 포장 덮개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의 프라이탁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일상 생활에서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중요하다.

어떻게 시작할까?
어떤 업무를 하는지 체험해보려는 이들에겐 자원활동을 권한다. ‘터치포굿’과 ‘에코파티메아리’에서 활동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제품 제작·판매뿐 아니라 환경 교육, 기업의 그린 컨설팅 등 분야가 다양하다.

시사IN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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