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달라지면 우리 일상이 달라진다

<박원순의 희망탐사 5>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지역을 돌면서 수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지역에서, 지역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만날 이들을 정하는 데는 특별한 노하우가 따로 없다. 추천을 받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물고기를 잡을 때 둑을 막고 물을 퍼내는 식으로 인터뷰할 기관을 먼저 선정하고 그 중에서 대상자를 찾기도 한다. 김해시청 관계자들은 이렇게 만난 귀한 인터뷰 손님이었다. 김해에 가기 전에 지역정보를 찾기 위해 김해시청 홈페이지를 찾았는데, 뭔가 달랐다. 이름 낯선 부서들과 좋은 콘텐츠들이 있었으며 생생함이 묻어났다. 김해시청을 특별하게 만드는 다른 매력들, 그 매력은 나를 시청으로 이끌었다.

김해시청을 찾아서도 예정치 않은 인터뷰들과 작은 놀라움들이 이어졌다. 자전거 도로 담당자와 투자유치 담당자를 만났다가 도시디자인과와 문화예술과와 즉석 미팅을 했다. 그리고 예정에 없던 나의 발걸음은 김해시의 송은복 전 시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인터뷰가 밤 9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활기찬 김해시청은 불 꺼질 줄을 몰랐다. 사무실 불빛 가득한 김해시청에 그 생생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밤 늦도록 불 켜진 시청의 생동감을 전한다.

김해, 자전거와 동거에 들어가다

김해시는 자전거가 친해졌다.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는 대중교통의 이용확대와 더불어 자전거와 같은 친환경 교통수단의 활성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간 결과다.

지난 해 11월 김해시청을 찾아 조운용 도로과장과 이종철 건설과장, 박창근 도시도로담당과 함께 김해시와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갖가지 말들은 하나같이 자전거 활성화에 대한 결의를 담고 있었고, 자전거라는 친환경 교통수단에 대한 애정이 한껏 묻어났다.

김해시는 2차선 도로 등을 제외하고 총 115개 노선에 95km의 자전거 노선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미 40개 노선에 40km가 설치됐다. 앞으로 75개 노선 55km에 96억 원을 들여 2010년까지 4개년 계획으로 완성할 계획이다.

김해시의 자전거에 대한 애정은 오래된 이야기다. 조운용 과장은 “김해시의 자전거 보유대수가 8만2290대입니다. 보유율은 18.58%가 되고 수송 부담율은 5.82%가 되고요. 전국으로 보면 3%대인데 수송 분담률을 높이려 합니다. 동호회가 3개에 110명이 활동 중이죠”라고 설명한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외우기도 어려울 것 같은 숫자들이 자전거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_1C|1263066530.jpg|width=”488″ height=”366″ alt=”?”|▲박원순 변호사가 김해시청 도로과에서 이종철 과장, 조운용 과장, 박종근 담당과 자전거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희망제작소 _##]자전거조례가 만들어진다

자전거를 다시 교통수단의 중심으로 만드는 일은 도로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에 따른 시설정비,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편의서비스, 각종 지원책으로 구성되는 ‘자전거 관련 조례’가 만들어지면 자전거 활성화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김해시는 자전거 관련 조례제정을 오는 6월까지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그 주요내용에는 “자전거 이용시설물 정비관리에 관한 사항, 자전거 마일리지 운영, 무단방치 자전거 처분 및 재활용, 자전거 무상수리의 날 운영, 자전거동호회에 대한 지원, 자전거교실운영, 실버용 양심자전거 운영 등이 포함될 것”이라는 게 박창근 담당의 설명이다.

흔히 변화를 두려워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는 거리가 멀 것 같다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뒤로 하고 김해시의 공무원들은 자전거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었다.

마일리지 운영은 연간 몇 km 이상을 탄 이들에게 상품권이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우선 시공무원을 상대로 연간 300-500km를 탄 사람들에게 5만 원 정도의 상품권을 줄 계획이란다. 자전거 무상수리의 날은 분기별로 한 번씩 열 계획인데 대당 1만 원 정도로 계상하고 있다. 1만 원 이상 수리하는 경우는 고민 중이다.

자전거 전용공원도 조성할 예정인데, BMX경기장, 자전거로 장애물경기장 등이 들어선다. 2008년 착공해서 완공할 예정이다. 이종철 과장은 “경전철 역세권 통행로를 만들 계획”이라며 “이미 경전철 역사가 11개 만들어지는데 그와 연계해서 인근 마을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게 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있어 자전거 도시 ‘김해시’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시민참여가 중요하다

김해시를 저전거 도시로 만드는 일에는 시에서 활동 중인 자전거 동호회가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누구보다 자전거를 많이 타고 사랑하는 그들이 자전거 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점을 콕콕 집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철 과장도 자전거 동호회에 참여하고 있는, 유명한 자전거 전도사다. 이종철 과장은 “김해시의 자전거 동호회 가운데 ‘김해잔차(자전차의 줄인 말)사랑’이 있는데 나도 회원이예요. 매주 자전거를 타고 1년에 5-6회 정도 전국을 돌면서 투어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김해잔차’에는 이 과장 외에도 시청직원들이 50여 명 가량이나 참여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 자전거를 타며 느낀 점들을 정책으로 승화시키고 있고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자전거 도시를 꿈꾸는 김해시, 공무원들이 솔선수범이 되어 먼저 자동차에서 자전거로 옮기고 있다. 아직 시청광장에는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더욱 많지만,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대기오염을 일으키고 교통난, 주차난을 유발하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대안임을 틀림없다. 자동차에서 자전거로의 새로운 흐름의 변화, 달라질 김해시가 눈에 선히 그려진다.

아름다운 김해시, 디자인도 남다르게

김해시청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도시디자인과’다. 시청에 도시디자인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 공공디자인에 주목하고 있는 김해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자전거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디자인과를 찾아갔다. 도시디자인과는 전국 최초로 김해시에 설치됐다고 한다.

김해시 도시디자인과 천정희 과장은 “도시디자인과에서는 전체 도시경관을 관리하는데 기존의 공장에 나무를 심는 등의 조경 사업을 하거나 주택지의 가로를 정비하는 방식의 친환경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에는 모든 기반시설 설치에 앞서 이 과를 거쳐 사전 논의토록 되어 있다. 교량이나 도로, 가로등, 쓰레기통조차 사전심사를 한다. 반듯반듯 줄을 긋는 도로보다는 곡선의 친환경적인 도로를 건설하려는 시선, 아동보행 전용도로에 대한 배려 등은 김해시에만 국한시키기에는 아깝기 그지없다.

그러면, 김해시가 전국 최초로 도시디자인과를 설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해시 송은복 전 시장이 재직하던 지난 2000년 김해를 살기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고 심미적인 여러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도시디자인과를 설치했다”는 게 천 과장의 답변이다.

이렇듯 인식의 전환으로 만들어진 김해시의 도시디자인과에는 인식의 전환을 몸소 실천하는 공무원도 있다. 박사이자 6급 공무원이기도 한 김철권 씨가 그 장본인이다. 도시디자인과에는 김 박사를 포함해 두 명의 박사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둘 다 3년이나 근무했으니 이젠 공무원이라는 명칭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그들이다.
[##_1C|1138868829.jpg|width=”428″ height=”321″ alt=”?”|▲ 김해시청 도시디자인과에서 천정희 과장과 김철관 박사가 김해시의 도시경관디자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_##]부산 동아대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와세다 대학에서 도시공간계획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철권 씨는 와세다대학과 동의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김해시에 들어왔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윤명숙 박사로 환경디자인 분야를 전공한 이로 도시시설물을 담당한다. 김철권 박사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힘을 보탠다면 일본 치바대학에서 석· 박사를 받은 윤명숙 박사는 그 안의 세부 디자인에 전문가의 시선을 불어넣는다.

김해시의 모든 시설물이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전문적 도움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그들의 업무량은 폭발적이다. 공무원계에 입성한 지 3년이지만 아직 행정적 경험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상당 부분 부서 간 입장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김 박사는 그래도 일이 즐겁다.

“하나의 도시를 새롭게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도시공간을 전공했던 저로서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죠. 배움을 현실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만한 대우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무원 월급을 알고 들어왔고 아직 나이도 어려 생활에 불편함이 없고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김해시의 새로운 시도에는 이를 배우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줄서게 만들었다. 영호남의 장벽을 넘어 순천시 공무원이 다녀갔고 구미시장을 하다가 경북지사가 된 김광용 지사가 직접 3선 시장을 하면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이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라며 특별히 부탁을 하며 공무원들과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서울로만 향하는 지금, 서울시에서도 관련 자료를 부탁하는 전화가 왔다. 김해시의 소문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전해져 후쿠오카 큐슈산업대학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단다.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작은 아이디어, 작은 시도,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겨줄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한지 모른다. 공무원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누구는 최고의 직장으로 공무원을 뽑고, 또 누구는 나태한 직업으로 공무원을 뽑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잘릴 걱정 없고, 일도 많지 않다는 것은 공무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됐다.

서울시에서 촉발된 근무태만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은 확대될 조짐이라지만, 김해시에서는 일본 유명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이 6급 공무원으로 일 하고 있으며, 더욱이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야근을 한다.

달라지는 정부, 달라지는 공무원들은 시민의 일상을 달라지게 한다. 김해시가 바뀐 것처럼 그러한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전국 곳곳에 퍼지길 기대해본다.

“문화의 세기에 맞는 문화행정을 편 시장”
– 김해시 송은복 전 시장으로부터 듣는다.
[##_1L|1030920969.jpg|width=”280″ height=”374″ alt=”?”|▲ 송은복 전 김해시장은 ‘더 나은 김해시’, ‘더 나은 대한민국’에 아직도 목마르다. ⓒ희망제작소 _##] 김해시청을 찾아 인터뷰를 하면서 송은복 전 시장의 이름을 곧잘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그가 다른 행정을 펴게 된 배경이나 그 과정에 대해서 말이다.

작은 식당을 들어서는 회색빛의 양복을 입은 그는 앙다문 입 사이로 꽤나 고집스러움이 흘러나왔다. 몇 시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행정전문가인 그가 상당한 카리스마의 공무원 트레이너임을 알 수 있었다.

행정전문가로 몇 십 년, 그만큼 공무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공무원을 전문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이다.

“민선시장이 되기 전에 경기도에서 군수를 2번, 경남에서 2번 임명직을 거치면서, 인사가 만사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고 공무원 인사를 철저히 하고 그들을 장악하는 데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시나 첫 인사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이야기의 중심은 공무원으로 돌아간다. 공무원 조직에 자발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스스로에게 철저한 방법이 최고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떳떳했을 때 아랫사람에게도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그다.

“고향에서 살게 될 텐데 욕먹는 시장이 될 수는 없잖아요. 내 이름을 꺼낼 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3선 시장이 됐고 스스로 떳떳했기에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줄 수 있도록 유도할 수도 있었지요.”

도시디자인과를 설치하고 공공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문화도시로 거듭난 것도 송은복 전 시장의 재임시기였다. ‘문화도시.’ 좋은 캐츠프레이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흔하기도 하다. 왜 김해시는 문화도시를 내세웠는가? 아니면 내세울 수밖에 없었는가?

송 전 시장은 내세울 게 없는 김해시의 안타까운 사연을 먼저 전했다.

“음식도 내세울 게 없고 특산물은 진영단감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부산과 창원을 끼고 있어 기업 하기에는 좋은 도시죠. 하지만 공장만 들어오면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생계를 위해 공장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을 위해 교육과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연을 보거나 교육 때문에 인근 부산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김해시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문화도시, 관광도시, 교육도시 김해’라는 캐츠프레이즈를 그의 두 번째 임기 때부터 주창했다.

이에 김수로왕 재현사업을 중심으로 한 가야문화복원사업을 시작했다. 나아가 일반인들이 김수로왕이나 허왕후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최인호 작가의 ‘제4의 제국’이다.

가야문화의 중심지라면 가야역사박물관 하나 쯤은 당연히 요구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김해국립박물관이다. 건축도자박물관인 클레이아크미술관도 세계 최초로 만들어졌다.

“도자기 하면 이천, 강진의 청자 등이 유명합니다. 김해는 생활도자기인 분청도자기가 유명해요. 도자기 축제를 벌이려고 했으나 차별화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세계에 없는 세계도자박물관이에요.”

김해시의 3선시장, 민선이 되기 전 임명직으로 몇 번의 군수 등을 역임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다.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람의 힘이기 때문이다.

“카네기홀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는 김해문화의 전당의 김승업 사장은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부장, 세종문화회관 관리본부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에게 찾아가 부산, 창원 등 인근 지역주민들이 김해에 와서 공연을 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도시디자인과에 전문가가 들어온 것도 일반 공무원이 아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에요. 경쟁력 있는 사람을 기르거나 영입하는 것은 모든 성공의 기반이 된다는 게 저의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몇 번을 강조해도 좋을 사람의 중요성, 송 전 시장 자신이 그 사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이기도 하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