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사용자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기획기사의 2013년도 두 번째 주제는 주민운동 교육훈련입니다.

주민 스스로 행동하고 지역을 변화시켜 나가는 조직적인 운동인 주민운동의 중심에 있는 교육훈련은 주민이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성장하도록 촉진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민조직가가 주민의 조직화 가능성을 찾아 활동하도록 촉진하기도 합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주민운동교육이 무엇인지 그 역사와 내용을 알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민운동교육 사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학습 초점] 스스로 말하게 하라 (2) 공부방에서 꿈꾸는 주민공동체
 
7, 80년대 TV 연속극에 자주 등장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상징은 판자촌, 달동네였다. 동네 길가에는 언제나 포장마차와 야채, 생선을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있고, 주변을 맴돌며 아저씨, 아줌마들의 입담이 오고 갔다.

지금 우리 동네는 아파트 주민이 이미 60% 이상을 넘어섰고, 여전히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조만간 아파트 주민이 70% 이상이 될 것이다. 4차선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정비된 길가의 상가들은 샹들리에 같은 사인(sign) 광고가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번쩍거리곤 한다.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 말할 수 있다.

옛날부터 가난한 사람들은 3무로 통했다. 돈 없고, 빽 없고, 가방 끈이 짧다는 얘기다. 몸뚱이 하나로 버티며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에겐 늘 빈 집 근처 골목이나 언덕배기 공터가 유일한 놀이터이고 쉼터이다.

대학생, 청년, 박사가 취업 걱정에 시달리는 지금의 모습은 과거와 매우 대조되는 실업, 빈곤의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이 모이는 곳은 학원과 PC방이 가장 흔한 장소이고, 청년들은 자신을 사회에 내어놓기 위한 ‘스펙(specification)’ 쌓기에 여념이 없다.

산동네 속 꿈과 희망의 공간

어린 시절 쓰레기 더미에서 주은 대학요강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꿈과 비전이 될 수 있듯이, 리어카 테이프 더미 사이로 흘러나온 음악이 때론 한 사람의 희망을 길어 올리게도 한다. 아마 그런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사회 변화를 위한 빈민(주민) 운동의 시작이었을까?

1988년부터 금호동, 행당동 산동네에 공부방이 생겼다. 희망의집, 푸른하늘, 행당배움터, 민들레 공부방 그리고 오순도순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대학생 또는 졸업생이 공부방에 살면서 실무책임을 맡았고, 이모, 삼촌이라 불리는 자원활동가들이 공부방 살림을 꾸렸다.  당시 공부방 교사는 동네의 새로운 식구가 되어 삶을 함께 살았던 것이다.

 * 공부방은 빈곤지역(무허가, 달동네, 공단, 농어촌, 광산)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빈곤가정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교육, 문화, 학습지도, 심성개발, 급식뿐만 아니라 아동, 가족의 문제를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 예방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지역사회 아동기관이다. (공부방-지역아동센터 매뉴얼, 2003)

빈곤가정이 밀집한 동네의 한복판에서 공부방을 만들고, 그곳에 살면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참교육의 열정을 사르던 곳. 그곳은 아동,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의 공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공부방은 동네 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을 개선해 나아가는 중심지(센터) 역할을 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숙제를 하고, 글쓰기, 미술, 책 읽기, 표현하기, 음악, 바깥놀이, 공동체 활동 등을 하면서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방학 캠프, 자모회, 교사회, 부서모임, 지역활동가협의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어머니학교를 열어서 한글교실, 연극, 문화, 취미교실을 운영하고, 선거철엔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의 구심지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재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공부방은 주민들의 주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불씨가 되었다.

공부방, ‘주민운동’의 불씨가 되다

당시 지역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재개발이었다. 서울의 산동네들이 대규모로 철거되고 아파트를 짓기 시작해서, 가난한 주민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멀리 이사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집은 곧 ‘삶’의 자리이다. 산동네 주민들은 집에 모여서 일자리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일을 나누는 일이 자주 있다. 또한 이웃의 아이들을 서로 봐주기도 하는 돌봄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치 전통적인 계(契)와도 같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는 화합과 교류의 마당인 셈이다.

공부방의 활동가들은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지역의 최대 문제인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 주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와 문제에 관해 정확하게 알리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모으는 구심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주민들 스스로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주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려운 투쟁을 감수하게 되었다. 철거폭력배, 이를 방조하는 경찰의 공권력에 맞서 재개발의 문제를 사회에 호소하며 대안을 만들고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자기 삶의 환경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로 성장하였다. 어떤 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도 가난하게 살 권리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삶의 공동체, 협동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몇 달 동안 학습과 활동을 병행하였다. 경제협동, 생산협동, 생활협동, 사회복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함께 모여 학습하고 교육을 받으며 마을의 미래를 준비해 나갔다. 교육과 모임은 동네의 일상처럼 여겨졌고, 언제나 무언가를 시작할 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힘을 키우는 희망의 불씨 역할을 하였다. 스스로 그리고 함께 생각하는 힘, 그것이 확실하게 이뤄지는 교육 현장이었다.

아파트 완공까지 이주단지에서 4년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모임과 협동교육을 통해 신용협동조합, 생산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이때가 1997년, IMF 발생 직전이었다. 이후 어느덧 모두가 바라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였고, 주민들은 각자의 생활전선으로 돌아갔다. 누적된 가정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다들 맞벌이에 여념이 없었다. 새롭게 안정된 아파트 생활은 각자의 독립성, 개별성을 보장하는데 좋은 여건이 되었다. 하지만 동네는 너무나 변했다.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엔 다른 지역에서 온 주민들이 함께 이웃이 되었지만, 서로의 만남과 교류를 제공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아파트의 출입문은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리하는 구조와 분위기를 갖고 있다. 담장 너머의 건축 양식을 통해 서로를 엿보며 자연스럽게 소통하던 공동체 문화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제 가난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모두가 잘 살게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아픈지, 굶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아파트의 은폐된 구조 속에서, 2012년 어느 임대아파트에서는 100일 동안 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서 단지 자산 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작동된 재개발 아파트는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 주민의 원인 없는 갈등과 반목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같은 학급의 아이들 간에도 평수와 아파트 종류에 따라 친구 사이가 갈라지는 일도 벌어졌다. 영구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부유한 아파트에 사는 모범생(?) 아이들이 따로 어울리는 갈등을 빗대는 ‘영구와 범생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주민운동은 평생교육과 같다

점차 마을에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마을과 소비형태가 변하였고, 주민의 구성원이 변하였다. 주민 협동 공동체를 위한 활동은 급격히 침체되었다. 하지만 소수의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월례모임은 계속 이어졌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한편으론 인내심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힘든 과정 속에서 새로운 교육이 생겨났다. 삶 속에서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따로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과 희망이 되었다.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력을 얻기 위해 일본의 한 동네와 주민운동 교류회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얘기 나누는 주제와 생각이 바뀌었다.

지속적인 만남과 모임 그것은 희망의 알을 쪼아대고 부활을 꿈꾸며 서로가 성장하는 또 하나의 교육 그 자체였다. 삶 속에서 지속되면서 상호작용하고 변화의 어느 계기가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 마치 주민운동은 평생교육과도 같다.

우리 동네가 어떻게 되면 좋고, 좀 더 행복할까? 어떤 것이 생기면 좋을까, 재밌고 신나게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변화된 마을, 새로운 주민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마을에서 함께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말하게 되었다. 스스로 마을의 희망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고자 하였다. 몇 차례의 주민 워크숍의 결과로 ‘생명, 살림, 자치’의 세 가지 삶의 가치가 정리되었다.

지난 20년을 회고하며 앞으로의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구상 계획이 생겼다. 협동과 자치, 생명과 살림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11개 마을 사랑방을 만드는 비전을 세웠다.

예를 들면, 음악다방, 모임과 놀이가 있는 만남과 교류의 마당(제1사랑방), 복지와 나눔의 마당(제3사랑방), 공부방과 청소년 활동 등을 통한 아동 청소년의 마당(제5사랑방), 주민참여형 공간을 조성하여 노인?아동이 건강한 마당(제6사랑방), 어르신 국수잔치와 문화행사를 통한 주민 어울림의 마당(제10사랑방) 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고 싶은 우리들의 열망, 30년을 향한 비전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신협이 우리 활동의 자부심으로 마을에 자리한 이후, 생명 살림의 가치를 생활 속에 실천하기 위한 소비자 생협도 생겨났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주민들이 협동으로 출자하여 만든 제1사랑방, ‘사랑방 하늘나무’는 우리의 또 다른 자부심이자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돈이 있던 없던, 나이가 많던 적던, 많이 배웠던 못 배웠던, 여기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동아리들이 생겼고, 여기저기서 자체적으로 모임을 하러 오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늘어났다.

협동하는 주민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6개월 동안 협동세미나를 진행하며 지역의 비전을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함께 그려나가는 작업을 하였다. 올해는 행정과 주민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또 다른 사랑방을 만드는 작업을 할 것이다. 

다양한 주민들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협동사회를 일구는 30년을 향한 비전이 계속되고 있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희망의 가능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된다.

글_ 신만수 (생명살림자치 성동주민회 공동대표, 성동협동사회경제 추진단 대표)

* [평생학습 초점] 스스로 말하게 하라 연재목록
(1) 주민의 가능성을 보는 눈 ‘주민운동 교육훈련’
(2) 공부방에서 꿈꾸는 주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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