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솔직하게 말해 보자. 국민들이 국회를 얼마나 믿을까?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 신뢰는 중요하다. 경제적인 신뢰는 신용도로 나타난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가 신용도가 추락하는 바람에 감수한 고난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부동산을 가득 가진 기업도 신용도가 떨어져 운영자금이 돌아가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 흔히 흑자부도라고 일컫는 일이 일어난다.

안타깝지만 국민들의 국회 신뢰도는 낮다. 낮은 정도가 아니라 걱정스러울 정도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가 발표한 국가별 의회 신뢰도 조사결과, 한국의 국회 신뢰도는 민주국가 평균 39.7%에 한참 못 미치는 1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시간이 지난 통계이긴 하지만, 2006년 문화일보와 한국리서치가 공동 실시한 신년기획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은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평가됐다. 고작 2~3%밖에는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다(『신뢰받는 국회와 유권자의의 행복한 선택』, 장성훈 건국대 교수, 선거연수원 홈페이지 2008. 1. 25).

그런데 지금부터 30년쯤 전인 1979년에 김광웅 서울대 교수(현 <시사인> 발행인, 희망제작소 상임고문)가 조사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 인식’ 조사에서는 “국회가 없더라도 정치는 잘 될 수 있다”라는 문항에 응답자의 82%가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그때만 해도 국회에 대한 신뢰가 사뭇 높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쯤 뒤인 1990년 7월 조사에선 “지금과 같은 국회는 없는 것이 낫다”라는 문항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26.8%에 그쳤다. 1979년 이래 국회 신뢰도는 계속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는 억울하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이아무개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본회의 또는 상임위) 의석을 비운다고 비난하지만 그냥 놀고 있는 게 아니다. 분명히 어디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좌중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사회자는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오늘 토론회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해 좌중의 웃음을 다시 유도했다.

그러나 이 국회의원의 주장은 사실일 수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1980년대 초년병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 야당 의원은 하루 일과시간의 80%를 돈 얻으려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이 또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자금법이 좋아져서 돈 때문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이 줄고 정책보좌진 수도 늘었으므로 국회의원들은 그만큼 의정활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노력할 게 분명하다.

특히 15대 이후 의원입법 발의가 폭증(13대 570건, 14대 321건, 15대 1144건, 16대 1912건, 17대 6350건)한 데서 드러나듯, 요즘 의원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움직인다. 18대 국회도 개원하자마자 ‘민생안정대책특위’와 ‘공기업관련대책특위’ 등 5개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관련 국정조사도 시작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민들의 신뢰도 조사결과를 받아보는 국회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터이다.

정부기관 중 가장 정보공개를 잘 하는 곳은 국회다. 국회 활동은 녹화하고 모두 속기를 해서 기록한 회의록이 남는다. 국정현안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두루뭉수리 발언하면 ‘돌발영상’ 같은 TV프로그램에서 얻어맞을 공산이 매우 높다. 의원들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좋은 의정활동 성적표를 받기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국회 사무처의 입법조사관과 전문위원들도 열심히 일한다고 자부한다. 새벽 1시 넘어 의원회관을 찾아가도 그때까지 일하는 보좌관들을 적잖이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혹시 국회와 국민의 소통이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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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국회의 소통을 위해 만든 호민관 클럽 발족식

국회와 국민의 소통이 부족한 건 아닐까?


국회에 대한 ‘청원’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한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거나 고쳐야 할 제도가 있다고 생각해 민원기관에 물어보니 국회에서 법을 고쳐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하자. 우리나라 시민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시민은 아는 국회의원이 없다. 국회법은 국회에 청원을 하려는 자는 의원의 소개를 얻어 청원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동창회와 문중모임을 뒤지고 어렵사리 소개를 받아 한 국회의원을 통해 청원을 넣었다.

이 청원이 국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을까? 어렵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청원심사소위가 있지만 시민들의 고충이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되기는 쉽지 않다. 정부와 국회의원이 제출한 법안 처리도 다 하지 못해 17대 국회 폐회와 함께 자동 폐기 처리된 법안이 3200건이다. 17대에선 여야 대립으로 상정조차 안 된 법안도 무려 1100건이나 된다.

이와 같이 막혀 있는 국민과 국회의 소통 장애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고자 나선 것이 7월22일 발족한 호민관클럽이다. 한 마디로 국민과 국회 사이를 뻥 뚫고자 하는 것이다.


호민관클럽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호민관클럽은 국회의원 38명으로 구성되었다. 공동대표는 김영선(한나라당), 이미경(민주당), 권영길(민노당) 의원이 맡았고, 이들을 보좌할 공동간사로는 김성식(한나라당) 김재윤(민주당) 이정희(민노당) 의원이 선임됐다. 당연히 여야 의원들이 함께 회원으로 참여했다. 국회가 국민과 소통하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호민관클럽은 희망제작소(이사장 김창국, 상임이사 박원순)의 사회창안센터 홈페이지(idea.makehope.org)에 올라오는 다양한 시민 아이디어들 가운데 입법 및 재정 지원이 필요한 아이디어를 국회의원이 입법 등 제도개선으로 현실화해 나가자는 모임이다. 시민들의 청원을 조직적으로 수렴해 의원들이 입법창안, 재정창안 활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발족식에서 김성식(한나라당) 이정희(민노당) 의원은 5개항의 ‘호민관의 약속’을 발표해 “국민의 작은 아이디어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며, 열린 마음과 역지사지의 자세로 국회 안팎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며, 호민관클럽 안에서 이를 숙성시켜 정책대안으로 만들어 나간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언제나 현장에 있다는 믿음과 실사구시의 자세로 국민들이 희망제작소를 통해 제기하는 다양한 입법 및 재정창안 아이디어를 공론화 ?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이날 발족식에서 희망제작소는 시민 아이디어 가운데 보행기본법 입법, 육아휴직 직장여성의 국민건강보험료 소급 납부 개정, 장애인 자녀를 둔 노인의 노인복지주택 입소자격 부여 등 14개 입법 과제와 아토피 예산 증액, 자살예방예산 증액 등 재정창안 4개 과제를 호민관클럽에 제안했다.

이들 가운데 ‘아토피’ 예산 관련한 아이디어를 하나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의 어린이 4명 중 1명이 아토피를 앓고 있다고 한다. 아토피는 만성질병이라 치료가 쉽지 않고, 그래서 부모들의 고민이 깊다. 저소득층은 고민을 넘어 경제적 부담도 크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8년 처음으로 아토피와 천식에 대한 예산 27억원을 마련했다. 그것도 일반예산이 아니라 담배에 부과하는 부담금으로 조성한 국민건강기금에서 나온 돈이다. 그러나 이 예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므로 많은 부모들의 절실한 관심사가 된 아토피 치료에 대한 획기적인 예산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이 아이디어 제안의 요지이다. 호민관클럽은 앞으로 이들 18개 과제에 대해 포럼 등을 개최해 타당성과 실현방안 등을 심의한 뒤 입법 및 재정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호민관클럽은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에만 ‘소통과 입법창안’ 등을 주제로 5차례 월례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또 기후변화 재난관리 등 주요 정책이슈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토론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포럼도 활성화할 생각이다. 오는 9월 희망제작소가 국제컨퍼런스를 겸해 개최하는 ‘사회창안주간’에도 적극 참여한다.

이를 위해 8월15일부터 시작하는 창안대회(아이디어 공모전)에 적극 결합해 시민들이 올리는 각종 아이디어들에 대해 직접 코멘트도 달고 심사도 하면서 직접 시민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넓혀갈 예정이다. 재정창안을 위해서는 호민관클럽 이름으로 직접 현장을 탐방하고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등 조사활동도 벌일 계획이다. 이런 과정에서 희망제작소는 호민관클럽의 창안위원회 구실을 하게 된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창안위원장, 윤석인 김해창 김진욱 부소장 등이 창안위원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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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 와글와글 포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올라오는 시민 아이디어는 2007년 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1년 동안에만 총 2212건이었다. 예를 몇 개 들어보자. 유통기한 표시 글씨가 너무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 불편하다는 요지의 아이디어가 올라왔다.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화할까? 희망제작소가 여러 차례의 포럼과 공청회, 정책 제안을 하였고 마침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고시를 개정했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호적과 주민등록의 내용이 다른 사람은 무려 11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호적에 맞춰 주민등록을 정정할 경우 모든 개인기록을 정정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니 고충이 크다는 아이디어가 올라왔다. 이 아이디어에 대해 정부는 호적에 맞춰 주민등록을 정정할 경우 공무원의 기재 착오로 인정하여 행정기관 직권으로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혹자는 이런 아이디어가 소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아이디어는 행정기관이나 기업의 실무 관행을 고치는 작은 것에서부터 고시나 시행령, 법을 고치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시민이 낸 작은 씨앗 아이디어 하나가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는 과정은 과정 그 자체도 의미가 크고, 우리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시민의 힘’과 ‘시민의 창의력’을 믿자


BC 5세기에 등장한 고대 로마의 호민관(護民官, Tribunus Plebis)은 평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헌신한 진정한 시민의 대변자였다. 포에니 전쟁 후 로마는 부익부빈익빈이 심각했다. 부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이 빈부 양극화는 결국 로마의 정치를 뒤흔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호민관이었던 그락쿠스 형제는 실업난에 시달리는 로마인을 위해 농지개혁을 시도하고,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 대책, 실업자에게 특별히 싼 가격으로 밀을 배급하는 정책, 그리고 새로운 식민 도시를 건설하여 실업자를 이주시키는 방안 등 수많은 정책을 실천하였다.

호민관 클럽은 2500년이 지난 오늘, 로마의 호민관 정신을 대한민국 국회에 새롭게 구현하려고 한다. 희망제작소와 호민관클럽은 ‘시민의 힘’을 믿는다. ‘시민의 에너지’를 믿는다. ‘시민의 창의력’을 믿는다. 그리고 국민과 국회의 ‘소통의 힘’을 믿는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국민의 국회 신뢰도는 높아갈 것이다.

김영선 공동대표는 “국민들이 생활현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문제들에 대해 해결점을 찾아보려 고민한 아이디어들을 취합하고 가공하고 활용해서 사회 전반의 발전을 이끌도록 하겠다”면서 “국민 모두가 퍼블릭 시이오(Public CEO), 국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함께 호흡하며 노력해나갈 생각”이라고 호민관클럽 발족에 즈음한 포부를 밝혔다. 국회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국회보> 8월호에 실렸음을 알려드립니다.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

70년대 목을 걸고 치열하게 살았다. 다행히 죽진 않았다. 80년대 한겨레신문의 창간과 더불어 청춘을 바치고자 결심했다. 기자(법조팀장 정당팀장 행정팀장), 노조위원장, 경영기획실장 판매이사대우를 거치며 발바닥에 땀나도록 희망을 만들어 보려 몸부림쳤다. 못다 이룬 꿈을 희망제작소에서 이루고 싶었다. 희망은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분명한 사실은 오늘도 그는 ‘살인 미소’를 날리며 ‘마당발’로 세상을 뛰어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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