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드디어 지하철역 화장실도 리모델링을 통해 남녀 변기수가 1:1로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사회창안 와글와글 포럼에서 패널로 참여한 서울도시철도공사측이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사회창안센터는‘여자화장실의 긴 줄, 줄일 수 없는가?’를 주제로 낡고 성비도 맞지 않는 기존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을 다룬 바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여의나루역 화장실을 남녀 변기수 1:1 로 리모델링해 오픈한다고 밝혔다.

여자 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줄서기 대전쟁에는 남녀 화장실에 설치된 변기수의 문제가 숨어 있었다. 통상 전체 면적 자체는 남·녀 화장실 모두 동일 배분하더라도 남자쪽에 설치된 변기수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남자는 대변기, 소변기가 나눠지지만 여자는 나눠지지 않는다. 따라서 남녀 동수의 변기를 제공하려면 칸막이를 필요로 하는 여자 쪽에 더 많은 공간을 배정해야 하는데, 통상 화장실 설계도면 작성시 남녀 동일 규모로 일괄 배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설치할 때부터 여자 쪽 변기수가 적게 되어왔던 것이다. 여자의 소변시간이 남자에 비해 평균 1.88배 더 걸린다는 한국화장실협회측의 공식 조사결과까지 참고해본다면, 실제 여자와 남자가 동일한 속도로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선 여자 변기가 2배여야 한다는 산술적 평균이 나온다. 그럼에도 정작 여자 변기가 더 적으니 당연히 여자 쪽만 긴 줄이 늘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 ”?”현재 공중화장실에관한법률은 남녀 변기수가 대·소변기 합쳐 최소 1:1은 맞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4년 제정 이전에 설계안이 통과한 건축물까지는 소급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피부로 변화를 느끼긴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시민들이 정말 자주 접하는 여객시설 중 하나인 지하철역사의 화장실이 드디어 리모델링된 것이다.

특히 이번 지하철역 화장실 리모델링은 공사 자체가 쉽지 않았던 터라 주목해볼 가치가 있다. 지하철역은 온전히 지하를 뚫어 역사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따라서 한번 공사가 완료되면 이후 리모델링할 때 새로 추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한다. 즉 주어진 기존 공간만을 활용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여성 화장실을 증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기존 남자 화장실이 아예 여성 화장실보다 2배 가량 넓은 점을 착안, 이를 맞바꿔서 여자화장실 전체 면적을 늘리고 남자화장실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 그럼 남자 변기 숫자를 확 줄였을까? 아니다. 남자 소변기는 설치가 상대적으로 간편하고 공간을 덜 차지한다. 따라서 중간 빈 공간에 세면대를 S자형으로 설치하고 나머지 벽면 전체에 돌아가면서 변기를 놓는 공간 디자인을 택했다.

깨끗하고 쾌적하고 안전한 화장실. 여러 공공기관에서 목표로 하는 공중화장실의 기준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또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 중 하나가 화장실 성비 지키기가 아닐까. 사회구성원들의 평등권은 쾌적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권리 못지않은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다른 곳에서 화장실 리모델링을 할 때 이번 도시철도의 화장실 리모델링 설계·공사 방식이 참조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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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시철도의 리모델링 공사는 화장실 성비 기준 지키기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의 모범사례를 보여준다. 보통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 남녀 구분을 두지 않아 인권 침해 소지가 있었던 부분을 참작하여 이 또한 남녀 화장실로 구분하였고, 이 화장실을 다목적 화장실로 활용할 수 있게 하여 기저귀 교환대 및 어린이 변기를 배치하였다. 다목적 화장실로의 용도 활용은 장애인 단체의 요구이기도 했다. 아울러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 및 어린이변기를 설치하여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아빠들이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 점도 눈에 띈 긍정적 변화 중 하나이다.
또한 여자화장실 내 개별 변기 칸막이의 경우 윗부분을 높이고 아랫부분을 낮춰 훔쳐보기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을 다소 완화시키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고, 동양식 좌변기(일명 쪼그리는 변기) 옆에 손잡이를 설치하여 사용자의 편의를 도운 점도 눈에 띄었다. 화장실 손잡이는 2008 사회창안대회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는 아이디어다.

”?” 한편 지난 포럼 때부터 창안센터가 계속 전달한 바 있는 ‘세면대 옆 가방고리’등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음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설치가 어려운 건 아니나, 면밀히 검토한 결과 아무래도 가방을 놓고 가는 분실 사고 우려가 너무 높아 일단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사측 답변에서 느껴지는 관리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방고리에 놓고갈 고객 가방 걱정으로 인해 세면대를 사용하는 모든 고객의 불편을 그냥 감수하라고 하는 건 여전히 지나친 관리자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싶어 여전히 아쉽다. 참고로 공중화장실 가방고리 설치 아이디어는 2007년 사회창안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된 바 있다.

그렇지만, 이번 화장실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화장실 변기 성비 구조 맞추기 공사와 관련한 좋은 사례를 보여준 서울도시철도 관계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09년에도 사회창안센터는 시민들의 좋은 제안을 각 행정주체에 계속 전달하여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자화장실의 긴 줄, 줄일 수 없는가?’ 와글와글 포럼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