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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록키산맥이 지나가는 미국의 몬타나주에 ‘리비’라는 마을이 있다. 인구 2500명 정도의 옛 광산촌이다. 20세기 동안 이 마을의 경제를 지탱한 것은 ‘운모’(질석)를 생산하는 ‘조노라이트’라는 광산회사였다. 이 회사가 채굴한 운모는 단열재를 비롯한 광범한 건축 및 시설물 자재로 미국 전역에 공급되었다. 이 운모광산은 수천만 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석면이 다량으로 섞여 있다.

1963년 광산회사 ‘그레이스’가 이 광산을 매입하여 운영하다가 1990년 폐광했다. 바로 석면오염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 마을 일대에서는 오랫동안 돌먼지에 포함된 석면에 오염된 사람들 중 최소 200명이 죽고 수천 명이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 이 회사는 주변 일대의 석면오염 제거 청소비로 2억5000만 달러를 부담하는 데 동의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석면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30억 달러(약 4조 원)를 지불하면서 작년 파산상태에 들어갔다.

이것으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석면이 광원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긴 혐의로 이 회사의 과거 CEO 5명이 줄줄이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호흡기에 치명적 질환 유발


석면은 영어로 ‘asbestos’이다. 희랍어 어원인데 ‘없어지지 않는’이란 뜻을 가졌다. 그리스인들은 석면을 ‘기적의 광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데다 내열성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열에도 타지 않은 특성 때문에 고대인들은 석면을 여러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죽은 자를 화장할 때 시체를 석면에 싸서 장작에 태우면 시체의 재가 나무 재와 섞이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석면으로 만든 옷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여행기에서 “옷을 불 위에 놓아 세탁했다”고 했다.

석면의 독성은 이미 로마시대부터 알려졌다. 석면 옷을 입은 노예들이 폐질환을 앓았던 것이다. 20세기 초기에 미국에서는 석면광산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의 사망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잠복기를 거치는 오염의 폐해보다는 편리함과 경제성이 20세기 후반까지 압도했다. 석면은 단열효과, 방음효과, 누전 차단효과, 화학약품 폐해 차단효과가 대단히 뛰어나다. 이런 특성으로 석면은 19세기부터 건설과 제조업 분야에서 광범하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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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1950년대에 켄트(KENT)담배가 처음으로 필터담배를 내놓았는데 그 원료가 석면이었다고 한다. 석면 가루가 서서히 사람의 폐에 달라붙어 죽음으로 유도한다는 사실은 모른 채.

미국에서 석면 오염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로 법원기록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석면광산 회사 간부들이 석면 독성의 위험을 알고도 공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고, 이 일로 정부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곧 이어 미국의 빌딩, 학교, 시설물에 광범하게 사용된 석면이 본격적으로 미국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사람이 호흡할 때 폐 속으로 들어간 석면이 일부 폐에 달라붙어 암 등 호흡기에 치명적 질환을 유발하는 것이 확인되면서 석면 오염은 1980년대에 큰 사회 이슈가 되었고, 신문 기자들은 석면을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로 묘사했다. 미국에서 석면사용은 크게 제한됐지만 이미 광범하게 사용된 석면을 제거하는 일은 골칫거리였다.

이런 측면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이번에 드러난 석면 오염 문제는 미국보다 20년 늦게 도착한 것이다. 얼굴과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과 베이비파우더뿐 아니라 먹는 의약품에 석면이 함유되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놀라움과 분노, 혼란은 크다.

원래 화장품의 원료로 쓰이는 것이 활석(탈크)이다. 양복점에서 가봉할 때 재단사가 쓰는 백묵이 탈크다. 탈크는 화장품만 아니라 의약품과 식품첨가제의 원료로도 쓰인다. 탈크 자체도 발암물질로 혐의를 받고 있지만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석면이 제거된 탈크는 안전하다는 공식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번 석면오염 사태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 정부기관으로서의 사명감, 신뢰감, 과학성, 분별력이 약하다. 의약품의 판매금지를 발표하면서도 그 과학적 논리와 여론을 배합하고 있다. 석면의 독성에도 접촉형태에 따른 허용치가 있을 텐데, 여론을 따라 투망식 처방을 한 인상을 준다.


종합적 진단, 빈틈없는 처방을


임시처방도 중요하지만 석면 오염에 대한 앞으로의 정책 대안이 문제다. 석면오염이 단지 화장품과 의약품만의 문제인가. 우리나라 건물에 들어간 석면은 안전한가. 이를테면 우리나라 도서지방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많고 이런 지붕의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한 사람들은 안전한가. 식품의약안전청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이참에 정부는 관료적 땜질처방으로 여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석면오염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최소한 식품의약품안전청 하나만이라도 과학과 행정이 빈틈없이 교직된 정부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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