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의 인생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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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아래의 글은 수원시 평생학습관 평생학습 아카이브 ‘와’에 게재(8월14일)된 글입니다.

긴 장마 끝에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에 설레고, 어른들은 휴가에 들뜨는 계절입니다. 휴가하면 여행이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번 평생학습 초점에서는 두  번에 걸쳐 여행과 학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공정여행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에서 진행한 국내외 다양한 공정여행,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공유합니다. 여행에서의 관계 맺기와 여행 그 후, 일상에서의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평생학습 초점] 여행과 만남, 그리고 배움 (2)
달래의 인생 쉼표

 언제부터인가 ‘어른’, ‘성인’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서글퍼진다. 아이였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그렇게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된 지금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때를 그리워 한다.

어른들은 매일 경쟁하고 긴장한 채 살아간다. 어른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들과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서글퍼진다. 어른들은  현실 속에서 어딘가 억눌리고, 억압된 감정들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을 내려놓은,  혹은 내려놓고 싶어서 떠난 여행지에서 그들의 억눌림은 폭발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섹스 관광, 동물 학대, 짝퉁 쇼핑 등의 왜곡된 여행문화는 그런 감정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과 긴장에서 벗어나 자신을 반추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말 그대로 몸과 정신에 휴(休)를 허락할 수 있는 여행, 그런 여행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몇 해 전, 대안학교 학생들과 북촌으로 공정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구불구불 언덕이 많은 길을 걸으며, 길 위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길 위에 사는 주민을 만나는 것이 북촌 공정여행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북촌 공정여행을 ‘서울의 숨은 보석’이라 명명했다. 종종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들이 있었는데 ‘달래’는 아이를 따라나선 학부모들 중 하나였다.

볕 좋은 가을 날, 북촌의 호젓한 길을 걸으며 아이들은 조금 힘들어 했지만, 학부모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들뜬 모습이었다. 몇 번의 패키지여행의 경험이 있었던 달래는 의미도, 재미도,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쉼도 없는 패키지여행을 만족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행을 다녀온 뒤 느끼는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북촌 공정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달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혼자서 공정여행을 할 것인가’, ‘아이들과 함께 공정여행을 할 것인가’였다. 사회인,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기타 등등의 상황과 관계 속에서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녀의 고민을 알게된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정여행을 갈 것을 권유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현실 도피성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정여행을 통해 상황과 관계들이 한층 더 좋아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첫 행선지는 필리핀이었다. 방학을 맞이해 아이들이 2주 가량 공정여행을 떠나는 ‘루손섬 여행학교’가 그녀와 아이들의 행선지였다. 여행학교의 부제는 ‘편견을 넘어, 가슴 뛰는 필리핀’이었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고, 필리핀의 사람?지역?환경?사회문화 등을 만나 생동감 있는 여행을 하는 일정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당시 달래의 아이들은 7살과 12살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달래는 설레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란 약간의 염려가 있었다.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 일본에서 다시 미군정으로 이어지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처음 필리핀을 접하는 사람들은 뿌리 깊이 박힌 식민의 저주를 느끼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열강들이 남긴 식민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관광 수익원으로 인식되어 누구에게나 권장하는 공간으로 재해석 되고 있는 것을 보며 한국 사람들을 적지 않은 혼란감을 느낀다.

마닐라 탐방을 시작했을 때, 달래 역시 이런 혼란감에 빠졌다. 소득상위 10%의 사람들이 90%의 부를 독점하고, 권력을 세습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에겐 과연 어떤 희망이 있을까 고민에 빠진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달래에게 마닐라 일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다행히 국제기구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며 ‘공정여행’을 하면서 필리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필리핀에는 몇몇 국제기구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기구가 왜 수익활동을 하느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은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생계지원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어떤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 공정여행을 하는 것은 특별히 어려울 것도 거부감이 들 것도 없는 착한 일 중 하나였다. 달래를 비롯한 공정여행객들이 희망이라곤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나의  선택이 희망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야간 버스를 타고 10시간, 필리핀에 있는 자치주 이푸가오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달래는 유엔개발계획(UNDP) 협력기구인 시트모(SITMo: Save the Ifugao Terraces Movement: 이푸가오 계단식 논지키기 운동 본부)의 운영위원장 말론 씨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아이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첫 시간이었다. 갑자기 적적해진 달래의 앞엔 말론 씨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평생을 이푸가오에서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녀는  300여 개의 민족과 90여 개의 말이 뒤섞인 필리핀에서 자치주를 획득하고, 자신들의 말과 문화를 공립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이푸가오족을 자랑스러워 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관광객에 집중된 정책 탓에 정작 산악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겐 공공의 힘이 닿지 않아 낙후된 곳이었다. 그곳을 자랑스러워 하는 말론 씨의 어머니를 보며 달래는 감동했다. 말론 씨는 필리핀국립대학(필리핀의 명문대학, 이곳 출신은 보통 출세가 보장된다고 말한다.)을 나온 수재이다. 출세가 보장된 좋은 자리를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일에 파묻혀 결혼도 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그를 그의 어머니는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 모습에 달래는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여느 엄마들처럼 달래 역시 아이들과의 관계에 고민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부족했고, 때론 경직된 생활 속에서 받은 긴장과 스트레스는 아이들에게 분출되곤 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상황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무서워하기도 했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서 문득 나이보다 의젓한 아이들을 대견하게 느낀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낙후된 지역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보며, 본인의 삶을 자연스레 되돌아 보기 시작했다. 좋은 공기 덕분에 자연스레 몸도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거나 대부분 걸어서 이동하는 일정이 피곤했지만 생각보다 몸은 가뿐했다. 아이들은 잘 지냈고, 잘 어울렸고, 잘 적응했다.

이푸가오족은 2천 년 전, 루손섬 중원의 전투에서 밀려나 산 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지금의 터전을 이루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산을 계간했고, 그것을 우리는 ‘계단식 논’이라 부른다. 이 계단식 논을 모두 이으면 지구 반 바퀴를 감쌀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광화와 이촌향도 현상으로 전체 논의 70% 이상이 파괴되었다. 시트모는 이푸가오 사람들이 계단식 논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것을 지원하고, 관광객들이 이푸가오에 왔을 때 계단식 논 복원 작업에 참여하는 여행을 진행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런 사정을 잘 이해했고, 복원 작업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다. 달래는 우리의 여행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복원활동에 참여하면서 여행지의 주민들을 위해 행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복원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한 몫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순간 평안함과 함께 또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통계상 이곳보다 잘 사는 마닐라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마천루 뒤에 판잣집이 드라마처럼 펼쳐지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좌절감을 느낄 정도의 빈부격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달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친구들을 잘 사귀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관계 맺기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달래가 한참 필리핀 여행을 하고 있을 무렵, 출장으로 그 근처에 들릴 일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질문이 많았고, 의문이 가득했지만 얼굴은 훨씬 평안해져 있었다. 뛰어 놀기에 바쁜  아이들은 엄마는 이제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래는 필리핀에 오기 전, 영어회화가 부족하여 대화를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녀의 영어회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과 마음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힐링 하고 있는 그녀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구조와 자연의 수탈에 대해 고민하며 완충 장치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공정여행의 매력에 빠진 상태였다. 다만, 아이들에 대한 고민들이 끊이지 않았고,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과 더 긴 여정으로 공정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후, 달래는 태국으로 공정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에서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움과 아늑함을 느끼게 되었고, 현지 사람들과 너무 쉽게 그리고 깊게 관계를 맺었다. 영어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매일 책을 읽으며 남은 인생을 새롭게 계획했다. 태국 공정여행이 마무리 되어 갈 무렵, 달래는 사회생활에 쉼표를 주기로 결정하고, 적금 통장을 깨는 큰 결정을 내렸다. 물론 남편과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태국 북부로 아이들과 세 달 간의 공정여행을 또 다시 떠났다.

[##_2C|1086537874.jpg|width=”280″ height=”18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1343668441.jpg|width=”280″ height=”18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아이들과 함께 떠났던 태국 공정여행 (출처: 공감만세 카페)


세 번의 공정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의 삶은 어떨까? 여전히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은 긴장과 경쟁이 존재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가시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큰돈을 들여서 여러 번 공정여행에 다녀왔으니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일상의 변화란 더디고 느리게 오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이라고……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보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편안해졌고. 깊이 있는 대화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공정여행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었다. 아이들은 공정여행을 하며 방문했던 빈민지역 공부방을 후원하고 있다. 본인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어 준 현지 친구들에게 용돈을 아껴 매달 5천 원씩을 보내고 있다. 막내 아이는 아직도 ‘깸, 까오, 지’ 등 공정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며 함께 놀았던 일들을 이야기 한다.

그녀의 삶은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무엇인가 풍부해졌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무엇이 풍부해진 것인지 확실히 말하기는 힘들다.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 공정여행은 인생의 쉼표이자, 점환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도 달래는 또 다른 공정여행을 꿈꾸며 살고 있다.

글_ 고두환(공감만세 대표)

* [평생학습 초점] 여행과 만남, 그리고 배움

(1) 아이가 성장하는 여행
(2) 달래의 인생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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