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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달팽이는 등에 집을 업고 다니다가 쉴 때는 집으로 들어가서 잔다. 그러니 그들은 집을 두 채씩 가질 필요가 없다. 욕심을 부려보아야 별 수 없다. 달팽이는 아무리 가난해도 집 한 채는 갖고 태어난다. 참 편리한 소유와 관리 방법이다.

인간은 달팽이와 같이 집을 업고 다닐 수가 없다. 고정된 장소에 주택을 마련하고 밖에서 활동하다 돌아와 잔다. 그러니 인간도 집이 두 채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집은 달팽이의 집과는 다르다. 넓은 집을 가질 수도 있고, 집을 몇 채라도 가질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집 없이 살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이 달팽이와 다른 점이다.

인간이 달팽이에게서 배울 점이 있을까. 글쎄, 만물의 영장이 하등동물에게서 배울 게 뭐가 있을까? 그런데 달팽이에게서 교훈을 얻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집짓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 회사 이름은 ‘달팽이건설’이다.

달팽이 건설을 홍보하는 책자에는 달팽이집 속에 부모와 어린이가 앉아 있는 로고가 그려져 있다. 설명문은 이런 구절이다. “자연과 사람이 한 그릇에 담김이며, 달팽이가 몸에 맞는 하나의 집을 고집하듯, 생명과 삶이 깃든 건축을 지향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운동권과 전문경영인의 만남


표현이 범상하지 않다. 운동권적 언어 조합이 보인다. 실제로 달팽이건설은 운동권 사람들이 모여 세운 건설회사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라는 사단법인이 모태이다. 이들은 과거 서울 성동구에 살다가 철거민이 된 사람들과 이들을 돕는 신부와 목사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빈민운동의 철학과 가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회사다.

달팽이건설은 주식회사다. 스스로 내규를 만들었다. 주주의 의결권은 보유주식의 숫자가 말해주는데, 이 회사는 조합처럼 1주주 1표다. 주주에 대한 배당한도는 이윤의 34%에 한정하고, 나머지 이윤은 사회에 환원한다.

한사람의 주식 지분율도 10%를 넘지 못한다. 회사 내 최고액 봉급자와 최저액 봉급자의 봉급 차이는 2배 이내이어야 한다. “이런 주식회사가 어디 있냐?”고 의아해 할 사람이 있지만 공동체를 지향하는 달팽이건설은 이런 회사운영 방침을 보란 듯이 내세운다.

달팽이건설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여름이다. 그런데 회사설립에 곡절이 있었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중심이 되어 주식회사를 만들려 했으나 2년 여 동안 논쟁과 시행착오만 거듭하다 시간을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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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건설의 꿈은 서민들이 살 집을 합리적인 가격에 지어주는 것이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사단법인 참여자 중 목수 도장공 인테리어전문가 등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노동인력은 완비가 되었으나 회사를 경영할 전문가가 없었다. 모두가 가난한 운동권 출신이거나 종교인들이어서 회사를 만들 노하우도 절차도 깜깜했다. 그들끼리 여러 차례 회사설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경영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누가 자본금 5000만 원짜리 미니 주식회사를 설립하는데 경영인으로 올 것인가. 그들은 광고비도 없었고 홍보수단도 없었다. 그들이 제시한 월급은 150만원, 사무보조를 해줄 여직원도 없었다.

새로 들어올 경영전문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해야 한다. 거기다 봉급 일부를 투자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할 실력의 경영 전문가라면 적잖은 연봉을 제시하고 기다리는 회사가 많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달팽이건설 경영을 맡겠다는 지원자가 나타났다.

시멘트회사에서 21년을 일하고 레미콘회사 오너 사장까지 지냈던 박영규라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50이 된 그는 자신의 원하는 삶, 즉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경영자를 원하는 달팽이건설과 연결이 된 것이다.

달팽이건설은 그에게 상임이사라는 직책을 부여했다. 대표이사는 일생 빈민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인테리어업자 임근정씨다. 회사업무는 상임이사가 대표이사의 결재를 받아 경영업무를 총괄하도록 되어 있다. 참 독특한 경영구조다. 아무튼 운동권과 경영전문가의 절묘한 만남이다.


친환경적 서민주택 건설


박씨는 작년 상임이사가 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주식회사를 만들어 설립신고를 한 후 공사를 수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몇 백만 원짜리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에서 다세대주택 건축 일까지 맡았다.

대표이사와 상임이사는 술잔을 기울이며 논쟁을 벌인다. 운동권인 대표이사는 돈을 무리해서 벌면 안 된다고 우기고, 상임이사는 합리적으로 돈을 벌어 좋은 건설회사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사현장에서는 논쟁 대신 목재를 맞들고 나른다.

아직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달팽이건설에겐 꿈이 있다. 그것은 달팽이처럼 서민이 살 집을 합리적인 가격에 지어주는 것이다. 새로 짓든 개축을 하든지 달팽이집처럼 친환경적인 건축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다짐한다. “건축주가 기절할 정도로 좋은 집을 만들어 주자.” 우리 사회엔 이런 희망의 싹이 트는 구석도 있다.


*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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