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사용자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해외평생학습동향 ⑦ 함께하는 정치교육, 국가는 거들 뿐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전 세계 다양한 평생학습 관련 동향과 사례, 단체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대안교육운동부터 각 나라의 평생학습 정책을 대표하는 단체와 프로그램까지. 정해진 틀은 없다. 각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우리의 평생학습 체계와 내용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기대할 뿐이다.

지난 영국 편에 이어 이제는 독일이다. 독일은 정치교육·시민교육이 발달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과거 나치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반성하고, 교육을 통해 올바른 시민상을 제시한다. 또한 통일 전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동서독 시민들의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고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독일의 평생교육을 단순히 시민교육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은 OECD 국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중하위권에 머물지만, 모든 시민이 평생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교육 혜택을 누리며 그 힘은 나라를 지탱한다. 수많은 제반시설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잘 짜인 제도들과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 탄탄하게 독일을 받쳐 주고 있는 독일을 평생교육을 살펴보자.

정치교육, 국가는 거들 뿐

독일의 대표적인 정치교육 지원기관인 연방정치교육원(Bundeszentrale fur politische Bildung)이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다¹.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패한 후 독일에게는 전범국이자 패전국이라는 이중의 멍에가 씌워졌다. 패전 후 독일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것은 잿더미가 된 국토뿐만이 아니었다. 1백만 명이 넘는 강제노동자와 전쟁포로들을 죽이고, 6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정권의 만행은 양심적인 독일인들에게 또는 독일인들의 양심에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남았다. 종전 후 나치즘의 최면에서 깨어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침묵과 동의,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전쟁범죄의 참상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따라 불의한 정치에 항거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에 독일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국민들의 민주의식과 정치참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교육사업을 시작했으며, 그 결과로 1952년 내무부 산하 연방정치교육원이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지난 60년 동안 약 400여 개에 이르는 공인된 교육기관, 정치재단, NGO 등의 정치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1) 연방정치교육원과 거의 동일한 기능을 주(州)차원에서 담당하고 있는 주정치교육원이 별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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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지켜주는 중립성

‘정치교육’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국가기관이나 어용단체의 정책선전이나 이념색 짙은 단체들의 선동을 먼저 떠올린다².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식의 반공교육과 억압적인 독재정권, 그리고 예비군 훈련장에서의 안보교육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정부 산하의 정치교육기관이란 국가의 꼭두각시로 의심받기 쉽다. 더구나 나치즘과 히틀러를 탄생시킨 독일이 아닌가? 이런 정당한 의구심에 답하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독일연방정치교육원이 국가의 선전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2)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부정적 인상 때문에 정치교육보다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명칭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우선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원기관이다. 이 기관은 매년 연방예산으로 수백 개의 단체들을 지원하지만, 각 기관의 교육내용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³. 지원기관이 지켜야 할 조건은 첫째,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 Konsens)을 준수하는 것, 그리고 둘째, 모든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이 조건을 준수하는 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을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독일에서 정치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노조, 교회, 정치재단, NGO 등이며, 연방정치교육원은 사회 전반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교육에 반영되도록 장려하는 조율자와 지원자의 역할을 한다.

3) 2009년 연방정치교육원의 예산은 3,840만 유로(한화 기준 약 540억 원)이었다.

독일의 정치교육의 최소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1976년 가을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에서 각 정파들이 모여서 수차례의 회의를 거듭한 결과 얻어진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교육에서는 교화 및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즉 어떤 경우에도 학생에게 가르치는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둘째,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은 교실에서도 논쟁 중인 것으로 소개해야 한다.

셋째,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당면한 정치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분석하고 그로부터 자율적으로 자신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76년에 합의된 이 협약은 서로 다른 주체들이 공존할 수 있기 위한 원칙이며, 그러므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주장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연방정치교육원의 중립성은 정치적으로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노조, 정치재단, 교회, NGO들을 지원하여 정치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함으로써 지켜진다. 예를 들어, 정당과 노선을 같이 하는 정치재단들은 각 정당의 국회 내 의석수에 비례하는 자금을 지원받아 정치교육을 실시한다⁴. 이러한 제도 덕분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소수파 정당의 정당재단들까지도 국내외에 수십여 개의 지부를 운영하면서 유의미한 활동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조성된 공존과 경쟁의 환경 속에서 독일의 민주주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4) 정치재단의 경우 각자의 정당들로부터 일정하게 독립성을 갖고 있다. 당지도부가 재단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단의 역할과 활동영역, 당의 역할과 활동영역은 명백하게 분리되어 있다. 대표적인 정당과 정치재단을 연결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사민당, 프리드리히 에버츠재단, 녹색당, 하인리히 뵐 재단, 기민련, 콘라드 아데나우어 재단

연방정치교육원의 이러한 운영방식은 독일의 중요한 사회운영원리 중 하나인 ‘보충성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보충성의 원칙’이란 시민단체나 교회공동체 등이 사회의 하부단위에서 행하는 일을 국가와 상부단위에서 중복해서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대신 이 활동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아래로부터의 시민참여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등에 대한 독일식 해답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원칙은 또한 국가의 최소 단위인 국민 개개인의 자기결정능력과 자기책임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능력과 책임감을 강화한다.

연방정치교육원은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또한 갖추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기구가 교육관련 기본내용을 결정하는 전문위원회와 교육원 사업의 정치적 중립성을 감독하는 감독위원회이다. 이들의 결정이나 감독의 기준이 되는 것은 역시 보이텔스바흐협약이다.

많이 알려진 사업은 아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연방정치교육원의 사업 가운데 주목하고 있는 사업은 총서 발간 사업이다. 연방정치교육원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여 매년 약 80권의 새로운 단행본을 발간해 시민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이런 단행본들을 연방정치교육원에서 자체 제작하기도 하고, 기존에 출판된 책의 판권을 사들여 재출판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예를 들어 일반 서점에서 20유로정도 하는 책을 이곳에서는 4.5유로에 살 수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유학생 시절, 이 제도의 덕을 톡톡히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업은 비록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비용이 투입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사업’이 되기 십상이지만, 동시에 대중이 양서 속에 담긴 교양과 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일이며, 정치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길이기도 하다.

스스로 배우는 정치교육

우리의 평생교육 가운데 아직은 다소 취약한 분야가 ‘시민’을 육성하는 교육, 즉 정치교육이다. 여기서 시민이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공적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를 말하는데, 이러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바로 정치교육의 본령이다. 시민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현실을 다각도로 이해하면서, 삶 속의 구체적인 과제들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숙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시민을 길러내는 정치교육은 매우 포괄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즉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들이 충돌하고 조율되는 과정 자체가 정치교육이며,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개인, 마을, 사회, 국가의 문화와 구조까지도 바꾸는 것이 정치교육이다. 이런 정치교육은 정부의 특정부처가 도맡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독일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시민들이 배움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저 여건을 만들고 필요한 것을 지원해 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의 지원시스템은 정치교육의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한 성공적 사례이다. 이런 지원시스템 덕분에 독일의 정치교육분야에서는, 개인이나 민간단체들의 열정이나 희생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정치교육분야에서와는 달리, 훨씬 효과적으로 정보와 인적자원이 네트워킹되며, 축적되고 전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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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는 우리는 낯선 풍경을 만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당해 부서진 카이저빌헬름기념교회가 파괴된 모습 그대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교회는 독일인들이 자신이 일으킨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해 남겨둔 일종의 경고 기념물이다. 이러한 경고 기념물들은 독일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과거에 그만큼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역사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억하고 성찰한다. 연방정치교육의 출발점이자 지속의 동력이 되어준 이런 독일인들의 태도는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잊고 앞만 향해 내달리는 우리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글_ 강현선 (前희망제작소 연구원,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학 석사)

* 해외평생학습동향 연재 목록
1) 영국에 부는 대안교육의 바람
2) 영국의 평생학습 생태계, 그 비밀을 캐다
3) 누구나 배우며, 누구나 가르치는 대학
4) 개인적 학습을 넘어 사회적 학습으로
5) 시민참여교육, 투 트랙(Two Track)이 필요하다
6) 여유만만 독일 시민들은 공부 중
7) 함께하는 정치교육, 국가는 거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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