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7월부터 새롭게 ‘희망소기업 이야기’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구마는 생명력이 강하다. 살아있는 것들 치고 살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마는, 고구마는 유난히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고구마 순을 잘라 땅에 심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싹이 나올 정도다. 해가 바뀌면 땅속에서 알고구마가 여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생명력 강한 고구마가 좋아서


새순영농조합의 김종광 대표는 고구마의 이런 생명력에 강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고구마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참말로 강해요. 줄기 하나 땅에 꽂으면 그냥 살아나요. 그러다 자기가 죽을 것 같으면 꽃을 피우고 씨를 틔웁니다. 자기가 죽어도 생명을 이어나가겠다는 건데, 이런 작은 생명에 그런 본성이 있는 것 같아 애정을 주지 않을 수가 없어요.”

농사 짓는 농부의 마음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고 했던가? 그에게 고구마는 자식이자 친구고, 애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구마와 함께 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말이다. 아버지는 30년이 넘도록 고구마를 키웠고, 아버지의 그 고구마가 김 대표를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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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네요” 7월 중순부터 고구마 수확에 들어가며, 10월까지 저장을 마친다.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고구마 농사를 거들었지만, 본격적으로 고구마에 대한 관심을 키운 시기는 사회에 나와서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990년에 화산농협에 입사하게 된다. 15년 농협 생활 중 10년을 고구마 판매부서에 있으면서, 고구마 사랑을 싹 틔웠다.

이 시기 그는 지역 고구마 농가와 관계를 넓혔고, 판로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농협이란 곳이 조합 농민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직원이 발벗고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 하지만 그는 좀 유별났다. 새로운 판로가 보이면 일단 뛰어 들었다.


홈쇼핑에서 처음으로 고구마를 판 주인공


처음엔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구마를 팔았다. 누가 인터넷으로 고구마를 살까 했지만 의외로 판매량이 괜찮았다. 자신감을 얻은 김 대표는 이번엔 TV홈쇼핑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업제안서와 고구마를 들고 CJ 홈쇼핑 MD를 찾아 서울로 향했다.

홈쇼핑 MD의 첫 만남. 반응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고구마 판매 여부를 확정 짓지는 못했다. 홈쇼핑 회사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고구마를 팔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 판매 데이터가 없다는 말은 실패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해남과 서울 오가기를 몇 번. 끈질긴 설득으로 고구마 판매 방송 시간을 따냈다.

이렇게 해서 홈쇼핑 사상 첫 고구마 방송이 시작됐다. 2004년 7월의 일이다. 이제 남은 관심은 판매량. 첫 방송이 마지막 방송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대표는 방송이 끝난 뒤 초조한 마음으로 판매액 집계 결과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과가 나왔고, 긴장한 그의 얼굴에 이내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짧은 방송 시간이었지만 4천여만 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 아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이날 이후 홈쇼핑에서 지속적으로 고구마 판매를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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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는 김대표. 황토를 뒤집어 속을 들여다 보자, 흙 반 고구마 반이다.

고구마 판매 방송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방영 횟수도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다 다음 해 겨울 호박고구마가 대박을 터트렸다. 8천만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것. 그러자 다른 홈쇼핑 회사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하나 둘 홈쇼핑 회사들이 고구마를 취급하게 됐고, 지금은 5개 홈쇼핑 모두 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다.


나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였다


고구마 홈쇼핑 판매 성공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가 2005년 봄에 느닷없이 사표를 던졌다. 더 큰 포부를 펼치고 싶었다는 것이 회사를 그만 둔 이유다.

그가 말한 더 큰 포부란 지금의 새순영농조합을 말한다. 농협이란 조직이 밖에서 보면 유기적으로 잘 운영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공적 조직이다 보니 탄력적으로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구마 판매에 한창 재미를 붙이던 터라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도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떠나기엔 큰 결심이었다.

“나오면서 다짐하기에 지금까지 나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라고 생각했어요. 외풍에 적응하려면 3년은 걸릴 것인데, 그것만 참고 견디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이 악물었죠. 3년이란 세월 속에 묻히면 끝이지만 거기서 이기면 살아날 것이다, 그런 각오로 말이지요.”

고구마 농가를 모아 영농조합을 꾸렸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경험을 발판 삼아 다른 홈쇼핑 회사와 계약을 맺고 고구마를 팔았다. 도시 지역의 중소 규모 마트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농협 시절과는 달랐다. 갖춰진 것이 부족했고, 시행착오도 잦았다.

홈쇼핑 회사들은 납기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배송이 늦어지면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재 구매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납기일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면 납품 업체들은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막 걸음마를 땐 새순영농조합도 그런 위기를 숱하게 겪었다.

한번은 고구마 수요 예측을 잘못해 낭패를 겪을 뻔한 일도 있었다. 고구마야 모자라면 다른 영농조합을 통해 수급을 맞추면 되지만, 포장 박스가 모자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무 박스에 담아서 팔 수는 없는 일. 부랴부랴 고양시에 있는 박스 공장에 주문을 하고 비행기로 박스를 공수했다. 당연히 남는 것 없는 장사가 됐다.

그래도 그 업체와는 거래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봤을지언정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거래처를 하나 둘 늘려나가면서 지금은 홈쇼핑 두 곳과 주요 도시 중소 규모 마트에 연간 2천 톤 이상의 고구마를 공급하고 있다.


지식의 대물림이 희망을 가져온다


김 대표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영농조합 규모를 더 키워야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고구마를 비롯한 농업 전반의 부가가치가 너무 낮은데, 이래서는 농민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도 안 되는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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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표는 농업벤처대학 6기 출신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부다. 그는 농업벤처대학 6기 출신이다.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이곳에 내 생계가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농민들과 찜질방에서 함께 1박을 하며 밤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치열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것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어요. 힘들다고 말하는 농업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것인지, 그 해결책을 우리 스스로 찾아보자는 거예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다짐하곤 했죠.”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이 얻은 것을 퍼뜨리고 싶어한다. 지식의 대물림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배워야 한다. 영농조합을 통해 겪는 소중한 경험, 그 자체가 배움이고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는 농협 정년 퇴직자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저 소중한 지식을 지역 농민들과 나눴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도 요새 즐거운 상상 하나가 김 대표를 설레게 하고 있다. 바로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고구마 음악회다. 고구마와 음악,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해남을 알리고 싶어서다. 짙은 어둠이 깔린 뒤 모닥불엔 고구마가 익어가고, 사람들의 가슴엔 자연을 머금은 음악 선율이 흐르지 않을까. 김 대표의 눈망울이 반짝거린다.

이 작은 음악회가 비단 상상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듯싶다. 인근의 음악 연주 동호회도 알아보고 장소도 물색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잘하면 올 가을에 고구마가 익어가는 음악회에서 김 대표가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볼지도 모르겠다.


고구마도 유행 따라 스타일이 바뀐다


고구마라고 다 같은 고구마라고 생각하면 오산. 거침없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처럼 고구마도 시대에 따라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추운 겨울 고구마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그 시절 고구마의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시라.

80년대 중반까지는 물고구마의 시대였다. 어디를 가나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던 시절, ‘고구마는 곧 물고구마’란 등식이 성립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밤고구마의 등장으로 이런 등식은 깨졌다. 사람들의 입맛을 단박에 낚아 챈 밤고구마는 20년 동안 고구마 시장을 평정했다.

오랫동안 고구마의 왕좌 자리를 차지한 밤고구마는 지난 2005년을 잊지 못한다. 그 해 겨울 듣도 보도 못한 호박고구마의 등장으로 체면을 구겼다. 새로운 맛에 반한 소비자들이 대거 호박고구마로 이탈했다. 소비자들의 취향도 제각각 나눠지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칼라 고구마(주황색, 붉은색, 검정색 등)와 세척 고구마 등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포장 단위도 1킬로 이하 소포장 형태로 변하는 등 고구마의 변신이 계속되고 있다.

고구마는 우리 고유의 작물이 아니라 멕시코 등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메꽃과의 식용식물이다. 영조 39년(1763년)에 유조통신 정사조엄이 일본에서 씨고구마를 얻어와 부산 동해와 제주도에 전파한 것이 우리 고구마 역사의 시작이다. 지금은 해남과 여주 등이 대표적인 생산 지역이다. 문의: 061-534-6955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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