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이웃집 문을 두드렸더니

희망제작소 뿌리센터는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후원회원 및 시민과 함께 공부하는 ‘뿌리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뿌리공부방은 ‘우리 동네에서 실천하는 이웃공동체’를 주제로 김승수 똑똑도서관 관장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유쾌하고 유익한 강의가 또 있을까? 지난 6월 18일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뿌리공부방이 진행됐다. 이번 뿌리공부방은 ‘우리 동네에서 실천하는 이웃공동체’를 주제로 김승수 똑똑도서관 관장(전 파주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입주자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특이하게도 이번 강연은 김승수 관장의 기타 연주에 맞춰 희망모울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청강생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시작했다. 이어서 김승수 관장은 현재 파주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맡았던 때를 소개하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되는 시작과정에서부터 대표가 된 후 아파트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_Gallery|1226118267.jpg||1316404608.jpg||width=”400″ height=”300″_##]

김승수 관장의 아파트 공동체 활동 출발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렇다고 매우 특별한 목적은 아니었다. “지역사회에 관해 공부하고 싶었고, 아파트 대표들이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이를 시발점으로 동대표에 도전해 동대표가 되었고, 이후 7천 명이 사는 아파트 전체 대표가 된다면 주민과 함께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거라 생각하여 다시 아파트 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4: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이 되었다.

아파트 대표가 된 이후 처음 한 일은 아파트 대표직을 맡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알리는 것이었다. “선발된 동대표들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아파트에서도 공정한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묻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아파트마다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홈페이지 하나씩은 있지만, 실제로 잘 운영이 되지는 않는다.

김승수 대표가 주민들이 아파트의 문제에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려고 한 곳은 바로 이 유명무실해진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에 관심이 없고 들어오지 않는 데는 주민이 이목을 끌 재미있는 일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소소한 재미들을 찾아서 주민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소소한 재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크리스마스에 케이크가 먹고 싶은 주민이 사연을 담아 댓글을 달면 케이크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원래는 세 명의 주민에게만 주기로 했는데 너무 많은 사연이 들어와 결국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무려 스물네 명의 주민에게 케이크를 나눠드렸다고 한다. 또 케이크를 받은 주민이 케이크 먹는 모습을 홈페이지에 올리자 조금씩 홈페이지를 통한 아파트 주민의 교류활동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주민들이 이웃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전에 주민이 이 즐거움을 몰랐던 것은 주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을 어느 누구도 제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컨퍼런스, 포럼, 심포지엄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모두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회의의 영어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파주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서는 ‘주민컨퍼런스’라는 이름으로 거창하지만 주민들이 모여 운영하는 회의가 열렸다.

주민은 아파트에 들어오는 잡수입(고철을 고물상에 판 돈, 재활용수거비용, 장이 들어설 때 상인들이 어느 정도 돈을 내는데 이는 아파트 수입이 된다.) 등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주민은 잘 알지 못한다.
이 돈이 올바르게 쓰인다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이 돈이 투명하게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면 분란이 생긴다며 주민이 직접 참여해 이 잡수입을 어떻게 활용할지 대표들만이 고민하는 것이 아닌 아파트의 ‘주인’이자 컨퍼런스의 ‘주인공’인 주민 모두가 참여해 예산을 짰다고 한다.(주민참여예산보다 먼저! 실행했다고 한다.)

예산을 직접 짜면서 주민은 이제 아파트에 필요한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분리수거장이 없어서 불편함이 생기자 직접 저렴한 자재들을 찾아 짓고, 이를 고민한 주민들의 이름도 새겼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소장님이 주변에 꽃을 심지만 아줌마들이 직접 꽃을 심자고 하여 예산에 꽃을 심고, 또한 6행시 짓기 등 서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주민 컨퍼런스를 통해 함께 고민했다.

“주민은 이제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만들고 찾아간다. 만들고 찾으며 이웃과 함께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느낀 점도 있지만 우선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민활동에 있어서의 ‘재미’의 측면을 강조하였다. 김승수 관장은 “저는 ‘재미’라는 요소를 제공하고 대표로서 의견을 반영하여 이를 통해 주민들이 모이게 된 것이지 만약 혼자서 공동체 정신만을 내세워 단지 주민들을 한 곳에 모으려 했다면 아파트공동체의 선진사례로 소개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고 주민활동의 촉매자로서 지역리더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승수 관장은 아파트 대표 퇴임식 때, 마지막으로 주민과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아파트 음악회를 열었다. 물론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아파트 주민이었다. 시민교육박람회에 나가서 최우수상과 150만 원의 상금을 타서 음악회를 열기 위한 자금을 마련했다. 단지 아파트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끼리 즐기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아파트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는 선생님, 소싯적 기타 좀 연주해봤다는 옆집 아저씨, 그리고 이날을 위해 기타를 배운 김승수 관장까지 공연에 나섰다. 실력이 조금 부족한 연주자부터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연주자까지, 감상하기 위한 음악회가 아닌 너도나도 웃고 즐기며 놀 수 있는 유쾌한 퇴임식이 진행됐다.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오픈컨퍼런스를 열어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는 만들었다. 아줌마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감자탕집으로 회의록을 들고 와 조찬회의를 하고 오후엔 아이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김승수 관장 집으로 모인다. 그중에는 아파트에 사는 재일교포 아줌마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의 어려움과 고민도 얘기하고 일본에 벚꽃을 보러 가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어 강좌를 열고 다 같이 일본에 가기도 했다. 아파트 대표가 되어 2년 동안 여러 사업을 하고, 집에서 오픈컨퍼런스를 하면서 아파트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활동을 지속하던 김승수 관장과 이웃 주민들은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

[##_Gallery|1038478790.jpg||1342449842.jpg||1035406923.jpg||width=400_##]

똑똑똑, 이웃집 문을 두드려 보세요

그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똑똑도서관’이다. 주민들이 모여서 아파트에서 살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교육문제와 연결을 짓게 되었고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파트 내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만들고 책을 모으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더 깊이 고민했던 문제는 책을 담은 도서관이 아닌 사람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어느 집에나 책은 있어요. 자신이 읽은 책, 사두고 읽지 못한 책 등 많은 책이 각자의 집에 있거든요.” 이런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시작한 똑똑도서관은 집주인 한 명 한 명이 도서관의 사서가 되어 집에 있는 책을 공개하고 집에 찾아오는 주민에게 책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시스템이다. 단순히 책을 빌리러 오는 표면적 관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요소가 있다.

‘똑똑도서관’의 풍경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무더운 여름, 낯선 이웃이 우리 집에 맘에 드는 책이 있어 빌리러 온다. 똑똑똑, “누구세요?”, “책 빌리러 왔어요.” 이웃은 쑥스럽지만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을 빌리기 위해 용기 내어 말한다. 사서도 낯선 이웃이 와서 어색하지만, 책을 빌려줘야 하니까 문을 열어줄 것이고, 둘은 무슨 책을 빌릴 것인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은 정이 있어 보통 자기 집에 찾아온 이웃을 그냥 보내지는 않으므로 “더운데 주스라도 마시고 가요.”라고 시원한 음료를 권할 것이다. 낯선 이웃은 앉아서 집안을 눈으로 둘러보고 사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는 몇 살인가요?”, ‘하시는 일이 뭐예요?’

이렇게 한 아파트에 살지만 서로 잘 몰랐던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되고 둘은 아파트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좀 더 가까운 이웃이 된다. 도서관이라는 어느 정도 규모가 필요한 공간이 없더라도 내 집에서 이웃의 집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책이 이끌어 준다. 현재는 어린이 책에 집중이 돼 있어 아이들과 책 한 권 읽고 그림 하나 그리기를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아직은 아파트 주민 모두가 ‘똑똑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점차 다양한 연령층이 ‘똑똑도서관’을 방문하고 주민들이 같이 또 다른 재미난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이 커뮤니티카페 등 한곳에 모여 우리 지역, 아파트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똑똑도서관’은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민의 집이 도서관으로 운영되면서 주민과 주민이 집에서 만나 더 다양한 이야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직 완벽한 단계는 아니지만 김승수 관장이 보는 ‘똑똑도서관’의 방향은 책을 통해서 서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주민 각자의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이다. “한잔해야지?” 하고 술을 마시면서 모이는 것도 좋지만, 책을 통해 이야기와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놀이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자기 자랑과 우리 동네 자랑이 이렇게 얄밉지 않게 들릴 수 있을까? 강의 내내 아파트 입주자 대표로서, 똑똑도서관 관장으로서 주민과 함께 한 사업들을 하나하나 자랑삼아 늘어 놓았지만, 김승수 관장의 자랑이 얄밉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김승수 관장이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한 사업들은 우리 마을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언제 어디에서라도 자랑이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승수 관장이 사는 아파트에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업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평범함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언제나 즐거운 일을 만들 수 있고, 주민들과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강의였다.

앞으로 사생대회와 밋밋한 음악회, 아파트 북페스티벌 등 똑똑도서관이 파주월드메르디앙에서 하려는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단다. 주민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건네주고 실현하는 김승수 관장의 노력도 훌륭하지만, 흥겹게 즐기고 이제는 스스로 재미를 찾아 만드는 파주월드메르디앙 주민 이야기를 들으니 김승수 관장과 같은 한 사람이 나서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나 그리고 우리 옆집 아줌마, 아저씨, 이웃들과 같이 재밌게 놀아보자! ’는 유쾌하고 적극적인 마음이 다 같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된다.               

글_  김토일 (뿌리센터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