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다시 생각하다

희망제작소는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전국 52개 지방정부와 목민관클럽을 창립하였습니다. 목민관클럽은 지방자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고, 주민들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가꾸기 위한 정기포럼을 격월로 개최합니다. 그 고민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목민관클럽 제15차 정기포럼
일시 : 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장소 : 서울시 은평구

“서울에서 무슨 마을 만들기야!”

‘더불어 사는 마을공동체, 함께 잘 사는 희망 서울’을 시정 비전으로 내세운 박원순 서울 시장은 2017년까지 5년간 725억 원을 투입하여 주민 중심의 자치, 문화, 경제 활동이 순환되는 975개의 마을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곳곳에서 웅성대며 일던 ‘마을 만들기’에 다시 귀가 쫑긋해졌는데요. 지난 9월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가 문을 열고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이라는 5개년 중장기계획이 발표되면서 ‘마을, 마을공동체, 마을 살이’의 구체적인 그림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무슨 마을 만들기야?’, ‘마을이 만든다고 될 일인가?’, ‘마을 만들기는 민간주도, 주민주도여야 한다고 하면서 왜 자꾸 관이 관여하려고 하지?’ 이런 질문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목민관클럽 15차 정기포럼도 이런 질문을 안고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방향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더하며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지난 7월, 목민관클럽 시즌2를 맞이하며 정기포럼에서 우선적으로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주제를 조사했는데, 역시 ‘마을 만들기’가 1순위였지요. 마을 혹은 마을 공동체 만들기는 여전히 솔깃하면서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솔깃함과 갸우뚱 사이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 목민관클럽 15차 정기포럼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마을 만들기의 든든한 플랫폼, 은평구 평생학습관

15차 포럼은 서울 북서부에 위치한 은평구에서 열렸습니다. 은평구는 경기도와 접해있고 웅장한 북한산을 뒤로 하고 있어서인지 여느 도심지의 복잡스러움과는 다르게 시골의 한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마을 만들기에 대한 움직임도 활발해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마을 만들기를 한다고 해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평생학습관을 활용하여 마을 이야기를 꾸리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평생학습관을 플랫폼 삼아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은평구는 올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관하는 ‘신규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 공모에 <마을생태계에서 만드는 새로운 환승 지원체제>라는 계획이 좋은 평가를 얻어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평생학습 마을 생태계를 꾸리는 데 박차를 가할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평생학습관의 역할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은평 평생학습 마을 생태계는 마을 엮기, 마을 누리기, 마을 길찾기, 마을 꾸미기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을 엮기가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네트워킹하고 지속가능한 학습체제를 만드는 것이라면, 마을 만들기는 마을기획자를 양성하고 마을 살이 워크숍,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구상하는 프로젝트는 마을 꾸미기의 내용입니다. 마을 살이의 귀중한 인적 자원이 될 4050 세대의 길찾기를 통해(마을 길찾기) 마을이 나아갈 방향도 고민해 보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마을 축제, 포럼에 주민 누구나 참여함으로써 마을을 마음껏 누립니다(마을 누리기).

특히 ‘1000명의 숨은 고수를 찾아라’는 생활의 지혜와 경험을 통한 노하우를 가진 이를테면 살림 잘하는 옆집 아줌마, 노래 잘하는 삼촌, 만물박사 할아버지, 뜨개질 잘하는 할머니 등을 마을로 불러내어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생생한 배움터를 만들기 위한, 어깨가 들썩이는 프로젝트입니다. 영어를 잘 하고,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을 넘어서 신발끈 절대 안 풀어지게 묶을 수 있는, 휘파람을 끝내주게 잘 부는, 우는 아이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겨울 난방비를 절약하는 비법을 가지고 있는 주민 하나하나의 지혜와 재주가 모여서 더욱 풍성해질 마을, 기대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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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클럽 회원들도 평생학습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마트 폰의 터치 형식에 익숙한 까닭에 요즘 아이들은 책을 넘기지 않고 누른다고 합니다. 어린이영어도서관(Children’s English Library)에는 유아부터 13세 어린이, 아빠 엄마와 함께 볼 수 있는 e-book 시설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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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소한 길찾기센터 4050 톡톡톡 사랑방은 상담하는 곳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분리되어 있는데요, 담소를 나누는 공간은 마룻바닥으로 시설되어 있어 자연스러운 모임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산새마을에 잔치 났네

두 번째 방문지는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에 위치한 산새마을입니다. 산새마을은 박원순 서울 시장이 시장출마 선언 이후 가장 먼저 찾았던 곳으로 지역공동체 중심 재개발방식의 한 모델로 관심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지요. 지난해 6월 은평구청과 주거재생을 고민하는 사회적기업 두꺼비하우징이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하여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은평구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이곳에서 마을 만들기의 어떤 움직임들이 있는지 궁금하지요?

산새마을에 도착하니 윤전우 두꺼비하우징 팀장님이 목민관클럽 식구들을 반겨주시네요. 두꺼비 하우징은 기존의 도시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정주권을 보장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주거재생을 목표로 주거문화 환경개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산새마을 가꾸기 사업에 두꺼비 하우징이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네요!

“두꺼비 하우징 팀장님 참 수더분하게 생기셨네.”

“마을 사업 하려면요, 잘 생기고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저처럼, 두꺼비처럼 친근하게 생겨야 주민하고 소통이 잘 됩니다. 저희 두꺼비 하우징 직원들이 다 저처럼 생겼습니다.”(웃음)

윤전우 팀장은 자신을 건축학도가 아닌 ‘인문학도’라고 소개한 뒤 마을 만들기, 주거 재생 사업에는 건축학도의 시선 뿐 아니라 인문학도의 시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라고 야무지게 덧붙이십니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 주민과 직접 소통하며 마을 만들기를 진행해온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니, 시군구청장님들의 귀가 더 쫑긋합니다. 팀장님이 손짓하는 곳으로 시선도 따라가네요. 저쪽은 은평뉴타운, 이쪽은 산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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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뻐꾸기, 딱따구리 등 산새가 많아 산새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시간대 별로 산새들이 운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산새 우는 소리를 시간대 별로 들을 수 있다니 산새마을이 가진 귀중한 보물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민 회의가 열린다는 마을 정자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이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하고 마주 잡았던 두 손을 풀어 손짓합니다. 목민관클럽 식구들을 기다리셨는지 추위에 발갛게 된 얼굴에는 함박 웃음꽃이 활짝 피어 정겨움이 가득합니다.

산새마을의 마을 정자는 주민들의 열린 회의 장소입니다. 처음에는 주민 세 명으로 시작한 마을 회의에 지금은 스무 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은폐되어 있지 않고 누구나 지나다가 ‘기웃거리기’ 시작해 얼씨구나 주저앉아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된 회의 공간인 만큼 소통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산새마을 주민들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을 회의 자체가 마을 만들기를 알리는 홍보물이 되겠네요. 한 달에 한 번 정자와 숲 속의 평상에서 영화 상영회(별이 빛나는 영화관)도 열린다고 하니 그날만은 산새마을 주민인 척 슬쩍 끼고 심은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산새마을에는 오가는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면서 생긴 아기자기한 꽃밭과 30톤 가까이 쌓여 있던 쓰레기를 엄마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나와 치우기 시작하면서 조성된 텃밭도 자랑거리입니다. 처음 쓰레기 더미에 손을 대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돈을 받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깨져버린 항아리를 메우는 두꺼비의 우직함으로 마음을 모은 결과 이런 텃밭이 탄생했습니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들은 가까운 초등학교와 무료급식소에 제공된다고 하네요.

[##_Gallery|1014239219.jpg|날이 따뜻해지면 채소가 쑥쑥 자랄 산새마을 텃밭|1166159814.jpg|날이 따뜻해지면 채소가 쑥쑥 자랄 산새마을 텃밭|1205267384.jpg|잠깐 들러서 마을 이야기 나눠요~|width=”400″ height=”300″_##]

1. 방범활동 집결은 오후 9시 20분이며, 당일 당번이 출석 체크를 한다.
2. 당일 당번의 인솔하에 오후 9시 30분에 사랑방에서 출발하여 약 1시간 순찰 활동을 실시한다.
3. 방범활동 전 음주자는 당일 순찰활동을 금지한다.

이 내용은 산새마을지킴이 방범 수칙입니다. 초등학교 야간 운동장 개방을 제안했을 때 학교가 안전을 문제 삼자 주민들이 돌아가며 방범활동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처음 5명으로 시작한 이 활동에 지금은 25명의 주민이 참여해 마을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시작된 주거재생 사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고 합니다. 사실 계획보다 그 절차가 두 달 이상 늦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까닭인즉 시의 방침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최초로 주민의견을 세세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전우 두꺼비하우징 팀장님은 이러한 늦어짐을 알리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마을 만들기의 기본이자 주민과 신뢰를 쌓는 길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주민들이 하나하나 의견을 내어 반영하는 이 ‘더디고 더딘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산새마을에서 배울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요?

비구니 스님들의 단아한 수행처, 진관사

점심은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 4대 명찰로 손꼽히는 진관사에서 함께 했습니다. 날이 꽤 쌀쌀한 탓에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을 했지만 진관사로 향하는 길은 알록달록 물든 단풍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았습니다. 진관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단아한 수행처이기도 하거니와 진관사 뒤편 산꼭대기에 보이는 봉우리가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아 유두봉이라고 불려 은평구는 여자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김우영 은평구청장님이 소개하셨습니다. G20 대표 방문 때 만찬 장소이기도 했을 정도로 진관사의 사찰 음식은 유명한데요. 참기름 향이 고소하게 배어나는 맛깔스러운 반찬 하나하나,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사람’이 마을이다

‘마을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는 기동민 서울정무부시장님의 인사말로 시작하여, 김낙준 마을공동체 담당관님,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님, 이미경 마을N도서관 대표님, 구자인 진안군 마을만들기 팀장님이 발제를 맡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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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민간 주도의 원칙대로 하되, 이후 성과를 체크해야 하는 관의 성격상 무엇이 마을 사업이라는 답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 기동민 서울시정무부시장

“기존의 공모사업은 일 년에 한 번 공모하여 예산을 주고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주민들의 속도에 맞추어 단계별로 지원하는 것으로 변할 것이다.” – 김낙준 서울시 마을공동체담당관

“20년 전 공동 육아에 대한 필요로 20여 가구가 모여 시작된 성미산 마을보다 경제불황여파로 생계 자체가 위협받는 지금은 마을 만들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마을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혼자서 외롭게 생활고에 휘둘려 살아가게 된다.”

“마을이란 자신들의 생활상의 필요를 협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웃관계이다.”

“10년 정도 해야 체력이 축적되는 마을 사업, 시에서 나서면 3명이 하던 일을 10명이 함으로써, 10년 걸리던 일을 7년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만들기의 새로운 주역은 청년, 주부, 백수, 예술가, 자영업자 그리고 조기 은퇴자들. 이들을 잘 연결하는 촉진제 역할이 중요하다.”

“민과 관을 연결하는 통역자의 역할이 지원센터의 주요한 역할이다.” –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돈도 벌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해결해 보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필요에 의해 시작된 도서관, 북카페, 청소년?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이 지금 지역공동체의 큰 자산이다. – 이미경 마을N도서관 대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를 다시 이야기하게 된 그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서울은 서울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지역도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10년 간 마을 만들기를 해온 진안군의 가장 큰 성과는 자치단체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 슬로건은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길’ 이다.”
– 구자인 진안군 마을만들기팀장

도시에서 마을, 마을공동체, 마을 만들기는 늘어나는 아동 성범죄, 자살, 빈곤, 청소년 문제? 뿐만 아니라 멈춰버린 뉴타운의 출구전략으로도 대안으로 떠오르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여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시기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훈훈한 정(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목민관포럼은 공동체를 살리는 마을 만들기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0년 넘게 마을 만들기를 해온 진안의 경험에서도, 아이들의 육아문제를 고민하면서 시작된 성미산마을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는 ‘주민중심’, ‘공동체 중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행정의 역할은 당연히 이러한 ‘주민중심‘, ’공동체 중심‘의 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잘 지원하는 것이겠죠? 더디지만 믿고 가는 것, 결과보다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서울시를 비롯한 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마을 만들기를 한다고 하니, 형식적으로 성과주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과 염려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되돌아본 원칙들을 지키고 진심이 담긴 시도들이 이어진다면 서울과 지역에서 일고 있는 마을에 대한 웅성거림이 제각각 자기 색을 낼 것이라 믿습니다.

글_ 정효선 (기획홍보실 인턴연구원)
사진_ 정지훈 (교육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