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마을을 엮다

2011년 9월 문을 연 수원시 평생학습관은 희망제작소가 위탁 운영하는 공공교육기관입니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정다운 우리 학교’를 지향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평생학습초점에서는 창의적 커뮤니티의 다양한 사례를 만나보고자 합니다. 학습이나 문화예술, 공간, 일 등의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커뮤니티와 그 안에서 각양각색 모습으로 발현되는 학습의 절묘한 만남을 기대합니다.

[평생학습 초점] 창의적 커뮤니티 만들기
(3) 문화예술로 마을을 엮다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는 언제부턴가 서로의 길을 달리하며 먼 길을 왔다. 서로에게 던지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시선이 참 낯설다. 그럴 때면 애초에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는 한 몸이었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태동되었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소리 높여보기도 하지만, 솔직히 ‘지금, 여기’에서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의 접점 찾기란 종종 어느 하나에 또 다른 하나를 덧붙이는 물리적 결합에 그치곤 한다. 그렇다고 물리적 결합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겠으나,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의 관계 맺음이 그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서로에게 또 다른 낯설음을 가져올 수 있음을 우려케 된다.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가 함께 했던 옛 기억을 회복하기 위해선 서로의 기억 속에 공유된 유전인자를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일상의 삶과 일과 놀이에 스며드는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질 때, 서로를 온전케 하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로 마을을 사유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실천과 행동’을 구호로 내걸고 <예술과마을네트워크(이하 ‘예마네’)>의 문을 열고서,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의 접점을 찾고자 여러 길목을 드나들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이정표를 찾거나 모법답안을 그려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오히려 어찌된 영문인지 하면 할수록 이정표나 모범답안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 의구심만 깊어가며 점점 더 오리무중의 심정임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길목을 서성이고 있음은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 특이 취향의 기호(嗜好)가 아니라 인간사의 궁극적인 화두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문화예술이 마을 공동체의 모든 스펙트럼을 품을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도 아니지만, 일상 삶의 토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국외자일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러기에 일상의 기억과 일과 놀이 등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 삶의 이야기 속에서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 예마네 <마을이야기학교>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을이야기학교>의 마을 공동체 활동이 문화예술의 감수성과 상상력 만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그 이전에 마을 공동체의 맥락과 서사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독해력으로써 ‘마을 읽기’의 성찰적 관점이 먼저 요구된다. 물론 문화예술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마을 읽기’의 전 과정에 걸쳐 다른 무엇보다 풍부한 기제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마을 읽기’는 아니다. 따라서 ‘마을 읽기’는 예마네 마을 공동체 활동의 시작과 끝이며, <마을이야기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마을을 찾는 모든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마을을 읽는다. 그리곤 “이 마을은 이렇다.”, “저 마을은 저렇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을의 언어를 읽어내는 독해의 진폭이 어떠한가를 나타낼 뿐,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은 아닐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아는 것’은 마을도 그렇다. 문화예술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아무리 남다르다 한들 ‘보고 아는 만큼’의 진폭을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여기에 ‘마을 읽기’가 필요한 까닭이 있다.

‘마을 읽기’란 마을 공동체의 기억과 이야기의 언어를 안팎으로 읽어내는 독해력의 기반을 쌓아가는 과정이며, 마을 공동체는 ‘마을 읽기’의 대상과 수단이 아니라 원동력이 된다. 거기서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는 더 이상 화석이 아니라 삶의 빈자리를 채우며 여전히 살아있는 오늘의 이야기가 된다. 아울러 ‘마을 읽기’의 폭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선 마을 공동체의 안과 밖을 아우르며,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성찰적 관점’이 요구된다. 이는 ‘나만 알고, 남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시각이자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주관적 시선이기도 하다. ‘마을 읽기’의 성찰적 관점이 결여된 때, 반짝이는 소비적 히트(Hit) 상품을 양산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을 공동체에 뿌리 내리는 공유가치를 들어낼 순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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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학교> 마을잡지 ‘뒤싯골지나 방아다리건너’는 ‘마을 읽기’ 성과를 모아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 엮어 내고 있다.(제공:예술과마을네트워크 / 이하 동일)

마을을 읽다

2010년 6월, 충북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 산골 마을의 오래 전 문 닫은 학교에 <마을이야기학교>의 터를 잡고, ‘마을 읽기’의 첫 발을 디디며, 마을의 한 집 한 집을 찾아 귀동냥을 다닌답시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게으른 탓이 크지만, 외지에서 찾아든 근본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선뜻 입을 열지 않음은 인지상정이다. 마을에서 농사일을 배우며 텃밭농사를 함께하고, 마을 대소사에 이렇게 저렇게 얼굴을 들이밀며 조금은 이물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속내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100여 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대전리 마을 공동체는 지금은 대전1리와 2리로 나뉘어 있지만, 예전엔 모두 한 마을로 엮여서 살았고, 예나 지금이나 그곳 사람들 모두가 ‘한밭들 열 두골 사람들’이라 불린다. 대전리 마을은 10리에 걸쳐 열 두골의 자연 마을로 나뉘어 살다보니, 가뜩이나 썰렁한 산골 마을에 인기척을 찾기 힘들다. 행정 구역으론 제천시에 속하나, 마을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을 경계로 단양군 단성면 양당리와 접하다 보니, 실제 주민 일상의 생활문화 기반은 단양권에 통합되어 있다. 단양에서건 제천시 내에서건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의 산세와 충주댐 호반의 풍광이 남다르기는 하나,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한편의 작은 평지를 한밭(大田)이라 부를 정도로 거친 지형에 둘러싸인 외진 산골 마을일뿐이다. 딱히 내세울 만한 특산물이나 민속이 있는 것도 아니며, 산기슭을 개간하여 어렵사리 농사일을 주된 생업으로 하는 우리네 여느 산골 마을의 일상을 품고 있는 평범한 마을이다.

대전리 마을은 우리네 마을 공동체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려 재편되고 해체되어 온 궤적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우리 마을이 1960년대를 전후한 산업화시대의 이농현상을 거쳐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어온 것과는 달리 대전리 마을의 경우, 일제시대 인 1930년대부터 마을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탄광업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전통적 마을 공동체의 재편을 맞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까지 반세기에 걸쳐 제천시는 물론 단양권 일대에서 제법 흥청거리던 규모를 지녔다. 그러나 그 것은 이미 전통적 생활문화에 기반을 둔 공동체(Gemeinshaft)라기보다 상업적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이익공동체(Gesellshaft)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한편 탄광이 사라지기 시작한 1990년대에 들어서 불과 10여 년 사이에 급격한 공동화(空洞化)의 길을 걸으며 그 이전 공동체의 재편 양상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의 해체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대전리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 대다수는 닫힌 공간에서의 생애주기를 통해 탄광촌이었던 시기의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인적, 물적 기반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 재편과 그 모든 것이 일순간에 빠져나가는 공동체의 해체라는 이원화된 과정을 모두 경험한 세대이다. 이로 인해 주민 공동체 문화의 물질적, 정서적 기반 역시 서로 다른 여러 층위가 얽혀져 있다. 즉 물적 풍요에 대한 과거 회귀적 향수와 개인화 경향 등 공동체가 재편되던 어제의 기억과 함께 주민 공동체의 노령화, 과소화(寡少化) 및 사회문화적 여건의 열악함 등 시대 변화에 따라 밀려나고 뒤쳐진 무력감 등 공동체가 해체된 오늘의 기억이 교차하는 한편 거기에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의 잔존 등이 더해지면서 주민 공동체의 구심점과 문화적 동질성이 이완된 채 공동체 문화의 기력이 쇠약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이야기학교>의 ‘마을 찾기’

<마을이야기학교>는 지속적인 ‘마을 읽기’ 과정과 성과를 토대로 대전리 마을 공동체가 당면한 주요한 사회적 문제를 물적 기반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 재편과 해체라는 이원적 경험의 혼재에 의한 가치체계와 구심점의 이완으로 보았다. 거기에 뿌리 깊은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의한 부녀자, 유소년층의 배제와 소외 현상이 더해지면서 파편화되고 분절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이야기학교>의 ‘마을 찾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마을이야기학교>의 ‘마을 찾기’는 일상의 회복을 위한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의 이어 맞추기로 집약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위한 매개자로서 예술가의 역할과 기능에 주목한다. 따라서 <마을이야기학교>는 예술가의 창조 역량과 마을 공동체 생활문화 현장이 연계, 통합될 수 있는 일상의 플랫폼이 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일상의 다양한 지점에서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의 조우를 엮어 내면서, 문화예술의 감수성과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편 마을 공동체 생활문화 기반의 확장을 위한 자생적 역량이 이끌어지길 기대한다.

실제로 <마을이야기학교>의 모든 일상은 자급적 활동과 함께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어, 텃밭농사 등 먹거리를 장만하는 일에서부터 의복과 주거 공간을 다듬는 일과 마을 대소사의 품앗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예술가와 마을 공동체의 만남을 엮어 내고 있다. 서툰 손놀림으로 일구는 텃밭농사를 지켜보는 마을 분들의 오고가는 훈수나 마을 대소사에 품앗이로 얼굴을 내미는 생소한 이들에 대한 수군거림 등으로 묻어나는 일상의 매개 작용이 켜켜이 쌓여서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는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다.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한다는 말이 있듯이 일과 놀이가 통합된 그곳에서 형식과 내용, 시공간과 행위 주체 등의 정형화된 틀거리로 문화예술과 마을 공동체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닥 의미 없음을 느끼게 된다. 다만,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와 에너지를 포착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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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와 품앗이 등 마을의 일상을 지내고 나면 어느덧 예술가의 화폭엔 마을의 이야기가 그득하게 쌓인다.(마을이야기학교 2013 문화농활레지던시 입주작가 허윤선의 ‘생활의4요소’)

예술가와 마을 사람들은 배추 모종을 나누며 농사일과 마을살이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예술가의 솜씨로 차린 새참을 함께 들며, 그들은 서로의 손맛을 이야기한다. 기장떡을 잘 만드신다는 옆 마을 할머님, 막걸리 담그는 솜씨가 일품인 윗집 할머님 얘기 등을 주고받노라면 어느새 예술가의 화첩엔 기장떡 할머님과 막걸리 할머님이 놓여 있다. 농한기의 무료함을 달래려 찾은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생전 처음 잡아본다는 붓과 물감 앞에서 마을 어르신의 빛나는 눈망울과 떨리는 손을 볼 수가 있다.

교실 한편에 예술가의 시선으로 전시된 옛 뜀틀과 마을의 버려진 빈 집에서 주어 온 지게 등을 보며 “이런 것도 여기서 보니 좋네!…” 하면서, 마을의 기억을 전한다. 비료포대의 상표라도 제대로 읽고 싶다며, 한글을 깨치게 해달라는 어르신의 요청에 어렵게 한글교실을 열고, 농한기의 한겨울 추위를 녹인 기억은 어르신에게 보다는 예술가의 자양분이 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호미 한 번 잡아 보지 않은 젊은 예술가의 섬섬옥수에 물집이 생기고, 벌레 물린 자국에 무관심해질 때면, 예술가의 화폭엔 마을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이렇게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얻어 마을의 일상과 자산으로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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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만져 보는 붓과 물감으로 예술가와 함께 나눈 그림 앞에서 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는 마을의 자산이 된다.(마을기획전 ‘생전 처음’, 2011년 3월, 마을이야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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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포대의 상표라도 제대로 읽고 싶다는 바람을 예술가 선생님의 농한기 한글교실로 녹이기도 한다.(한글교실, 2010년 12월, 마을이야기학교)

<마을이야기학교>의 ‘마을 읽기’와 ‘마을 찾기’ 여정이 이정표나 모범답안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정표나 모범답안이 있다면, 그것은 마을과 만나는 때와 장소, 사람의 수만큼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마을이야기학교>의 여정은 쉽게 도달하기도 어렵고, 의도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때그때 눈에 띄는 성과물이 들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서성이던 풍경이 아닐까 한다. 근래에 들어 우리 주변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반에 ‘창조경제’의 열쇳말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거기엔 인간 정신의 창조적 영역을 물질적 교환가치로 치환하려는 조급함이 엿보이기도 하나, 어찌됐든 우리네 마을 공동체에도 문화예술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함께하는 창조적 기운을 북돋아 줄 필요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 역시 조급함에서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조금은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글_ 박명학 (예술과마을네트워크 상임이사)

* [평생학습 초점] 창의적 커뮤니티 만들기
(1) 애물단지 폐교가 장난감 미술관으로 – 도쿄 장난감 미술관
(2) 해방촌에 가면 빈집이 있다 –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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