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마을에 스며든 시간

마을만들기 전국대회가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꿈꾸며 마을의 미래를 상상하다’를 주제로 지난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전라북도 완주에서 열렸다. 1회 대회를 전라북도 진안에서 시작해서 올해 7회를 맞이한 마을만들기 전국대회는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에서 기조강연 ‘생활정치로서 마을만들기’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마을만들기 관련 활동가, 주민, 공무원 등이 모여서 2박3일 동안 공유와 협력, 참여의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은 대회 둘째 날 완주군 마을만들기 현장을 찾아보는 현장탐방에 참가한 후기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이름만 들으면 ‘어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전주 옆’이라고 하면 그제야 ‘아하, 거기’라고 알은 체를 하겠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대개 한 번쯤은 가보았거나, 이름이라도 들어봤던 도시 ‘전주’일 가능성이 크다.

전주를 계란 프라이처럼 감싸고 있는 완주군은 약 830㎢의 면적을 가진 인구 9만여 명의 농촌지역이다. 삼례, 봉동 등 2개 읍과 용진, 고산 등 11개 면으로 이루어졌는데, 인구의 70%가 두 읍에 모여 살고 있다. 대도시에 접해 있는 농촌지역이 대부분 그렇듯 완주도 관광, 경제, 문화 인프라를 전주에 의지한 채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공동체는 해체 위기에 놓여 있었다.

완주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8년 희망제작소와 ‘완주 희망 만들기’협약을 체결하면서부터다. 희망제작소 뿌리센터가 1년여 동안 완주에 머물면서 지역자원을 조사한 <신택리지>보고서를 기초로 해서 로컬푸드를 활용한 유통혁신, 공동체 복원을 위한 마을회사 육성, 문화자원을 활용한 예술마을 조성 등 ‘약속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5년여가 흘렀다. 풍성한 농작물이 자라는 너른 평야에 풍부한 수량을 지닌 젖줄인 만경강이 흐르고 있지만,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나 생산시설도 찾기 힘들고, 흩어져 있는 지역자원을 모아낼 정책도 없이 낙후되었던 완주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5년 전에 시작한 희망을 담은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가을걷이가 시작된 들판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가을 아침햇살을 받으며 완주로 향하는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와일드푸드 축제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고산 휴양림 일대에서 열린 완주와일드푸드 축제장이다. 완주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와일드푸드 축제를 알리는 대형 애드벌룬이었다. 고산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여러 군데 마을만들기 전국대회를 알리는 팻말을 설치해서 길을 안내했다. 완주 곳곳이 흥겨운 축제 분위기로 기분 좋게 술렁이고 있었다.

주차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대형버스와 승용차들, 줄줄이 늘어선 음식부스, 어디로 먼저 가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사방에서 풍겨오는 고소하고 매콤하고 달큰한 내음들, 북적거리는 사람들 물결 사이로 터지는 웃음소리는 여느 축제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축제장의 중심에는 바로 ‘마을’이 있다. 전국 축제장을 돌며 먹거리 장터를 여는 전문 장꾼들이 아니라 마을주민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음식을 고민하고 서로 역할을 나눈다. 값싼 수입산 재료 대신 직접 농사를 지어 키우고 거둔 재료를 쓴다.

4월부터 마을별로 3번이나 품평회를 거쳐서 축제에 내놓을 음식을 정했다. 그래서 곶감인절미, 감자삼굿, 시래기 표고밥 등 마을마다 특색 있는 음식을 한두 가지씩은 선보이고 있다. 천렵체험, 화덕체험, 메뚜기 잡기, 떡메치기 등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마을에서 직접 준비한다.

할머니가 허연 김이 풀풀 오르는 솥을 휘저어서 국밥을 담으면 손자뻘인 마을 젊은이가 쟁반을 들고 나른다. 이장님은 연신 땀을 훔치며 화덕에 불을 지핀다. 마을이 함께 일하고, 축제에서 거둔 수익은 바로 마을 수익이 된다. 마을 부스 사이로 난 길은 그래서 마을로 들어가는 ‘올레길’이 되는 축제.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가 마을 주민과 로컬푸드, 축제를 연결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다.

소규모 농가의 자립 기반이 된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다음으로 들린 곳은 2012년 4월에 용진면에 문을 연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불과 2년 만에 하루 매출 3천만 원, 1년 매출이 100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한 용진농협 직매장은 이제 로컬푸드 직매장의 교과서가 되었다.

진열장에는 당일에 농가에서 수확한 싱싱한 채소들이 그득하다. 인근 전주에서 장을 보러 오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 탐방을 오는 방문객들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생산한 친환경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거리를 줄이고 ‘당일 수확, 당일 포장, 당일 판매’를 한다.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상품을, 생산 농가가 직접 포장하고, 직접 가격을 결정한 후, 직접 진열하며, 팔고 남은 상품은 그날 바로 생산자가 회수한다.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아침에 수확한 농산물을 저녁 식탁에 올릴 수 있는 게 로컬푸드 직매장의 장점이다.

완주군이 로컬푸드 직매장을 시작한 배경에는 다양한 품종을 조금씩 생산하면서 판로를 찾지 못하고 소득도 불안정한 소농과 고령농가에 자립기반을 마련해주자는 의미가 컸다.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며 밭에서 키운 채소를 장날마다 쪼그리고 앉아서 팔던 할머니는, 이제 매일 버스를 타고 용진농협으로 출근해서 진열장을 채우고 한 달에 200만 원 수입을 갖게 되었다. 정책에서 소외된 소농과 고령농가도 로컬푸드를 통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각 진열장마다 생산자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딸기잼을 만든 상구 씨, 상추와 쑥갓을 키운 이운구 씨, 호박과 가지를 출하한 김철수 씨…. 상품을 집을 때마다 생산자들과 눈을 맞춘다. 오늘 저녁 가족들을 위한 식탁을 차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이름 있는’ 농부들이다.


오래 된 양곡창고에 만든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

예전 삼례역 옆에는 일제시대에 지은 오래 된 양곡창고가 있다. 일본은 너른 만경평야에서 생산한 곡식을 수탈하기 위해서 철로를 세우고 삼례역 앞에 양곡창고를 지었다. 2010년까지도 여전히 쌀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지만, 전라선이 복선화되어 철로와 역사가 옮겨가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완주군은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1920년대에 지은 창고 5동과 1970~1980년대에 지은 창고 2동을 사서 2013년 6월 5일에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의 문을 열었다. 새 역사를 지어서 쓸모를 잃은 구 역사는 역참 전시관으로 꾸몄다. 문화예술촌 초입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갖추고 지역에서 문화예술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삼삼오오’가 있다.

해설사를 따라서 들어간 첫 번째 건물은 비디오아트 갤러리로 연중 새로운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외관은 거의 그대로 두고 내부를 리모델링했지만 주요한 골격은 여전히 남겨 두었다. 최근까지 쌀 창고로 사용한 때문일까. 언뜻언뜻 구수한 쌀내음이 느껴졌다.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디자인 박물관, 실제로 작가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는 김상림 목공소, 활판인쇄에 사용하던 활자와 기계들이 전시된 책 공방 북아트센터에서는 직접 책을 만들 수 있고, 사전 신청제로 가죽 다이어리 워크숍도 운영한다. 1999년 영월에서 시작해서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옮긴 책박물관도 있다.

처음 양곡창고의 쓰임새에 대한 논의가 분분할 때 모두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자는 주장이 한때 우세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보존하고 기억하면서 지역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에 완주군이 손을 들어주었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이 아름다운 건물을 눈앞에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삼오오’에는 삼례로 귀촌한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있다. 거창한 예술작업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예술을 매개로 끊임없이 지역 주민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마을에 왔지만 우리가 정말 마을에 들어온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마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여전히 두려움과 숙제로 남아있지만, 우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을과 함께 천천히 해 나갈 것이다.”

삼례문화예술촌이 생기면서 이 지역에 문화예술인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 아직 마을살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더라도 그들은 과거의 유산을 텃밭 삼아, 마을과 함께 지속가능한 내일을 꿈꾼다. 오래된 미래가 그곳에 숨 쉬고 있었다.


적정기술로 이루는 삶의 전환, 전환기술 사회적 협동조합과 흙건축 학교

‘도시를 떠나서 귀농할까? 귀촌할까?’

이런 고민을 시작한다면 삶은 이미 전환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농사를 짓든,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 떠나든, 그저 도시의 삶이 싫어서 무작정 귀촌을 하던 지역에 내려가서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와 기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삶의 전환을 돕는 ‘적정한 기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빨간 벽돌건물에 노란색 페인트로 쓴 ‘나는 난로다’라는 커다란 글씨가 먼저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이곳에서 난로는 그저 난방을 보조하는 기구가 아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시대를 대비하는 주요한 도구이다.

나무를 사용하는 화목난로의 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 태양열을 집적해서 냉난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연구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가 지역에서 순환하는 멋진 시대를 상상하게 된 시간이었다.

같은 울타리에 있는 흙건축학교는 2013년 사단법인 한국 흙건축연구회가 완주와 업무협약을 맺어서 개교했다. 지금은 유네스코석좌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흙건축 워크숍, 아카데미와 캠프, 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흙건축 워크숍 수강생들이 실제로 지은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지역경제순환센터로 돌아가는 길에는 노을이 곱게 내리고 있었다. 짧은 반나절 체험으로 완주를, 마을을 속속들이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지속가능한 마을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그 중심에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가을 들판을 조금씩 물들이는 노을처럼 마음이 먼저 마을에 스며든 시간이었다.

글_ 이원혜 (콘텐츠팀 팀장 topcook@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