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 12년, 그 도시가 달라졌다

 
세계화(globalization) 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뒤 세계화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화로 국가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국가’가 아닌 ‘지방’이 정치, 경제, 문화의 실천적인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희망제작소는 고양시와 함께 주목할만한 해외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려합니다.


(6) 미국 로체스터시

로체스터시는 미국 동북부 뉴욕주에서도 오대호 연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역사ㆍ문화도시로서 1884년 설립된 세계적인 필름회사 ‘코닥’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였으나,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적응하지 못해 쇠퇴하면서 도시도 동반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코닥이 잘 나가던 1950년대에는 인구가 33만 명에 이르렀으나, 1970년대부터 코닥이 쇠퇴하면서 일자리가 계속 줄어 인구는 현재 21만여 명으로 감소했다. 윌리엄 존슨 전 시장은 1994년 당선 직후 쇠락하는 로체스터의 재생과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개혁과 재생의 아이디어를 내고 스스로 실행의 주체가 되는 ‘NBN(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s)’ 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지휘했다. 그 결과 버려졌던 가스충전소가 아름다운 카페로, 옛 공장 건물이 단아한 아파트로 탈바꿈했다. 거리가 밝아지고 시민들은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_1C|1127674020.jpg|width=”500″ height=”34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2011년 6월 20일, 고양시를 방문해 로체스터시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윌리엄 존슨 전 시장_##] 
미국 로체스터와 우리 지방정부는 도시의 역사나 인구 및 재정 규모, 당면 과제 등에서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선 5기 지방정부가 고민하는 주민참여와 소통, 이른바 ‘로컬 거버넌스’라는 관점에선 배울 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철저한 ‘시민 중심’의 거버넌스이다. 존슨 전 시장은 NBN 프로젝트 초기 “공무원들은 (시민들이 모이는 회의실의) 불을 켜고 끄는 일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고 해도 시민들이 확실한 주체로 나서지 않는 한 NBN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당연히 로체스터시 공무원들의 반발과 이의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뭘 얼마나 안다고 시민들에게 전적으로 맡긴단 말인가? 그러나 결과는 “누구에게 물어도 모든 사안에 대해 시민들과 공무원, 전문가들의 답변이 똑같이 나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놀라운 성과인 것이다.

다음은 ‘동(洞) 중심’의 실질적인 주민자치 강화이다. 로체스터시는 인구 21만의 중소규모 자치도시임에도 NBN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생활권 중심으로 시를 10개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별 섹터위원회를 조직해 각 섹터별로 과제를 추출하고, 실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수도권 대도시 인구 규모는 매우 크다.

또 서구의 일반이론에서 지방자치가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인구 규모를 30만 명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의 대도시는 주민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로컬 거버넌스를 이루기에는 도시 규모가 너무 클 수 있다. 그래서 인구 2~3만 단위의 동 주민자치 내실화가 매우 중요하다. 주민자치위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며, 앞으로 이들에 대한 자치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각계를 대표하는 참신한 인물로 위원회 구성을 일신하는 등 개혁 조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미국 시민사회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민주화가 일정한 성과를 거둔 1990년대 중반 이후 각 분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분야별 전문가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중앙이든 지방이든 여전히 정부의 주요 의사결정은 공무원 중심으로 이뤄지고,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제한적인 자문역에 머물고 있다.

존슨 전 시장은 철저한 주민참여로 프로젝트를 실행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오늘의 로체스터시의 성과는 12년에 걸친 그와 시민들의 꾸준한 노력이 일궈낸 합작품이다. 거꾸로 말하면 철저한 주민참여를 실천했기 때문에 그는 12년 동안이나 재임하고 퇴임 결정도 스스로 내리는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서면 길이 열린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고 가르쳤다. 우리 지방정부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해서 로컬 거버넌스의 핵심 주체인 시민들과 시민사회 전문가들을 대상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글_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yunsin@makehope.org)

월간 고양소식  8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해 게재했습니다.  

● 연재목록
1.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 – 연재를 시작하며
2. ‘은하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 일본 삿포로 사회혁신 클러스터    
3.
빌바오의 힘 – 스페인 빌바오 
4. 지역에서 찾는 고령 사회의 해법  – 지역 사회공헌 일자리 사례  
5. ‘꽃과 정원의 도시’는 어떻게 탄생했나 -일본 미야자키시
6. 주민참여 12년, 그 도시가 달라졌다 – 미국 로체스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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