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내릴 수 없는 우리의 깃발

“희망제작소? 뭘 제작한다구요?”

“희망제작소? 아니 뭘 제작한다구요? 뭐 생산품이 뭐냐는 거요?”
“우리 교육에 희망이 없는데, 희망제작소에서 희망을 좀 제작해 줄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정말로 희망제작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희망제작소가 무엇인가 희망을 제대로 제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 어느 쪽의 사람, 그 어느 쪽의 질문이든간에 희망제작소가 해야 할 일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희망제작소의 이름을 지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냥 ‘연구소’라고 하면 그 앞에 어떤 접두사를 갖다 놓더라도 너무 심심할 것 같았다. 세상에 흔해 빠진 것이 연구소가 아니던가. 희망‘공작소’ 이런 이름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이름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몽땅 ‘공작원’이 될 판이었다. “어떻게 희망을 제작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 나올 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희망제작소를 사람들은 선호해 그쪽으로 낙착이 되었다.

그러나, 이름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이름 때문에 짓눌린다.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그대로 ‘절망제작소’가 되면 어떡할 것인가.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름이 주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그래서 진짜로 사람들이 “당신들 이름대로 한국사회에 희망을 만들고 있네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한참 뛰지 않으면 안될 판이다.

어찌보면 이렇게 이름은 우리를 좀 더 열정적으로 우리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 ‘스트레스’가 우리를 굴려가고 있는 것이다.

덩치만 커진 희망제작소

2008년 3월이면 희망제작소가 두 돌을 맞는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을 정신없이 벌였다. 일이 일을 낳았다. 우리가 보기에 아직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영역과 주제가 적지 않았다. 하루빨리 뭔가 그 어두움을 걷어내고 희망의 빛을 쐬여 보고자 안달과 초조감으로 지난 2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한 층으로 시작했던 사무실이 어느 샌가 다섯 개 층으로 늘어났고, 조만간 10층 건물 전체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아직 세 자리까지는 안 갔지만 거의 근접해 가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고 사업이 늘어나니 돈의 쓰임새도 커졌다. 이제 이름만이 아니라 이 규모 때문에도 헉헉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팀웍은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못했고 사업의 일정한 패턴과 양식을 제대로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시행착오는 어느 조직에나, 어떤 경우에도 따르는 법인가 보다. 지나고 보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것이 적지 않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희망제작소를 인식하게 되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서 희망제작소를 아는 사람은 많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이런 외형적인 지표가 아니라 우리가 꿈꾸었던 목표와 비전은 우리 스스로 판단해 봐도 아직 꿈으로만 머물러 있다.

안국동을 지나는 시민들이여, 희망제작소를 보시라!

우리가 물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함께 일하는 많은 연구원들이 몸이 망가질 정도로 분투의 세월을 보냈다. 수많은 나날을 불면과 철야로 지새우고, 이것 저것 살펴보고 시도하느라 동분서주했다. 한밤중에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가는 서울시민들이여! 동일빌딩을 보시라. 그리고 어느 층에 불이 꺼졌는가를 확인하시라.

우리가 짧은 기간 안에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창안센터는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2천여 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쌓였고, 그 가운데 20 ~ 30개가 실현됐다.
노원구청 공무원들과 더불어 지역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공공과제들을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하였다. 행정자치부와 함께 지역홍보센터를 만들어 지역의 모든 정보를 원스톱쇼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프레스센터 1층에 자리한 이 센터는 지역발전에 작은 초석이 될 것이다.

재작년의 조례연구소와 자치재정연구소에 이어 작년에는 농촌희망본부가 탄생하여 다양한 세미나와 도농교류 연구가 이루어졌다. 간판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문화센터는 간판상 제정, 간판학교의 개최, 거리미관 용역사업 등 우리사회 공공디자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어디 그뿐인가.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개척하도록 알선하는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열어 한국사회 시니어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켰고, 지방정부의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리더들의 교육기관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희망아카데미는 한국판 마츠시다 정경숙의 기초를 닦았다.

충남도와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해 충남의 지방행정을 위한 파트너로서 지역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곧 안산시, 완주군과도 이런 파트너십이 형성될 예정이다. 이런 성과를 나열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간다

사실 희망제작소가 가는 길은 전인미답의 길이다. 이론연구에 몰두하는 통상의 싱크탱크와는 많이 다르고, 길거리에 나서서 시위하는 시민단체와도 많이 다르다. 조사와 연구는 하지만 실증적이고 실천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연구소들과 차별성이 있고 포지티브한 대안을 만들고 정부?기업들과 협력하여 거버넌스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차별성이 있다.

그 무엇보다도 희망제작소는 세상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소홀한 영역을 찾아서,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창의성을 소중히 생각하고 현장성에 무게를 두며 실천가능한 방법론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제 두 돌을 맞는 신생 조직인 희망제작소로서는 이 모든 것이 버거운 일이었다.

“과거는 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과거는 지우려 하였지만 충분하지 못하였고, 우리가 맞고자 하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시작이다. 아무리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소중한 경험들을 쌓았고, 그 시련의 계절 속에서 우리는 팀워크를 다지고 일체성을 확보하였다.

나는 늘 모든 노고와 실패는 헛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 바탕 위에서 2008년 한해는 더욱 우리의 꿈을 펼치고, 이미 펼친 것들을 다지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희망제작소는 설립 3년째를 맞으면서 훨씬 더 단단해지고 내실을 갖출 것이다. 2008년, 이 한해는 우리 사회에 희망제작소가 ‘희망’이라고 하는 단어를 더 많이 한국 사회에 선물하는 한해가 되도록 더욱 심기일전해 뛰는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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